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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Oct 31. 2017

아들이 죽었다,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서평] 모 가댓의 <행복을 풀다>

<행복을 풀다(Solve for Happiness)>는 구글의 고위 간부인 모 가댓(Mo Gawdat)이 아들의 죽음을 직면하고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다. 나는 이 책에 관한 두 개의 서평을 쓰려고 한다. 하나는 이 책의 주제를 그대로 살펴보는 것으로, 저자의 행복론에 대한 나의 관찰과 감상이다. 다른 하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펼치고 있는 우주의 ‘설계론’에 관한 나의 단상이다. 오늘은 저자의 행복론을 살펴본다.

이 책의 주제, 즉 저자의 행복 방정식은 한 마디로 표현될 수 있다. 그것은 명상이다.

이미지 출처 - 요가 느림원


저자는 우리가 생각의 혼란 상태에 있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말한다.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서,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유지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파트는 우리를 혼란 상태로 빠뜨리는 여섯 가지의 환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각, 자아, 지식, 시간, 통제, 그리고 두려움에 대한 환상이다. 우리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생각이라는 렌즈를 통해 받아들이고, 그것에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저자는 생각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으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대화를 조용히 관찰하고, 더 나은 대화로 대체하라고 조언한다. 이 방법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서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이며, 대개 '명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헤드스페이스>의 저자 앤디 퍼디컴(Andy Puddicombe)이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듯이, 명상은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고속도로 위를 맹렬한 기세로 달리는 생각이라는 자동차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위이므로, 길가에 편한 마음으로 앉아 길 위의 자동차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라는 것이다.

모 가댓은 생각에 관한 환상에 이어, 시간과 통제의 환상과 관련하여서도 명상의 방법론을 드러낸다. 우리는 과거에 대해 후회하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럴 겨를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현재에 걱정거리가 별로 없다는 증거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에게 진실로 존재하는 시간은 현재뿐이다. 따라서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 그의 충고이다. 그런데 명상의 한 부분, 또는 명상의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는 '마음챙김(mindfulness)'이야말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통제의 환상과 관련한 저자의 조언 역시 명상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삶에서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행동과 마음가짐뿐이다. 이 깨달음은 불교의 '일체유심조'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친구에게 들은 힌두교의 '무심'이란 개념이 통제의 환상에 관한 깨달음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체유심조' 또는 '무심' 어느 쪽이든, 그 실행방법은 명상을 통한 마음 다스림이다.

나는 ‘알리는 이 세상을 떠났다’라는 진실에 근거해 행복 방정식의 기대 칸을 재정리했다. 어느 경우에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내 행동과 내 마음가짐이 전부다. 나는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고, 알리가 우리와 함께했던 시간에 감사하기로 마음먹었다. (219쪽)

두 번째 파트는 우리의 뇌가 가지는 일곱 가지 맹점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흡수할 수 없으므로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여과), 그렇게 해서 생긴 빈자리를 추정으로 채워 넣고, 빈약한 정보를 기반으로 예측하며, 파편에 불과한 과거의 기억을 판단의 근거로 삼고, 더 효율적인 판단을 위해 편리하게 이름표를 붙이며(분류),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로서 핵심인 감정에 휘둘리고, 때때로 과장하여 현실을 파악한다.


이런 태생적인 오류를 바로잡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 방법밖에 없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그것은 진실인가?"라고 계속하여 되묻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뇌의 맹점으로 인한 판단의 오류를 많이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명상은 이런 물음과는 직접 관계가 없지만, 명상을 통한 마음 다스림이 이러한 질문에 적합하게 마음을 정리해 주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저자는 이번에도 명상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세 번째 파트에서 저자는 지금, 변화, 죽음, 사랑, 그리고 '설계자'에 관한 자신의 깨달음을 이야기하는데, 그 핵심은 바로 설계자에 관한 부분이다. 종교와 관련될 수 있는 내용이기에, 저자는 자신이 설계자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관련 내용을 독자에게 강요하지는 않겠다고 부언한다. 그가 말하는 수학적 증명이란 무작위적으로 이 우주가 발생할 수 있는지 확률을 계산해 보는 것이다. 원숭이가 자판을 무작위로 두들겨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쓰게 되는 확률은 그냥 0이다. 무한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나이는 그런 사건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짧다. 우리 육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조합이 우연히 이루어질 확률은 그보다도 낮다. 따라서 확률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설계자가 있다고 보는 쪽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thedrum.com

설계자가 있다면, 왜 그는 세상에 이 많은 슬픔을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쓰나미가 신의 격노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오류일 뿐이다. 설계자는 지각판이 운동하는 방법을 설계했고, 지각판의 운동 결과 해저 지진이 발생해서 쓰나미가 일어났을 뿐이다. 설계자가 직접 쓰나미를 일으켜 인간을 벌하려 한 것이 아니다. 설계자는 이 우주를 설계했을 뿐,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학자에게 방정식은 궁극적인 공정함을 뜻한다. 방정식은 언제나 예상대로 움직인다. 입력으로 사용된 값에 따라 출력은 고스란히 예측된다. 탄생과 죽음, 풍요와 가난, 건강과 질병 등은 그저 ‘일어나는’ 사건일 뿐이다. 삶은 설계된 대로 진행된다. (441쪽)
 
우리가 신을 탓하는 행위는 무모하게 운전하여 사고를 내고 자동차 설계자를 탓하는 것과 같다. 우리 행동의 결과를 설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불합리하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원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설계된 것이니까. 그러므로 사건 자체를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가 설정한 기대를 먼저 의심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설계에 따라 산출될 수밖에 없는 결과가 아닌 그 무엇을 기대하면 우리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설계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다.

첫 번째 파트에서 저자가 설명한, 생각을 다스리는 도구들과 관련지어 설계자의 존재를 받아들이면, 모 가댓의 행복 방정식이 완성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원래 그렇게 되기로 설계된 것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즉 우리의 행동과 마음가짐에 집중해야 한다. 통제의 환상에서 벗어나, 명상을 통해 생각을 관찰하고, 수정하며,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행복의 열쇠다. 결국, 이 두꺼운 책의 결론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다스리라'는 명상의 가르침이다.

<행복을 풀다> 표지 (C) 한국경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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