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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05. 2018

미움받을 용기는, 나의 삶을 살 용기

[52권 자기 혁명] 기시미 이치로, <미움받을 용기>

한 청년이 철학자의 집을 방문한다. 그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의 마음을 몰라주고 빗나가는 행동을 보인다. 그는 상처받는다.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것이 그렇게 큰 욕심인지, 아이들에게 어떻게 진심을 전해야 하는지 묻는다.

철학자는 청년에게 자리를 권하고 커피를 내 온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들러 심리학을 배우는 긴 밤이 시작된다. <미움받을 용기>의 도입부다. 

내게 이 책은 개념 잡기에 상당히 어려운 책이었다. 꽤나 여러 차례 다시 읽으며 책 내용을 체계화하려고 노력했다. 아래 내용은 그 결과물이다.

우리는 왜 불행한가

청년은 히키코모리인 친구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몇 년째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지내고 있으며,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일도 갖길 원하지만, 두려워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변하고 싶지만, 상황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는 그것이 친구가 선택한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철학자는 원인이 아니라 목적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히키코모리는 자신을 가두는 선택을 먼저 한다. 핑계는 나중 문제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37쪽)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원인이 있고, 그 때문에 결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친구에게는 대인관계 트라우마가 있고, 그 때문에 그는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는 원인과 결과를 뒤집는다. 청년은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는 선택을 먼저 했으며,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인관계 트라우마라는 이유를 만들어 냈다.

청년은 왜 방안에 자신을 가두는 선택을 했을까? 그로서도 방 안보다는 방 밖의 세상이 더 좋다. 다만, 그는 세상으로 나와서 사람들에게 상처받는 것이 두렵다. 장미는 갖고 싶지만 가시는 싫다는 식의 태도다. 당연히 가시가 없는 장미는 없으므로, 그는 장미를 포기한다. 방구석의 안락함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인관계 트라우마라는 이유를 꾸며낸다.

연애를 기피하는 한 여자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적면공포증 때문에 연애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그녀는 실연의 고통을 피하고자 적면공포증이란 이유를 만들어서 남자와의 교제 자체를 피한다. 모험하지 않으면 다칠 일도 없으니까.

열등감의 재료가 되는 자신의 단점이란 사실 스스로 발굴해낸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만들어낸 인과관계를 스스로 설명하고 납득하는 것이 열등 콤플렉스다. 그러나 인과관계는 사실 뒤집혀 있다. 원인 이전에 우리는 결과를 선택한다. 그 결과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며, 그 자체로 우리의 목적이다.

잘못 설정된 목표를 바꾸어야 한다. 방 밖으로 나가겠다는, 일단 남자와 교제해 보겠다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여 얻는 당장의 작은 안락함을 버리고, 변화를 받아들여 더 큰 자유를 향해 나아가라. 이것이 저자가 제시하는 삶의 목표의 첫 번째, 즉 '자립하기'다.

인생의 과제

저자가 제시하는 두 번째 삶의 목표는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기'다. 단순히 자신을 속이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스스로 일어섰다고 해도 곧바로 걸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태어나자마자 걷기 시작하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배워야 걸을 수 있다. 사회적 맥락에서도 인간은 배워야 걸음을 뗄 수 있다.

* 자립할 것
*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 (126쪽)


저자는 저 두 가지를 '삶의 행동 목표'로 제시한다. 자기기만을 그만두면 곧바로 사회와 조화를 이루어 살 수 있을까? 사회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까? 저자는 단언한다.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고.

타인의 기대를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내키는 대로 하면 남들에게 미움을 사지 않을까? 이것이 우리가 근원적으로 품고 있는 걱정이다. 히키코모리인 남자도 적면공포증을 가진 여자도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입는 상처다. 그 공포를 이겨내야 하는 것이 자립의 진정한 의미라면,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는 두 번째 과제는 결국 첫 번째 과제와 뗄 수 없는 관계로 뒤엉켜 있다.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킬 필요가 없는 이유, 더 나아가 그러면 안 되는 이유를 저자는 '과제의 분리'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컨대 공부하지 않는 아이에게 부모가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에 간섭하는 행위다.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이의 과제다. 공부를 하지 않아 나중에 곤란을 겪게 되더라도 그것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

부모의 잔소리에 아이가 반항하듯, 타인의 과제에 간섭하면 갈등과 불화가 따라온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도 결국 타인의 과제에 간섭하는 것이다. 나를 인정하든 말든 그것은 그의 과제다. 나는 나의 과제, 즉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과제는 무엇일까?

개인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고자 할 때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 그것이 인생의 과제네.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말 그대로 '과제'인 셈이지. (127쪽)

인간관계가 인생의 과제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우리 존재 자체가 원래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현존재인데, 인간인 우리의 현존재는 이미 사회 안에 있다.


우리 존재는 이미 사회적 맥락 안에 던져져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과제는 사회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은 모순 아닌가?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킬 필요도 없고, 더 나아가 타인의 과제에 간섭하지도 말아야 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라는 말인가?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아들러는 '타자공헌감'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사회에, 사람들에게 공헌하되, 그것을 타인의 인정을 통해 확인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느끼라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인정에서 찾기 시작하면 자유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인생 목표인 타자에 대한 공헌마저도 타인의 인정을 통해 확인하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헌하고 있다는 느낌을 얻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가라는 충고와 함께 책은 막을 내린다.

타인이 아닌 나의 삶을 살 용기

이 책을 통해 배우고 실천할 것으로 나는 '타인의 잣대 버리기'를 제안하고 싶다. 도마베치 히데토는 <머릿속 정리의 기술>에서 타인의 잣대를 버리고 자신만의 목표를 정하면 머릿속이 정리된다고 말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은 주어진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최종적 자유라고 한다. 나의 존재 가치가 타인의 평가에 의존한다면 그것은 과연 자유로운 삶일까? 브로니 웨어의 <내가 원하던 삶을 살았더라면>에서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주변이 자신에게 기대한 삶을 산 것을 가장 큰 후회로 꼽았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선택은 정말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붙잡고 사랑해 달라고 다그치는 것은 남의 과제에 간섭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 스톡홀름 증후군과 무엇이 다른가. 인질로 잡힌 신세에서 벗어날 생각은 않고 오히려 인질범에게 사랑을 구걸하다니.

몇몇 사람에게 미움받는 것은 어쩌면 자유의 대가로서 사소한 것일 수 있다. 타인의 과제에 간섭하여 미움을 사느니 애초에 타인의 잣대를 버려서 미움을 사라. 대신 나의 과제에 충실하면 된다. 그 과제는 다른 이들에게 공헌하며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제의 채점을 타인에게 부탁하지 말라. 나 자신이 과제를 이행하고 있다고 느끼면 충분하다.

지금, 그리고 삶의 매 순간, 선택하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언제 회수될지 모르는 타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지 말고, 미움받는 용기를, 자유를 선택하라.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길이다. 혼란스러운 결정의 순간마다, 이것이 타인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나를 희생하려는 선택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자. 미움받을 용기는 타인이 아닌 나의 삶을 살 용기다.

▲  <미움받을 용기> 표지 ⓒ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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