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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y 05. 2023

자본주의, 지속가능할까?

[책을 읽고] 조너선 포티스, <자본주의가 대체 뭔가요?>

원제는 <자본주의에 대해 알아야 할 50가지 개념>. 내가 애정해 마지 않는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학 지식 50>과 비슷한 느낌이다. 실제로 책의 전개 방향도 비슷하다. 그러나 과학이나 철학이 아니라 경제학에 관한 것이라, 뭘 배울 책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건지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꽤 생산적인 독서였다.



자본주의


자본주의는 인간의 가장 사악한 면이 모두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는 일을 가장 나쁜 방식으로 이행할 것이라는 데 대한 놀라운 믿음이다. _존 메이너드 케인스. (19쪽)


이 책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경제학자가 케인스다. 케인스가 불세출의 천재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니 따로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인류애와 선한 마음으로 중무장한 호인이었다는 사실은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참으로 공허하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핵심 요소가 생산 수단의 개인 소유라 생각한다.


자본주의란 생산 수단의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을 경제의 핵심 운영 원리로 삼는 제도다. (20쪽)


자본주의란 뭘까 하는 생각을 요즘에는 별로 한 적이 없다. 아마, 대안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서일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에게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의 대립 개념이었고, 핵심적인 차이는 시장 대 국가에서 나왔다.


수요는 정해지는 것이다. 반면, 공급은 정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는 시장이 공급을 결정하는 체제다.



재산권


재산권의 기원을 추적해보면, 틀림없이 강탈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을 살펴보면 재산권은 절도나 다름없다. _사드 후작 (25쪽)


폭력 대신 제도로 빼앗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로크와 마르크스는 재산권의 기원이 노동이라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가치의 기원이 노동이다. 그러나 재산이라는 단어를 오늘날 흔히 쓰는 그 단어로 생각한다면, 이 말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피케티는 비판하고 기요사키는 찬양하지만, 자본에 의해 자동 복사되는 재산이 너무 많다.


오랫동안, 노예는 재산이었다. 그렇다면, 100년 후에도 동물이 재산일까 하는 질문이 따라 나온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은 이거다. 로봇(AI)은 100년 후에도 재산일까? 재산이어야 할까? 스티븐 호킹은 (생산) 기계가 사적 소유로 남아 있는 한,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라 말했다. 더 중요한 것은, 생산 수단을 공유한다면 모두가 풍족하게 살 수 있다고 그가 말했다는 점이다. 이는 케인스가 100년 전에 가졌던 순진한 낙관론과 비슷하다.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고 여가를 즐기는 증손주들 말이다.


재미있는 숫자 하나. 세계의 모든 자산(자본) 가치를 추산한 연구에 따르면, 그 수치는 450조 달러이고, 세계 인구 1인당 6만 달러에 해당한다고 한다. 케인스와 스티븐 호킹이 옳다.


이와 관련해서는 저자도 생각이 같다. 제 43장, <빈곤>에서 그는 말한다. (이렇게 아주 가끔, 저자는 노동당원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낸다.)


우리는 선택하기만 하면 가난을 없앨 수 있다. (432쪽)



부채


경제학자인 저자의 가장 독특한 생각이라면 부채, 특히 국가 부채에 관한 것이다. 국가 부채는 언제나 이슈가 되고, 뉴스 헤드라인에 종종 올라간다. 그러나 그게 왜 문제인가? 일본의 국가 부채는 대부분이 일본인들 소유다. 일본인들과 일본 기업들이 일본 국채를 자산으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바꿔 말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저자는 실제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국가 부채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말들이 저지르는 또 하나의 오류는 그들이 저량(stock)과 유량(flow0를 비교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국가 부채는 연간 GDP의 2배에 달한다. 이것도 심각해 보이지만, 국가 부채가 주간 생산량의 100배에 달한다고 말하면 더 심각하게 들린다. 반면, 일본이 100년 동안 생산하는 부의 3% 수준이라고 말하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임의적 숫자 놀음보다 더 문제인 것은, 시간당 수치와 특정 시점의 누적 총량을 비교하는 일 그 자체다.


저자는 채무자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국가 부채는 안전하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잔뜩 들고 있는 미국의 국가 부채는 어떨까? 어떤 사람들은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 중국이 미국 정부 채권으로 장난질을 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중국 사람들이 들고 있는 그것은 그들의 재산이며, 피땀 흘려 저축한 돈이다. 그걸 장난질 하는 데 쓴다고? 그리고 만약 그들이 그런 장난질을 친다고 해도, 미국은 닉슨이 드골에게 했던 대로 하면 그만이다.


내 순진한 생각이지만, 부채의 문제는 피해의 비대칭성이다.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는 미국 은행들의 악덕에서 시작됐지만, 피해를 본 것은 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었으며, 피해자들의 국적은 전 세계에 퍼져 있었다.


부채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뭐였을까?


빚이 있어도 살기 어렵고 빚이 없어도 살기 어렵다. (237쪽)


저자는 한 문장으로 50개의 개념에 대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대개가 이 정도다. 멋진 말인지는 몰라도 뭔가를 정해주지는 못한다.



기타 재미있는 생각들


중국식 자본주의는 가장 성곤한 자본주의 사례가 될 것 같다. (245쪽)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내가 읽은 대부분의 저자들은 그 반대로 말했으며, 내 생각도 그렇다. 미국이 중국인으로 이루어진 국가였다든가, 중국어가 공용어였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나는 팩스 브리태니카가 아메리카나로 옮겨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라 생각한다.)


피케티의 이론과 논거는 모두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하지만 피케티는 정치제도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최초로 인정한 사람이다. (418쪽)


피케티를 좋아하지만, 나는 이 문장에 동의하지 못한다. 제도와 불평등의 관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마르크스의 이름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피케티의 책 이름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로크의 생각 역시 비슷한 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참, 헨리 조지 역시 잊지 말아야지.


현재, 경기침체(또는 그 우려)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응 방법은 재정 정책이다. (450쪽)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재정 정책이란 말은 정부에 의한 부의 재분배, 즉 "우리는 선택하기만 하면 가난을 없앨 수 있다"라는 말과 같은 얘기다. 실천이 어렵다는 얘기다.


정보가 빠르게 재생산되고 전송될 수 있다는 것은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는 의미다. 승자는 일을 대단히 잘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성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480쪽)


영원할 것 같았던 구글의 우위가 위태로워 보이는 지금, 다시금 새겨야 하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묻고 답한다. 자본주의의 대안이 있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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