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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y 04. 2023

치매 예방에 외국어 공부가 좋을까

[책을 읽고] 알베르트 코스타, <언어의 뇌과학>

책 제목은 <언어의 뇌과학>이지만, 제대로 된 제목은 <이중언어자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정도로 지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분량을 채우기 위한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을 참 많이 담고 있다. 예컨대, "실험 결과는 흥미로웠다"라는 문장을 적어도 100번 정도 본 것 같다.


얄팍한 허영심 때문에 자기 자랑 에피소드를 늘어놓는 책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단지 분량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무의미한 문장을 반복한다. 그런 말 버릇을 가진 사람은 많다. (filler-word 말이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글버릇"이 있는 사람은 처음 본다. 글을 쓰고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말이며, 출판사는 원고를 받아 인쇄소에 넘기는 로봇에 지나지 않았다는 얘기니까. (요즘 로봇에게 실례되는 말이기는 하다.)


그냥 쓰레기책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참 괜찮기 때문이다. 제목은 다르지만 펼쳐 보면 똑같은 내용의 뇌과학 책이 하루에 17권씩 쏟아지는 요즘이다. 이 책은 다르다. 단 한 개의 질문에 집중한다.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뇌는 뭔가 다를까.



차이는 크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중언어자의 뇌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중언어자의 뇌는 단일언어자의 뇌와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으며, 모든 영역에서 더 우세한 것도 아니다. 어린 시절에 자연스럽게 두 개의 언어를 습득한 경우와 나중에 학습한 경우 역시 다르지 않다.


이중언어 사용 경험은 개인의 언어 능력이나 그 외 다른 인지 영역에 눈에 띄게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159쪽)


예컨대 어휘 점수는 나이에 상관 없이 단일언어자가 더 높다. 다른 조건이 같다고 가정하면, 이중언어자는 단일언어자보다 각각의 언어에 덜 노출되므로,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고 이중언어자가 학교 성적에서 불리한 것은 아니다. 단일언어자가 더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은 대개 집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이었다.


이중언어자가 가지는 진정한 우월함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었다. 마음 이론에 관한 유명한 실험에서, 단일언어자는 25%만 정답을 맞췄지만, 이중언어자는 무려 60%가 정답을 맞췄다. 이는 이중언어에 노출된 아기들이 두 개의 언어, 즉 아빠와 엄마의 언어를 구별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실험은 아직 마음이 형성 단계에 있는 유아들을 상대로 하는 것인 만큼, 나중에 두 번째 언어를 학습하는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건 저자의 말이 아니라, 내 생각일 뿐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나중에 제2의 언어를 습득한 사람도 두 개의 언어 체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즉 구조가 상당히 다른 마음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역지사지 능력이 어느 정도 향상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능하다.


이중언어자 가 더 나은 점수를 보인 또 다른 실험으로는 (역시 유명한) 스트룹 효과 실험이 있다. 검은색으로 쓰인 <빨간색>이라는 글자가 보이면 검은색을 클릭해야 하는 그 실험 말이다. 이중언어자들이 더 나은 반응속도를 보였는데, 이는 주의력이 더 뛰어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중언어자들은 단일언어자들보다 연령대에 상관 없이 더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 가장 큰 점수 차는 60대 이후에 나타났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노년기에 주의력을 향상시키는 데 좋다고 짐작할 수 있다.



치매를 예방할  있을까


이중언어 사용은 치매를 지연시킬 수 있을까? 이를 실험으로 입증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제3의 요인이 교란할 수 있어서다. 예컨대 전반적인 인지 기능이 좋기 때문에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동시에 치매도 늦게 겪을 수가 있다. 교육 수준이나 가정 환경 역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교란 요인이다.


그래서 교란 요인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데, 마침 인도에 하이데라바드라는 도시가 있다. 마침 내가 가본 유일한 인도 도시이기도 하다.


https://brunch.co.kr/@junatul/93


이 도시는 인도판 실리콘밸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인구의 약 60%가 이중언어를 구사하지만, 이중언어자라고 해서 경제 수준이나 교육 수준이 높지는 않다. 높은 문맹률과 다양한 언어라는 인도적 특징이 인도 정부의 집중 지원이라는 상황적 요소와 만나 발생한 결과다. 


