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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y 28. 2023

민주주의는 지속가능한가

[책을 읽고] 임혁백,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전개와 2010년대 자스민 혁명, 그리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생각해보는 즐거운 독서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직접민주주의가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1) 정치 참여 계층이 동질적이고, 2) 참여 인원 수가 적어서 가능했다고 하는데, 1)은 적어도 19세기 이후에는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에 반하는 주장이고, 2)는 기술 진보로 더는 벽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노예제다.


근대 이후에는 정부 규모가 커져서 각 개인이 공적 업무의 작은 부분밖에 맡을 수 없어 직접민주주의가 안 된다고 하는데, 이건 대의제도 옹호가 아니라 관료주의 옹호다. 세상의 크기를 생각하면 전문가가 필요하니, 관료제는 필요악이다. 그러나 관료와 시민 사이에 정치인이라는 대리인이 한 겹 더 필요하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관료와 시민을 그냥 연결하면 된다. 블록체인을 쓰기 싫다면 그냥 기존의 RSA 암호 체계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저자는 글 말미에 헤테라키(heterarchy)라는 개념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다름(hetero)의 지배(archy)다. 동질적인 구성원들로만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철회하는 점은 반가우나, 저자는 이 개념을 너무 폭넓고 모호하게 적용한다.


온라인 포럼과 당내 경선 온라인 투표 정도를 가지고 침소봉대하여 헤테라키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양극화, 포퓰리즘, 스트롱맨 정치를 오히려 방치하게 되는 결과를 낳지 않을지 매우 우려된다.


SNS 정치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말하면서, 별로 다를 게 없는 온라인 포럼은 헤테라키의 사례라고 추켜세우는 것도 아전인수 아닐까? 좁은 지면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 결론까지 내리려고 하다가 발생한 무리수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세계적인 민주주의 퇴행의 현실을 진단하는 부분을 좀 더 깊게 다루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푸틴, 트럼프, 시진핑, 에르도안(터키), 모디(인도), 두에르테(필리핀), 김정은... 스트롱맨이 장악한 나라의 목록은 끝이 없다.


이 책을 읽고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두 권 더 리딩 리스트에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자기 역할을 훌륭히 했다.


스트롱맨의 원조는 이거지


사족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한국과 베트남에 민주주의를 이식했다는 문장을 만나고 어이가 가출했다. 너무 뻔한 얘기를 하려니 창피하지만, 미국이 다른 나라 정부에서 정말 원하는 것은 친미 독재자다. 2차 대전 직후 한국과 베트남에 했던 짓이 바로 그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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