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May 15. 2023

인간의 뇌는
딥러닝 신경망처럼 작동한다

[책을 읽고] 마틴 셀리그먼 등, <호모 프로스펙투스> (1)

행복전도사(?) 마틴 셀리그만, 행동경제학의 대부 로이 바우마이스터, 그리고 웬 듣보잡 두 명 등 총 4명이 공저한 책이다. (그런데 제일 좋은 내용은 그 듣보잡 중 한 명이 쓴 부분이다.) 공저한 책의 퀄리티는 대개 떨어지기 마련이다. 통일성이란 게 없으니 당연하다. 책의 서두에는 이 점에 대한 고민이 직접 드러난다. 최대한 비슷한 스타일로 서술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전망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적응 진화 최종 산물이다. 즉,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전망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에서 한나 모이어와 마르틴 게스만도 주장한 것이며, 이 책은 공저인데도 통일성이 훌륭하다.)


전망이라 하면, 흔히 시뮬레이션을 떠올린다. 매우 의도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전망이란 무의식 영역에서 이미 이루어진다. 대니얼 카너먼 식으로 말하면, 시스템 1이나 2나 모두 전망을 포함한다. 말콤 글래드웰 식으로 말하자면, <블링크!> 역시 (무의식적이지만) 전망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시답잖은 얘기나 하면서 인간 찬양으로 흐르는가... (마틴 셀리그만이니까) 하고 하품을 하는 순간, 책은 제4장에 접어든다. 마음 거닐기에 관한 장이다. 듣보잡 중 하나였던 찬드라 스리파다의 이름이 내 마음에 영원히 각인되는 순간이다.



인간의 뇌는 딥러닝을 한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떠돈다. 명상을 해보면 잘 알게 되는, 우리 마음의 아주 핵심적인 특징이다. 스리파다에 따르면 이 떠도는 마음, 즉 마음 거닐기가 딥러닝이라는 것이다.


보조학습 시스템(Complementary Learning System, CLS)이라는 이론이 있다. 제임스 매클러랜드 등등 여러 명이 주장했다고 하니, 이름 하나 정도는 기억해주자. 이들은 기억의 인지 구조를 두 개의 시스템으로 나눈다.


첫째는 정확도가 아주 높은 표층 시스템으로, 주로 해마와 내측두엽에서 담당한다. 이 시스템은 경험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지만, 개념화(추상화) 능력이 없어 실제로 학습하는 능력은 거의 없다.


학습, 즉 패턴을 분석하고 추상화하는 능력은 주로 신피질에서 담당하는 두 번째 시스템에 의한 것이다. 데이터에서 패턴을 뽑아내는 데 특화된 시스템이다.


두 시스템의 차이점은 뉴런 네트워크 구조 자체에서도 확인된다. 표층 시스템에 해당하는 해마는 세포 밀도가 낮고, 배열이 규칙적이고, 발화 수준이 낮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매우 유사한 자극도 구별할 만큼 자세한 디테일을 포착하여 기록할 수 있다. 해마는 또한 가소성이 높으며, 매우 빠르게 데이터를 기록한다.


반면, 신피질은 그 반대편에 있다. 세포 밀도가 높고 배열이 불규칙하며, 매우 빠르게 활성화한다. 그래서 유사한 자극에 대해 중복 표상을 생성한다. 패턴을 잡아낸다는 말이다. 그래서 느리지만 반복적으로 발화한다.


바로 이 두 개의 시스템이 연결된 것이 우리의 학습 능력이다. 신경망 인공지능의 구조와 너무 흡사하다. 신경망 학습에서 많은 데이터가 중요하듯, 우리 뇌의 시스템도 많은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CLS의 핵심은, 바로 이 많은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 표층 시스템의 주 역할이며, 그 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마음 거닐기, 즉 잡생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 거닐기는 체계적이지 않다. 서로 관련도 없는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그 이유는 샘플 제시가 무작위적일 때 딥러닝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신경망 학습과 같이 우리의 뇌도 무작위적 샘플에서 패턴 학습이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 (구령에 맞추어 질서 있게 움직이는) <마음 구보>가 아니고 <마음 거닐기> 내지 <마음 널뛰기>가 필요한 것이다.


딥러닝과의 유사점은 그게 다가 아니다. 우리 뇌는 마음 거닐기에 많은 전망적 에피소드를 추가한다. 실제 사건이 아니라 공상이 포함되는 것이다. 이는 딥러닝에서 학습 데이터에 가짜 샘플을 포함시키는 행위와 유사하다. 샘플 수를 늘릴수록 학습에 유리한 것은 신경망 AI나 우리 뇌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딥러닝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머신러닝 포함, 최고의 책이다)


자유 의지


이 책이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은 자유 의지에 관한 것이다. 전망은 미래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망의 기능은 미래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함인가? 


인간은 막연하게 미래를 생각할 때는 낙관 쪽으로 편향을 보이지만, 막상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는 비관 편향을 보인다고 한다.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낙관적으로 대답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비관적이 된다. 막연한 단계에서는 희망적이지만, 실행 단계에서는 현실적으로 검토한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선택지를 늘리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순차적 계획, 확장된 시간 범위, 메타 표상, 그리고 창의성을 통해 인간은 그 어떤 생명체보다 더 크고 방대한 선택지 세트를 만들 수 있다.


자유 의지가 정말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여러 층위에서 긍정과 부정이 가능하지만, 결국 인간이 가진 자유 의지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선택의 자유라는 것이 찬드라 스리파다의 주장이다.



정서와 행동


정서는 현재에 있지만, 사실은 미래의 쓰임새 떄문에 존재한다. 


다마지오는 정서는 신체에 흔적을 남기고, 이 흔적은 비슷한 상황에서 재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사회적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한 학습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408쪽)


정서는 사회적 환경뿐 아니라 물리적 환경에서도 중요하다고 덧붙이고 싶다. 어쩄든,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이 말에 동의한다.


사회적 환경에서 정서의 역할과 관련한 매우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있다. 실험진은 정서를 고정시키는(!) 신약이라고 말하며 위약을 지급했다. 참가자들은 정서가 고정된 상태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슬픈 정서에 있는 사람이 남들을 잘 돕지만, 정서가 고정된 상태에서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슬픈 사람들은 기분이 나아질 것을 기대하며 남을 돕기 떄문에, 정서가 고정된 상태라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분노에 대한 실험 결과도 같았다. 정서가 고정된 상태라면, 사람들은 자신을 분노케 한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았다. 즉, 사람들이 분노 대상을 공격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해서라는 얘기다.


결국, 사람들의 행동은 정서 전망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정서는 현재의 것이지만, 사람들은 정서가 미래에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전망에 기반하여 행동을 결정한다.


정서와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들이 정서의 지속 시간을 과대 추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행운과 불행에 결국 적응한다는 사실로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진화 적응의 결과로 보인다. 보상이 실제보다 크다고 상상해야,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 계속 ***

매거진의 이전글 5월 둘째 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