주민들 중 문맹인들만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중언어 사용은 치매 증상을 평균 6년이나 지연시켰다. 거의 모든 교란 요인을 제거한 상황에서, 이중언어 사용이 치매 발생과 음의 상관관계를 보인 것이다.


아직도 의문은 남는다. 하이데라바드의 문맹인 이중언어자들은 모두 어렸을 때 두 개의 언어에 노출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심 가지는 문제는, 성인이 된 후에 새로운 언어를 배워도 치매 지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11세 이후에 다른 언어를 배운 사람들도 노년기 인지력 수준이 더 높게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확히 치매와 관련된 연구는 아니지만, 앞의 연구 결과와 결합하여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늦게라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치매 예방 및 지연에 효과가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다룬 탁월한 영화, <스틸 앨리스>



이중언어 사용이 신중함을 부른다


두 번째 언어로 직관을 발동할 수 있을까? 나처럼 외국어를 학교에서 배운 사람이라면,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즉 <촘스키 타임>에 두 개의 언어를 습득한 행운아들은 가능하지 않을까. 어떤 이중언어자라도 두 개의 언어가 똑같이 편할 수는 없다. 그래서 모국어와 외국어 등 두 개의 언어로 사고가 가능한 경우, 카너먼이 말하는 시스템 1(직관)과 시스템 2(숙고)가 각기 어떻게 기능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어로 욕설을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아무래도 외국어로는 욕설을 하기가 더 쉽다. 욕설 같이 느껴지는 정도가 약해서, 즉 감정이 덜 실리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의 상황, 즉 외국인이 한국어로 욕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 외국인 친구가 심한 욕설을 한국어로 내뱉는다면, 그게 농담이더라도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는 꽤 놀랄 것이다. 즉, 감정적 동요가 더 심하다.


다마지오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이 주장하듯, 직관이라는 것은 감정 체계와 연결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 감정은 직관적인, 즉 좀 더 빠른 의사 결정을 돕기 위해 진화한 시스템이다. 모국어에 비해 외국어로 하는 사고 체계는 직관과 감정 사이의 거리가 더 멀다. 따라서 직관이 더 늦게 작동하거나,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카너먼이 지적하는 수많은 행동경제학적 오류가 직관에서 나온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직관 대신 숙고에 의지하라는 것이 그의 충고다. 덜 익숙한 언어로 사고를 진행하면 직관에 의지하는 대신 숙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이중언어자가 와국어로 사고할 경우, 행동경제학적 실수를 할 가능성이 더 낮다.


이는 행동경제학의 유명한 실험들로 입증되었다. 예컨대, 똑같은 기대값을 가진 두 개의 복권 중 하나를 택하는 실험에서, 이중언어자들은 손실회피 경향을 훨씬 덜 보였다.


다만, 이 차이는 감정이 관련된 의사 결정에서만 유효하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논리 문제를 푸는 상황에서는, 단일언어자와 이중언어자 사이에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넬슨 만델라의 다음 명언이 실험으로 입증된 셈이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머리로 간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결론


저자는 수 차례에 걸쳐 이중언어자와 단일언어자의 뇌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총론 차원의 선언 같이 들린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중언어자가 이기는 게임이 많다. 이중언어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이것은 비용 대비 효과, 즉 효율성에 관한 질문이다. 언어 학습은 다른 두뇌 활동에 비해 품이 많이 들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인지 능력 향상 내지 유지에 도움이 되는 활동은 언어 학습 외에도 많다. 


나의 경우, 프랑스어는 여전히 읽는 정도만 가능하고, 쓰는 건 어려우며, 듣기와 말하기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본어는 듣기와 말하기 쪽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지만, 읽기와 쓰기 쪽이 어렵다. 스페인어, 독일어는 단어 몇 개나 기억 나는 정도다. 그리스어 알파벳은 여전히 읽을 수 있지만 러시아어 알파벳은 읽는 법도 잊어버렸다. 중국어는 시원하게 포기했다.


가장 최근에 시도해본 언어가 중국어였고, 이미 9년 전 일이다. 그 9년 동안 언어 대신 배운 것이 오히려 많다. 셔플 댄스, 영상 편집, 팟캐스팅, 재테크, 파이썬, 텐서플로, 유니티, 각종 유무산소 운동, 저탄고지 식이요법, 간헐적 단식, 캘리그래피, 베이킹... 모두 지금의 나에게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다. 새로 배운 이런 것들이 중국어보다 덜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선택은 자기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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