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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n 22. 2023

자아는 없다

[책을 읽고] 닉 체이터, <생각한다는 착각> (2)

지난 글에서 닉 체이터의 대담한 주장을 결국 모조리 반박하는 셈이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측면에서 그의 주장을 살펴보자.

<에필로그>에서 닉 체이터는 세 가지 주장을 펼친다.


하나, 마음은 1차원으로 깊이가 없으므로, 자아라는 것도 없다.

둘, 개인의 마음(마인드)은 부정형이지만, 집단 차원에서는 안정된 상태가 가능한데, 그것이 문화다.

셋, 문화와 선례는 보수적이지만, 진보는 가능하다.


첫 번째 주장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나머지 둘은 논리적으로도 실증적으로 틀린 이야기다.

문제는, 이 에필로그야말로 이 책에서 가장 독창적인 내용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하나씩 살펴보자.



자아는 없다


첫 번째 주장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자아가 없다고 생각하면, 삶의 많은 문제가 그야말로 없어진다.

자아가 없다는 주장은 내가 정말 믿고 싶은 주장 중 하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아는 존재한다.

자아의 실체는 일관성 있는 하나의 이야기이고,

그 재료는 뇌의 DMN이 주관하는 <자서전적 기억>이다.


닉 체이터는 뇌가 실체적인 기억을 보관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므로, 자서전적 기억이 존재할 여지도 없다.

따라서 자아가 없다는 그의 주장은 일단 내적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매 순간 상황에 따라 즉각적이고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자아>라는 이름의 허상이라는 그의 주장은 우리의 경험과 모순된다.

만약 그의 주장이 맞다면 우리의 자아는 매우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해야 할 텐데, 실제로는 매우 일관적이다.



집단적으로는 안정하다


이렇게 불안하고 변화무쌍한 자아로는 살아가기 어렵다.

저자는 그래서 우리가 <선례>에 기대어 일관성을 유지한다고 말하며,

그것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에 있다고 말한다.

그 집단적 선례의 집합이 바로 문화다.


논리 전개는 그럴싸하지만, 그의 주장은 또 우리의 경험과 모순된다.

첫째, 우리의 1차원적 마인드가 어떻게 선례를 <기억>한단 말인가?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주장하는 바를 에필로그에서 뒤집지 않는다면, 이는 불가능하다.


둘째, 부정형인 마인드들이 모여서 문화를 형성하는 것은 가능한가?

그것은 외부적인 기록 장치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이는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문화가 없었다 내지 가능하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이는 인류학적 발견과 배치되고, 그냥 일부 무리 동물의 생태를 관찰해도 아니라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진보가 가능하다


결국 1차원적인 마인드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가 안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선례와 문화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보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닉 체이터는 진보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기억이 부서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는 기존의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조금씩 진보한다.

DNA 사슬 자체는 매우 견고하지만, 가끔 문제를 일으켜 변이를 만들고, 그에 따라 진화한다는 관점과 유사하다고 보면 될까?


에필로그에서 그가 갑자기 새롭게 펼치는 주장은 흥미롭다.

자아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문화로 인해 안정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문화는 진보할 수 있다.

이렇게 3개의 명제는 연속해서 역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운데 명제를 빼면, 그냥 순접이다.

자아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진보한다.


이걸 굳이 한번 비틀어서, 우리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을 억지로 끼워 넣은 이유는,

실제로 우리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와는 달리, 우리는 집단적으로는 물론 개인 차원에서도 안정된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자아의 본질이다.



소결


결국 지난 번 글과 같은 결론을 내려야겠다.

이 책은 참 재미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책읽기의 본질이 도끼로 얼음을 깨는 거라고 한다면, 적어도 한번 제대로 내리쳤다는 점은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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