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소설의 어두운 뒷면

by 히말

*** 스포일러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왜 위대한 소설, <삼체>를 여러 번 읽는 것이 꺼려질까


<삼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위대한 소설이다.

SF라는 장르적인 부분을 빼고 생각해도 위대하다.

기발함, 사건 전개, 캐릭터 메이킹, 넘쳐나는 생각할 거리...

이것만으로도 노벨문학상을 몇 번 받을 만하다.


그런데 왜 꺼려질까?

<삼체>의 세상에 중국인들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일까?

이 소설의 세계를 보면, 세계 인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대략 70%쯤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중국인 작가의 소설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 줄 수 있다.


정말 문제는 민폐 캐릭터들 아닐까.

위에 말했듯이, <삼체>는 캐릭터도 뛰어나다.

예원제, 스창, 웨이드, (인간여성형) 지자 등 빛나는 캐릭터가 정말 많이 나온다.


그러나...

<암흑의 숲>의 주인공인 뤄지,

그리고 <사신의 영생>의 주인공인 청신은

인내력을 시험에 들게 한다.


시리즈 세 권 중 두 권의 주인공이, 민폐캐들이라니.


27fb4e54-faef-4375-b1e8-32be82a8b8dc.jpeg 중국판 드라마 <삼체>


혈압 오르게 하는 민폐캐의 정수, 청신


청신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아니, 없다.

도대체 말 되는 부분이 너무 적어서다.

삼체의 위협을 피한 다음, 전 인류는 그녀부터 죽였을 것이다.

청동시대 호 승무원들을 모조리 무기징역에 처했던 인류가,

그것보다 100배, 1000배 심각한 죄를 지은 청신을 죽이기는커녕, 동정한다고?

맥 없을 정도로 어이 없는 이야기다. 개연성이라고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듯한.


사실 이 소설은 개연성 문제가 심각하다.

테드 창 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SF 소설에서 개연성 문제가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기발함을 주무기로 하는 이 장르에서, 상상력을 뒤쫓다 보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산물이다.


문제는 개연성 말아먹은 전개가 중요한 파트에서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인류가 청신을 당장 죽이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중력파 전송 직후에 삼체인들이 기수를 돌려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몇 년이라도 지구에서 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환경이다.

게다가 지구는 그들의 정주를 위해 준비되어 있고, 그들도 짐 다 꾸려서 이사 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귀환한다?

지구 쪽이 더 늦게 공격받을 텐데, 죽으러 간다?


운빨로 한 평생... 아니 거의 영생을 살아가는 청신이라는 캐릭터는 비판을 시작하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구멍 투성이인 캐릭터다.


예쁜 여자 캐릭터면 다 될 거라고 생각한 건 설마 아니겠지.


예쁜 여자 캐릭이라고 하니, 일관적으로 왜색 짙게 묘사되는 지자 역시 불편하다.

지자의 아름다움이 그녀의 비인간성을 부각하려는 것이라면, 왜색 역시 그녀를 거북하게 만드는 장치인 건가.


FRLVJRbVgAITWG6.jpg 웹툰도 있었다! 연재 속도를 보니 500회쯤 돼야 완결날 듯


왠지 짜증나는 캐릭터, 뤄지


뤄지는 확실한 한방으로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다.

어떻게 면벽자로 선발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설명이 납득이 안된다), 면벽자라는 초유의 권력을 얻자마자 하는 일이 사익 추구다.

그런 캐릭터가 3권에는 무슨 선지자 같은 모습으로 나온다.

도대체가 정이 안 가는 캐릭터다.


뤄지 캐릭의 민폐 1호는 단연 저 사익 추구지만,

그에 못지 않은 민폐는 그가 면벽자가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다른 세 명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스펙의 그를, 순전히 가능성만 보고 뽑는다? (만화 <세븐 시즈>와 같은 이유다.)

이런 게 바로 개연성 말아 먹는 전개다.


게다가 그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면벽자가 된다.

검잡이가 되려고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감당하려는 웨이드 대신, 검잡이 따위 관심 없다는 청신이 선출되는 것과 같은 전개다.


사람들이 천재를 좋아하는 이유는, 노력 없이 뭘 얻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종의 천부적인 나태함, 그로 인한 거지 근성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를 노력해서 얻는 것보다는, 그냥 별 생각 없었는데 얻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멋져 보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소설 세 권 중 두 권에 연타로 그런 막장 전개에 민폐 캐릭터라니.


<삼체> 시리즈를 읽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읽었을 때 2권이 짜증이었다는 기억이 워낙 선명하게 남아, 1권을 읽고 3권으로 건너 뛰었다.

그리고 한 달이 넘도록 2권을 읽지 못하고 있다. 하하하.



사족 - 우주급 찐따 윈톈밍


윈톄밍도 어이없기로는 뒤지지 않는다.

우주 스케일의 찐따라니.


상상해보라.

뇌만 우주로 날아간 그의 운명을.

그의 고통과 고뇌에 대해 약간의 언급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설은 그에 대해 별로 비중을 두지도 않는다.


그의 비중이 실리는 부분이 나중에 나오기는 하지만,

아주 지루하고 재미없는 <동화>로 나온다.

3년 전 읽은 소설인데도 그때 지루해 죽겠다고 느꼈던 그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작품이 너무 괜찮다


짜증나는 3대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삼체> 시리즈의 단점은 딱 그 정도다.

이를 완전히 파도처럼 뒤덮고도 남는 장점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만든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삼체 게임은 어떻게 진행될까? 특히 묵자의 우주 모형이 보고 싶다.

2차원으로 펼쳐져 끝장이 나는 지구 문명은 어떻게 묘사될까?

호주에서의 지옥은?


기다려 보자.


intro-1652386870.jpg 헉 베네딕트 웡이 스창이라니... 훨씬 샤프한 이미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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