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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pr 27. 2023

정약용은 민중 봉기를 옹호했을까

[책을 읽고] 김호, <100년 전 살인사건>

100년 전 검안(검시)에는 전통을 지속하려는 의지와 변화에 대한 갈망이 혼재했다. (맺음말)


100년 전이라 하면 엄청 옛날일 것 같지만, 이미 일제 시대다.


<조선 시대 살인사건>이 아니라 <100년 전 살인사건>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살인사건의 반 이상이 대한제국 시절이며, 대개 1900년 이후다.


책은 일상의 폭력, 향촌의 실세, 인륜의 역설, 욕망의 분출 등, 인간 본성과 시대 환경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다루며 나아간다. 그리고 제5장, <변화하는 세상>에 이른다. 이 장의 첫 번째 사건은 동학교도 이학주 사건인데, 몇 번을 다시 들어도 명문장인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성리학은 누구에게도 차마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가르침은 제대로 준수되지 않았다. 일부 권세 있는 양반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약자들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에 끊임없이 노출되었다. (제5장)


성리학을 혐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대로 짚어주는 대목이다. 성리학은 (남송이라는 애매한 세상을 살아간갔기에 어떻게 보면 이해해줄 여지도 있는) 주희라는 독불장군에 의해 정립된 학문이지만, 그 뿌리를 만든 공자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자는 <서>, 즉 다른 인간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인륜의 핵심이라고 가르쳤지만, 그가 말하는 인간이란 조선 시대로 말하면 일부 권세 있는 양반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인간>과 같다. 즉, 재산 있는 성인 남자들이다.


차마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가? 살인, 강도만이 아니다. 예컨대 짐승을 도축하는 일이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양반도 고기는 먹고 싶다. 그래서 그걸, 즉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누군가에게 강요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한다고 그들을 업신여긴다.


규칙, 또는 법칙이 있다고 말해 놓고, 그 규칙과 법칙이 적용되는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이 있다고 가르치는 학문이나 종교는 위선적일 수밖에 없다.


동학 운동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약자들에게 강요한 조선의 권력층에 대항한 사건이었다. 맞물림이 어긋나는 단층이 균열을 축적하여 지진을 만들듯이, 역사의 거대한 움직임은 결국 작은 엇나감의 축적이 폭발한 것이다.


이학주 사건은 결국 사적 응징에 대해 법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책에서 여러 차례 나오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살인은 때로 옹호되었다. 사람의 목숨은 가장 중한 가치가 아니었다.


술 먹고 행패부리는 상놈을 양반이 때려죽인 사건에서, 범인은 중벌을 받기는 했으나 목숨은 건졌다. 왕인 정조는 사람의 목숨을 중하게 여겨 중벌을 내렸지만, 나중에 정약용은 이 사건에서 정조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평했다. 양반이 할 일을 했다는 것이다. 다만, 오줌을 먹이고 나막신으로 때린 것이 좀 심했다고 했을 뿐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 중 가장 깨인 사람 중 하나로 평가받는, 바로 그 정약용이 그렇게 판단했다.


정약용이 살아 있었다면 동학 운동을 옹호했을 것이라 나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학에 반대하는 동학이 아니라, 민중 운동으로서의 동학 운동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 어렵다.


옛날에 태어나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많다. 겨우 100년 전의 시공간은 지금의 관점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요소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100년 후 사람들은 우리의 지금을 되짚어 보며 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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