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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12. 2018

거짓말 간파 비법

[52권 자기 혁명] 김형희의 <한국인의 거짓말>

"조선인은 남을 속이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남을 속이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잘한 일로 여긴다." (7쪽)

<하멜표류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도산 안창호는 <민족개조론>에서 민족의 번영을 위해 힘쓸 점 첫 번째로 "거짓말과 속이는 행실"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2013년 WHO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전체 범죄 대비 사기 범죄 비율에서 OECD 1위를 기록했다. 모두 김형희의 <한국인의 거짓말>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인지, 우리는 우리나라가 사기 범죄의 왕국인 이유를 한국인들의 높은 지능에서 찾는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듯이 사기 범죄에는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도 있다.

한국인이 거짓말을 잘하는 이유는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잘 속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잘 속는 까닭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욕심이 많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37쪽)

거짓말이 잘 먹히기 위해서는 거짓말 자체가 그럴 듯해야 하기도 하지만, 속는 사람의 욕망이 그만큼 커야 한다. 쿠로마루의 만화 <검은사기>는 사기꾼을 속이는 사기꾼의 이야기인데, 사기꾼들이 왜 주인공에게 속는가에 대해 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욕심 때문에 미끼에 달려드니까."

욕심에 눈이 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만 해도 거짓말에 넘어갈 확률은 크게 감소한다. 우리는 은연중에 상대방의 말에서 듣고 싶은 내용만을 취사 선택한다. 사기꾼은 바로 그 점을 파고 든다.

내가 이 책에서 배우기를 바라는 것은 다름아닌 경청이다.

거짓말의 심리학

욕심 때문에 거짓말에 말려드는 까닭을 심리학에서는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1. 호감의 법칙. 타인에게 호감을 가지는 순간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다.
2. 권위의 법칙. 우리는 권위에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3. 희귀성의 법칙. 우리는 한정판매에 약하다.
4. 상호성의 법칙. 우리는 호의를 되갚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5. 사회적 증거의 법칙. 우리는 다수의 행동을 믿고 따라 한다.


아랍 융단 상인은 손님에게 우선 차를 권한다. 차를 대접받고 나면, 은연중에 호의를 되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상호성의 법칙의 훌륭한 활용례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 뭐라도 안전장치를 마련해야겠다는 한국인들의 당시 심리가 투영된 광고다. 사기꾼 역시 이 심리를 파고든다. 코스피가 고공행진을 하는 2017년, '당신에게만' 오를 종목을 찍어준다는 카카오톡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위에서 소개한 권위의 법칙과 희귀성의 법칙을 이용한 사기다.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해서 가장 유용한 방법으로 저자는 '돌발 질문'을 든다. 누군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좋은 주식을 추천해 준다고 하면, 왜 직접 투자하지 않고 나와 그런 정보를 나누느냐고 물어보라. 속이려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이 포인트다. 왜 그 주식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상대방은 미리 준비한 그럴싸한 답변을 늘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거짓말에 잘 속는 또 다른 이유는 거짓말 관련하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한국인은 소위 '촉'이라고 불리는 직관을 상당히 중시한다. 상대방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이 아니라, 직관을 통해 신뢰 여부를 결정한다. 직관에 의존하여 잘 속는 사람들의 특징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과도한 자신감. 자신만은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다고 믿는다.
2. 눈 맞춤을 못 한다. 한국인은 똑바로 마주 보는 것을 무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 공감 능력의 부족. 한국인은 타인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한다.
4. 언어 중심의 소통. 비언어적 요소는 속이기 힘든데, 한국인은 비언어적 소통에 미숙하다.
5. 타인에 대한 관심 부족. 우리는 대개 자신의 감정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이상 다섯 가지에는 한국어, 한국 문화, 그리고 한국 사회의 특징이 드러난다. 비언어적 요소가 부족한 것이나 눈 맞춤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우리 말과 우리 문화 탓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공감 능력과 타인에 대한 관심 부족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을 해야 할까?

