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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22. 2023

200쪽 이내로 과학 상식 돌아보기

[책을 읽고] 니컬러스 머니, <이기적 유인원> (2)

지난 리뷰에서는 <이기적 유인원>의 주제, 즉 자기도취적인 이 유인원 종이 어떻게 자기 자신의 멸종에 태연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 책의 종반 20%가 그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80%는 생물학을 중심으로 하는 신나는 과학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분량은 적지만 매우 밀도 있게 채워넣은 토막 지식들을 정리해 보았다.


DNA 비교 연구 결과, 우리는 식물이나 다른 주요 생물군보다도 버섯과 매우 유사하다. (48쪽)


불과 한 달 전에 읽은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저자가 균류학자인 줄은 몰랐다.



인간은 아밀라아제 효소 정보가 담긴 유전자 사본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걸 한두 개 지닌 다른 유인원에 비해 인간의 침에 녹말 분해 효소가 훨씬 많다. (69쪽)


단백질이나 지방과 달리 탄수화물은 필수영양소가 아니다. 그냥 효율 좋은 에너지원일 뿐이다. 그런데 그걸 소화하겠다고 아밀라아제 효소 관련 유전자 사본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니, 우리가 탄수화물을 못 끊는 게 유전자 차원의 문제였던 것이다.


인간 유전체는 정보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우리가 가진 유전자 수는 효모보다 3배 많고, 회충과 비슷하며, 상당수의 식물보다 적다. (85쪽)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우리 유전자의 대부분은 정크 DNA인데, 우리가 벼나 백합보다 유전자 수가 적다는 데 격분한 일부 사람들은 정크 DNA가 무의미할 리가 없다는 확신에 빠져 관련 연구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고 한다. 과연 호모 나르키소스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저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저자는 우리 유전자가 효율적이라 말한다. 수는 적어도 정보 효율이 뛰어나다는 말에 자기도취적 감성이 조금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국뽕을 싫어하는 사람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국뽕에 취하는 법이다.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장은, 곤충을 비롯한 모든 동식물이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단 의식과 자유의지의 본질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모든 생명체와 그를 구성하는 개별 세포는 행동할 때마다 어떠한 형태로든 의사 결정을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중략) 모든 생물은 느끼고, 생각하고, 소통한다. (129-130쪽)


이 주제 한 가지에만 평생을 쏟아부은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단언을 하는 걸 보면, 저자는 과학자가 갖춰야 할 한 가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칼 세이건은 1996년 미국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과학이란 지식의 집합을 넘어선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또한 인간이 저지른 실수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우주에 대한 지식을 얻는 회의적 방법이다." (246쪽, 밑줄 글쓴이)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단언하는 모습은, 저자가 애정해 마지 않는 홉스가 보았더라도 인상을 찌푸렸을 게 분명하다.


결론. 짧고 강하게 단언하는 과학자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어쨌든 나는 이 책에 5점 만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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