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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n 19. 2023

어색한 표현일까 잘못된 표현일까

[책을 읽고] 안상순, <우리말 어감사전>

평생 사전을 만들어온 국문학자가 쓴 책이다. 우리말 표현 몇 가지의 미묘한 어감 차이를 설명한다. 근거가 있는 이야기도,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있지만, 외국어 배울 때나 생각해보던 어감 차이를 우리말 단어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은 참신한 경험이었다.


규범문법  기술문법


국문학자인데다가 사전을 만들어온 사람이라서, 규범문법적 시각이 강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자연스러운 표현과 그렇지 않은 표현을 대비해서 보여주는데, 자연스럽다는 말 대신 올바르다는 표현을, 부자연스럽다는 표현 대신에 어색하거나 바르지 않게 쓰인 경우라는 말을 쓴다. 어색하다는 표현까지는 괜찮아 보이지만, "바르지 않다"라는 단정적인 표현은 정말 문법학자 답다.


예를 들면, 아래 문장에서 O는 올바른, *는 어색한, X는 바르지 않은 표현이라고 한다.


인간은 도구를(O) / 연장을(*) / 가구를(X) 만드는 동물이다. (11쪽)


위의 예시는 대체로 동의할 만하다. 그러나 저자의 예시에 언제나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의 열정적인 연설에 청중은 깊이 감동했다(O) / 감격했다(X). (33쪽)
강의 / 강연 시간표 (46쪽)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걸까? 아마도, 직업으로 굳어진 습관이 옳고 그른 표현을 단정적으로 짚어내는 것 같다. 이런 입장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신문과 심문에 대한 설명에서다.


신문은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행위인 반면, 심문은 원고나 피고가 재판에서 직접 발언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행위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어사전이 '심문'의 두 번째 뜻으로 '자세히 따져 물음'이라는 풀이를 적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헷갈리는 단어를 더욱 혼동하게 만든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그 뜻으로는 '신문'을 쓰면 된다는 논리다.


지금이라도 국어사전은 이러한 풀이를 삭제하든지 그 뜻이 현대 국어에서 사어화한 것으로 처리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55쪽)


말이란 생물이다. 문법학자가 언어의 테두리를 관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테두리를 정하려고 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문법학자에게는 그럴 권한도 힘도 없다. 수십 년 동안 '짜장면'을 비표준어로 낙인 찍어오던 학자들도 결국 몇 년 전에 손들지 않았던가.


나는 기본적으로 기술문법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인터넷에서 널리 쓰이는 비문법적 표현 중 일부는 매우 거슬리게 느끼기도 한다. 규범문법과 기술문법은 서로를 밀어내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관계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기술문법에는 학자와 일반인이 섞여 있지만, 규범문법 쪽에는 대개 학자들뿐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건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몇 년 전, 나는 특정 표현만이 옳다고 우기는 미국인 문법 강사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어디나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배운 것들 정리


골프를 치다가 만난 한국계 미국인이 "고맙습니다"와 "감사합니다"의 차이를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전자가 순우리말인데 비해 후자는 한자어라고 설명하면서, 아무래도 한자어이니 고마운 마음이 덜 실릴 수도 있다는 완전히 주관적이고 쓸데없는 사족을 덧붙였다.


감사는 일본어로 "칸샤"이고 한자도 똑같다. 그래서 감사가 일본어 유래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그렇지 않다면서, 증거로 무려 조선왕조실록을 들이민다.


<조선왕조실록>만 보더라도 <태조실록>에서 <순종실록>에 이르기까지 '감사'가 빈도 높게 나타날 뿐 아니라, <송서>와 같은 중국 고문헌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감사'의 일본어 기원설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37쪽)


거만과 오만과 교만을 설명하는 것도 재미있다. 이 세 단어의 차이를 말로 설명하지는 못해도, 그냥 감으로는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그 점을 저자는 아주 재치있게 표현한다.


'거만'은 셋 중 가장 겉으로 잘 드러난다. 만일 어떤 행동을 동영상으로 찍은 후 무음 상태로 본다면, 거만한 행동을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다. (49쪽)


고독과 외로움은 영어의 solitude와 loneliness에 정확하게 대응한 것처럼 설명하는데,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인 세상이다. 언어도 교류에 따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당연하다.


정치인이 자국민을 지칭할 때, 예전에는 동포라는 단어를 많이 썼지만 점차 국민으로 변해갔다. 민주화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포는 감정이 실린 단어지만, 국민은 정확한 개념을 전달하는 단어다.


- 이천만 동포에게 고합니다 (1931년 동아일보)
- 친애하는 국내외 동포 여러분 (1967년 대통령 연설)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019년 대통령 연설) (90쪽)


도시와 도회지와 대처(?)를 설명하는 대목은, 이게 어느 시절에 나온 책인지 뒷표지를 펴보게 만들었다. 

도회지란 단어는 아마 일제시대에나 썼을 것 같은 느낌이고, 대처(?)는 구한말에나 썼을 법한 느낌이다.

규범문법 쪽인 저자가 어느 시대에 머무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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