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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y 17. 2023

같은 주제, 같은 방법론, 다른 책

[책을 읽고] 마틴 셀리그먼 등, <호모 프로스펙투스> (3)

전망 기능의 이상이 우울을 불러온다


10장은 마틴 셀리그먼의 장이다. 그는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9장의 결론은, 전망이 진화적 적응이었다는 것이라고. 꿈보다 해몽이라는 게 이런 경우를 말하는 듯하다. 9장을 다시 살펴보자. 도덕적 딜레마의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가를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즉각 파악한다. 이는 이 책에서 계속 말하는, 감정이란 장치를 통해 즉각 구성되는 직관이라는 속성 판단 능력에 의한 것이다. 


직관을 통해 우리는 사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판단한다. 다시 말해, 직관은 사회적 맥락에서도 생존에 큰 도움이 되는 도구로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참 멀리도 돌아온다. 9장을 마틴 셀리그먼이 썼다면 훨씬 잘 썼을 것이다. 챕터별로 질이 들쭉날쭉한 것은. 챕터를 나눠 쓰는 공저에서 흔히 발견되는 문제점이다.


10장의 주제는 우울증이다. 전망 기능에 결함이 생겼을 때 우울이 발생한다. 미래 사건을 잘못 생성하거나, 그에 대한 평가가 잘못되거나, 또는 전반적으로 미래 전망이 부정적 기조일 때 우울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대응법은 대단히 전형적이다. 마틴 셀리그먼의 다른 책을 읽는 느낌이다. 뭐,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구체적으로는, 막연하게 미래를 나쁘게 생각하는 대신 구체적으로, 중간 지점들을 포함해서 전망해보고, 목표도 구축하고 등등... zzZ



우리가 늙어서도 죽지 않는 이유는 창의성 때문이다


11장은 뇌과학의 영원한 주제 중 하나인 노화다. 노화로 인해 신체 기능은 위축되며, 뇌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뇌 기능 중에서는 노화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강되는 능력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창의성이다. 노화에 따라 사고의 유연성은 감소하지만, 경험의 다양성이 이를 상쇄하거나 역전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기효능감이다. 어렸을 때는 우주 정복 정도는 해야 뿌듯함이 느껴질 것 같지만, 나이를 먹다 보면 그냥 일상 생활을 잘해나가는 것만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에 따라 자기효능감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증가한다. 감정 통제를 더 잘 하게 되는 것도 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실험 결과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노화에 따라 약해지고 강해지는 영역에 대한 통찰은 우리의 상식과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노화 현상 자체에 대한 해석에 창의성을 개입시키는 부분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존기계가 번식 능력을 잃은 이후에 살아 있는 것은 낭비다. 이것이 바로 노화의 수수께끼다. 도대체 우리는 왜 번식 능력을 잃은 이후에도 살아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가장 유망한 가설은 이른바 <할머니 가설>이다. 스스로 번식하는 대신, 딸의 번식을 돕는 보조자로서, 할머니는 유전자의 자기 복제 및 확산에 기여한다는 설명이다. 인간의 창의성이 노화와 함께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을 이 가설의 연장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 딸이 자손을 낳고 기르는 것에 도움을 주려면, 생산성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 바로 그 측면에서 우리는 노후에도 창의성을 유지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적절한 사례


독후감


우연한 일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한나 모이어의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를 읽은 것은. 똑같은 주제를, 똑같은 도구, 즉 뇌과학으로 탐구한다. 공저인 점까지 같다. 굳이 다른 점 하나가 있다면, 찬드라 스리파다가 쓴 챕터, 즉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 딥러닝과 기가 막힐 정도로 유사하다는 내용뿐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호모 프로스펙투스>를 읽은 보람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매우 지루하며, 여럿이서 나눠 쓴 책의 웬만한 악덕을 두루 갖추고 있다. 딥러닝 파트를 제외하고는 도저히 추천하기 어려운 책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같은 주제, 같은 방법론으로 쓴 책을 한 권이 아니라 두 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 아닐까?


그렇다.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찬드라 스리파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 모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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