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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n 29. 2023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변명

[책을 읽고] 얀-베르너 뮐러, <민주주의 공부> (5)

지금까지 서구에서 우익 포퓰리즘 권위주의 정당이나 정치인이 기성 보수 엘리트의 협조 없이 정권을 잡은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20쪽)


트럼프의 당선은 그저 당파 정치의 결과일 뿐이었다. 스스로를 공화당 지지자로 여기는 시민들이 대부분의 유권자가 선거일에 하는 일, 즉 투표소에 나가서 자신의 당에 한 표를 던지는 행위를 한 결과라는 것이다. 후보자가 평범하지 않았을 뿐, 이 행위 자체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48쪽)


즉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트럼프가 아니라 공화당을 찍었다는 얘기다. 더 정확한 설명은 이렇다. 그들은 트럼프가 좋아서 찍은 게 아니고 바이든이나 민주당이 싫어서 그를 찍었다. 당파 정치의 결과다. 


양당제 국가에서 두 당은 중도파의 표를 얻기 위해 서로 비슷해진다는 것이 그동안의 정설이었지만, 21세기 양당제의 두 당은 서로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달리고 있다. 웬만하면 집권에 연정이 필요한 다당제 정치에서도 당파 정치는 마찬가지다. 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점점 더 양 극단의 색깔이 진해지고 있다.


물론 이런 빠돌순이들은 예외다


나는 대의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의제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대의제는 태생부터가 민주주의의 대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대의제가 민주주의를 집어 삼키는 형국이다. 게다가, 그 대의제는 당파 정치를 통해 국민 분열에 힘쓰고 있다.


인구가 많아서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집에 컴퓨터가 없는 모양이다.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남는 수준의 기술을 이미 가지고 있다. 블록체인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51% 공격 뿐인데, 51%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실현하려고 하는 바로 그것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런 행동의 배경에는 어떤 명분에 대한 열렬한 지지보다 어떤 것 또는 어떤 이에 대해 열렬한 반대가 더 중요해진 오늘날의 선거가 있다. (49쪽)


그렇다면, 아주 좋은 도구가 이미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미 활용되었던 도편추방제다. 인기 투표가 아니라 비호감 투표다. 극단적인 사람들이 걸러지고 좀 더 중도적인 대안이 남지 않을까? 정책 차원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당장 그것이 어렵다면 누군가에게 권력을 쥐어주는 투표 대신, 누군가를 추방하는 투표가 현실적으로도 더 나아 보인다.


요약하면, 직접 민주주의는 기술적으로 이제 실현 가능하다. 기득권층, 정치권은 당연히 싫어하는 선택지다. 현재로서는, 투표로 심판하고 투표로 실현하는 방법뿐이다. 인류가 1000년 뒤에도 존재한다면, 정치 체계는 직접 민주주의 아니면 독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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