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Apr 04. 2023

둔필승총 230404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역시 기호학자라 기호, 상징, 해석 등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심지어 인식론 이야기도. 건물 구조를 밖에서 보고 장서관 내부를 추리하는 장면에서, 신도 세상을 밖에서 창조했으니 일목요연하게 보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역시 이 책의 메시지는 세계(진리)의 무작위성이라 할 수 있다. 윌리엄은 기호 사이의 관계를 해석해서 그 뒤에 숨겨진 체계를 드러내려 했으나, 벌어진 사건은 연쇄살인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이런 주장이 기호학자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겠지.


- 전직 이단심문관으로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하게 옹호하는 윌리엄.

- 오컴의 윌리엄을 옹호하는 모습. "그런데 그 대가리가 아주 쓸만하단 말입니다."

- 안경이 발명된 지 얼마 안 됐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찾아보니 과연 그렇다. 1286년 이탈리아 피사에서 발명되었다고.

- 작중 윌리엄이 자꾸 무슨 이파리를 씹어서 챗GPT에게 물어보니, 끝까지 정체가 뭔지 안 나온다고 한다. 중세형 브랜디라는 말도 있고, 대마초일 수도 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브랜디가 풀에서 만들어지나?

- 아드소가 쿠란을 <사서>라고 하자, 윌리엄은 <성서와는 유가 다른 지혜가 담긴 서책>이라 말한다. 역시, 윌리엄은 시간여행자인 듯.



전승민, <알기 쉬운 백신 이야기>

면역학을 알기 쉽게 쓸 수는 없다. 어쨌든 가볍게 읽기 좋다.


- DNA를 주입하지 않고 체내에서 mRNA를 증폭하는 방식의 백신도 연구 중이다. (그게 가능하다고?)

- 스파이크 단백질의 일부만 만들어서 주입하는 방식의 백신에 나노 어쩌구 하는 이름을 붙였다. (역시 자본주의. 펀딩 받으려면 어쩔 수 없겠지.


류츠신, <삼체>

다시 읽으니 예전에 재미없던 부분이 재미있기도 하고, 예전에는 비장미가 느껴졌던 부분이 웃기기도 하다. 후자는 문혁 취조 장면이다. 아인슈타인의 우주 상수는 정적 우주를 주장하는 것이니 변증법을 부정해서 반동이고, 코펜하겐 해석은 유심론이며, 빅뱅 우주론은 신의 존재를 암시하므로 반동이라니.


두 번째 읽으면서, 예전에는 놓쳤던 장치들을 발견하고 더 놀랐다. 류츠신의 물리학 지식은 웬만한 물리학 박사 수준일 듯. 물론 거기에 상상력이 날개를 달아야 지자 같은 황당한 개념도 만들 수 있는 거지만. 양성자 하나를 6차원으로 접어 컴퓨터+통신기를 만드는 이야기는 정말 기가 막히다. 초끈이론이 맞다는 가정과 양자 얽힘을 제어할 수 있다는 상상력이 가미된 것이지만.



송수진, <을의 철학>

세상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실력을 감춘 채 살아가는 재야의 숨은 고수가 많다. 저자의 철학 지식은 강신주와 짱 떠도 전혀 밀리지 않을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요즘 스피노자가 좋아지는데, 책을 좀 읽어야 할까.


- 스피노자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동안의 통속적이고 규범적인 윤리학을 뒤엎고 자신만의 윤리학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가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기쁨대로 살고 있는가. 당신과는 상관없는 선과 악에 짓눌려 살지는 않는가. 비슷한 맥락에서 알튀세르는 그러한 강력한 구조적 지배를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 코나투스는 생명체가 신체 내부의 조건이나 외부환경의 조건에 직면했을 때 생존과 안녕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생물의 뇌 회로에 자리 잡고 있는 경향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안토니오 다마지오)

- 철학으로 살아가자.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비범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질문을 멈추지 말자. 무엇이든 자발적 선택을 하고, 현실에 질식하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자. (저자의 맺음말, 약간 변형)



<3분 철학>

재미있다는 평이 많아 읽었다. 만화책이라서 독서 카운트에서는 뺐다. 도식화가 심하지만 정리하기에 괜찮다. 철학자들 얼굴을 정말 잘 그렸다. (초상화와 정말 비슷함) 아재개그를 계속 강요한다는 점은 괴로웠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앞부분이 지루해 몇 번이나 읽다가 포기했던 <프랑켄슈타인>. 이번에도 그만둘 뻔했지만 꿋꿋이 읽어 괴물의 이야기로 넘어가니 눈물이 난다.


남편의 시를 인용하다니, 너무한 거 아님?



대런 애쓰모글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제도 때문이다. <좁은 회랑>을 먼저 읽었다면 굳이 이걸 읽을 이유가 없다.


그냥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라 생각하고 읽기 좋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를 까는 모습은 참...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의 오류다. 본인도 알고 하는 거겠지.)


읽기를 끝내고 나서, 이 책에 들인 노고를 생각해서 5점을 주었다. 그러나 다른 5점을 준 책들을 생각하니, 노력만 평가해서 5점을 주는 건 역시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4점으로 감점. 주장만 생각하면 3점짜리 책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재미를 생각해서라도 4점은 줘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3월 다섯째 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