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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y 12. 2023

저항성 전분, 진짜일까?

사실이라기엔 너무 좋은데

저항성 전분(resistant starch)이란, 저항성 탄수화물의 한 종류다. 소장에서 소화는 별로 안 되는 대신, 대장에서 주로 발효되는, 즉 마이크로바이옴에 의해 분해되는 탄수화물이다. 먹을 게 넘쳐나는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것도 별로 없다. 문제는, 이게 사실일까 하는 것이다. 사실이기에 너무 좋다면, 사실이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


저항성 탄수화물(resistant carbohydrate)은 네 가지로 구분된다. RS1은 단단한 세포벽으로 감싸져 있어 아예 소화가 안 되는 애들이다. RS2는 덜 익은 바나나나 감자에서 볼 수 있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난소화성 탄수화물인데, 대개 전분이라서 저항성 전분이라 불린다. RS3도 저항성 전분인데, 감자, 고구마, 또는 밥(!)을 요리한 후 냉장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RS4는 화학 처리를 통해 소화가 어렵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당연히 RS3다. 유튜브 검색 화면이 저렇다. 밥을 지은 후 냉장실에 보관해서 저항성 전분을 만들면 혈당지수가 반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우리를 유혹한다. 이게 진짜라면 정말 대박 아닌가. 게다가 그렇게 식혀서 저항성 전분이 형성된 음식은 다시 가열해서 따뜻하게 먹어도 여전히 저항성 전분 상태라고 강조한다.


감자나 쌀 같은 식품들은 가열되었을 때 전분 분자가 재배열되어 좀 더 안정적인 상태로 변하는데, 이를 젤라틴화(gelatinization)라 한다. 이 상태에서 온도가 내려가면, 전분 분자들이 재결정화되면서 소화가 더 어려운 상태로 변한다고 한다.


https://pubmed.ncbi.nlm.nih.gov/26693746/


2015년에 발표된 위 연구를 보자. 따뜻한 밥(대조군), 실온에서 10시간 식힌 밥(실험군1), 4도씨에서 24시간 식힌 밥(실험군2)를 비교한 결과, 저항성 전분 비중이 각각 0.64%, 1.30%, 1.65%로 나타났다. 실온에서 식혀도 두 배가 되고, 냉장고에서 길게 식히면 더 늘어난다. 비율은 웃기지만,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저항성 전분의 양이 아니라 혈당에 대한 효과다.


이 실험에서는 15명의 건강한 성인에게 밥을 먹이고 혈당을 측정했다. 냉장고 밥의 경우 혈당 평균이 125였다. 그냥 밥은 150이었다. 표준 편차는 비슷하다. 이거, 너무 좋은 이야기 아닌가?


문제가 없지는 않다. p값이 겨우 0.047이다. 너무 기막힌 숫자 아닌가? 5% 유의 수준에서 p값이 4.7%다. 이건 뭐 주문해서 받은 숫자 같다. 난 의심병이 많아서 이런 숫자를 보면 이런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그러니까, 실험을 20번쯤 해서 드디어 원하는 결과가 나오자 환호하며 논문 잡지사에 전화를 하는...



저항성 전분이 1.65%라는 건, 밥 100그램에 저항성 전분이 겨우 1.65그램 있다는 거다. 이건 뭐 웃긴다. 그러나 겨우 그 정도 차이로 식후 혈당이 25나 낮아졌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기적의 식이요법이 되는 거다. 그런데 p값이 유의 수준을 딱 맞게 스치고 지나가는 게 너무 수상하지 않은가? (15명이 참가한 실험이라는 것도 웃기지만, 일단 넘어가자.)


반박하는 의견도 있다. 얼어죽을 뉴빙(New Bing God)은 그런 논문을 찾지 못하겠다고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유튜브 검색으로 곧바로 찾아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20Wd1VrFo 


식이요법 관련 검색하면 자주 뜨는 사람 중 하나인 Ken Berry 박사의 유튜브 영상이다. 그런데 내용이 없다. 그냥 4분 동안, 저항성 전분 핑계로 감자, 쌀, 파스타를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저항성 전분을 증가시키는 요리법이 이미 많은 연구에 의해 부정되었다고 말하면서, 링크 하나 제공하지 않으며, 그 연구 결과에 대해 일언반구도 안 한다. (후원 받는 링크와 제품 파는 링크는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화면에 나오는 논문을 직접 구글로 찾았다. 


https://pubmed.ncbi.nlm.nih.gov/34293081/


2021년 발표된 연구다. 타액 내 아밀라아제 농도, 저항성 전분을 늘린다는 요리법, 그리고 소화 관련 유전자형(genotype)이 식후 혈당 상승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20명(본 실험)에게 50그램의 먹을 것(덱스트린, 덱스트린 혼합물, 그냥 밥, 식힌 밥)을 제공하고, 식전과 식후 2시간마다 혈당을 측정했다. 결론은 그 어떤 변수도 아무런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시, 사실이기에 너무 좋은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이걸로, 저항성 전분 핑계로 밥, 떡, 파스타를 마구 먹으려는 나의 계획은 처절하게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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