한국인의 거짓말

저자는 거짓말에 관한 세 가지 이론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의도적 통제 이론인데, 거짓말쟁이는 상대를 속이기 위해 자신의 언어와 비언어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표정이나 말투에 평소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두 번째 이론은 감정 이론이다.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 두려움, 죄책감, 그리고 쾌감의 감정을 느끼므로, 이러한 감정을 표정, 몸짓, 말투에서 포착하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인지 부하 이론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어려우므로, 뇌에 부하가 발생하게 되니까 그런 징후를 포착하자는 것이다. 뇌의 부하는 눈동자의 움직임, 말의 느려짐, 침묵 등으로 나타난다.

<한국인의 거짓말> 표지 © 추수밭


김형희 교수팀은 한국인의 거짓말 관련 징후를 발견하기 위해 남녀 50명의 거짓말 영상을 4개월간 분석했다. 한국인들은 거짓말을 할 때 안면 비대칭, 눈 깜빡임, 특정 단어 반복 등의 징후를 가장 많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양 문화에서 거짓말을 하는 행동의 클리셰로 쓰이는 코를 만지는 행동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남녀의 차이다. 남자는 거짓말을 진실로 보이게 하려고 여러 가지 증거를 내세운다. 그래서 말이 많아지고, 그 과정에서 말과 관련된 거짓말 징후를 자주 보인다. 말실수, 특정 단어 반복, 침 삼키기 등이 많이 나타난다. 반면 여자는 거짓말의 증거가 상대에게 포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말이 줄어든다. 그래서 말이 짧아지고 무표정이나 미소와 같은 징후가 더 자주 발견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따르면 남자는 목표지향적이고, 여자는 관계지향적이라 한다. 어떤 상황에서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남자는 아무래도 자기 과신의 경향이 강할 것이고, 그런 이유로 여러 가지 증거를 내세워서 상대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반면 여자는 관계를 중시한다. 거짓말은 진실한 관계 형성의 도구인 대화를 오용하는 것이므로, 여자들은 마음 깊은 곳의 죄책감에 말을 아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라

그렇다면 안면 비대칭이나 특정 단어 반복 등의 징후를 관찰하여 상대의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0.2초 만에 사라지는 미세 표정의 변화나 흔들리는 눈동자 따위의 징후를 포착하는 것이 과연 쉬울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아예 오해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말을 반복하며 시간 끌기'는 실험에 따르면 아홉 번째로 자주 나타난 거짓말 징후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경청하는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습관의 하나다. 경청하려는 상대를 사기꾼으로 모는 것만큼 난감한 상황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도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한 방법의 첫 번째로, "먼저 타인에게 관심을 가져라"라고 말한다.

거짓말을 간파한다는 것의 전제는 상대방의 진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자세다. 자신의 진실을 표현하는데 서투르면 타인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데에도 서투를 수밖에 없다. 타인의 거짓말을 알고 싶다면 먼저 타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152쪽)

잘 듣다 보면 표정이나 말투에서 거짓말의 징후를 발견할 수도 있고, 논리의 비약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 조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앞에서 한국인이 잘 속는 이유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타인에 대한 관심 부족 아닌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않기 때문에, 명백히 드러나는 언어와 비언어의 부조화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잘 듣기만 해도 속을 확률은 크게 줄어든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마이클 라크로스(Michael LaCrosse)의 연구에 의하면, 상대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배꼽을 상대방 쪽으로 해서 정면에 앉고, 앞으로 기운 자세를 취해서 상대방과 거리를 좁히는 의사에게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의사에 비해 두 배나 호감을 느낀다고 한다. 경청에 관한 수많은 책이 있지만, 그 핵심은 간단하다.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면 된다. 삐딱하게 앉아서 눈 맞춤도 없이 말을 하는 의사가 자신을 진정 위해준다고 느끼는 환자가 몇이나 되겠나.

역지사지의 태도로 상대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대한다면, 그것이 경청이다.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의 말에 적절히 반응하면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기술은 진심으로 상대를 대한다면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눈 맞춤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공감하려고 노력하자. 진실한 관계를 쌓다 보면 거짓말이 멀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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