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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06. 2023

궁금이에게 만화로 대답하기

[책을 읽고] 랜들 먼로, <위험한 과학책>

기상천외한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들에 대한 진지하지면서도 웃기는 과학적인 대답들. 저자는 본인을 만화가라고 지칭하고 있지만, 물리학 전공이고 NASA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다소 geek스러운 유머와 함께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보여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만화도 촌철살인이다.


예컨대 스카이넷에 관한 만화는 내용이 이렇다.


2017년 8월 4일, 스카이넷이 온라인화되면서 발전소 연료 구매 결정을 맡게 되었다. 8월 29일, 스카이넷은 자의식이 생겼고 인류를 파괴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스카이넷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연료를 구매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결국 누군가가 스카이넷을 꺼버렸다. (137쪽)



바닷물이 (환상의 배수구를 통해) 빠지면서 육지가 드러나면 어떻게 될까? 바닷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네덜란드가 그간의 울분 때문에 드러난 땅들을 다 자기 땅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유럽 전체를 먹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격하고, 나중에는 지구 전체가 <네덜란드>가 된다. 만약 이 물이 배수구를 통해 달 표면으로 빠져 나간다면, 지구는 전체가 <네덜란드>가 되고, 달은 <뉴 네덜란드>가 된다.


찻잔에 든 물을 스푼으로 빠르게 저으면 끓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말(히히힝!)이 필요하다고 대답한다. 2분 내에 찻잔 속 물 온도를 끓는 점까지 올리려면 700와트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는 거의 1마력 정도다. 따라서 말을 데려와서 스푼을 저어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는 게 좋다. (이걸 그림으로도 그려놨다. ㅋㅋㅋ)



가장 외로운 인간은 누구일까? 즉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 홀로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이 돌연 철학적이 된다. 살아 있는 인간이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지는 방법은 달 궤도를 도는 탐사선을 타고 달 뒷면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 위에 발자국을 찍고 있을 때 궤도를 돌던 콜린스가 그런 경우다. 그런데 콜린스는 <불을 나르며>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외롭다거나 버려졌다는 기분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달 표면을 차지한 것들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다. (중략) 고독이라는 감정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고독했고, 달 뒤로 사라지자마자 지구와의 무선 연락이 끊어져 그런 감정은 더욱 커졌다. (545쪽)


아폴로 15호에서 같은 역할을 맡았던 앨 워든은 이 고독한 경험을 즐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온전히 즐겼다. (중략) 달의 뒤편에서는 심지어 휴스턴 본부와도 대화할 필요가 없었다. 그게 비행 중 가장 좋았던 점이다. (546쪽)


대다수 별의 이름은 숫자와 기호로 되어 있어 영 친근하지가 않다. 만약 모든 별의 이름을 (발음 가능한) 알파벳으로 지으려면 이름이 얼마나 길어야 할까? 


그냥 생각하면 굉장히 길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별의 이름을 <자음+모음>으로 된 음절 단위로 짓는다고 하면, 알파벳 2개를 추가할 때마다 이름의 경우의 수가 105배 늘어난다. 자음 21개 * 모음 5개의 조합이니까. 그런데 숫자 2개를 추가할 때도 경우의 수는 정확히 100배가 늘어난다. 즉, <자음+모음> 조합(정확히는 순열)은 숫자로 이름을 짓는 경우와 비슷한 경우의 수를 가진다. 


우주에는 별이 3*10^23개 정도 있다고 하므로 이름의 길이도 대략 23글자면 된다. 이 정도라면, 북미 원주민들의 재치 넘치는 이름들보다도 짧은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일부 <이상하고 걱정스러운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화염 토네이도"라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은 당연히 답이 필요없지만 (검색도 안 해보고 질문을 하다니...) 공진 현상을 이용해서 비행기를 추락시키려면 비행기와 같은 주파수로 야옹거리는 고양이가 몇 마리 필요할까 하는 질문은 충분히 대답해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허리케인의 눈에서 핵무기를 터뜨리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궁금하다. (허리케인은 하강기류이고 핵무기는 상승기류를 만들테니 서로 상쇄될 수도 있겠지만 유체역학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질문은 원소 벽돌로 주기율표를 만들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이었다. 플루오린 근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냥 불이 나겠지만), 그리고 반감기가 극히 짧은 방사성 원소들로 만든 벽돌이 (만들 수나 있을지 걱정이지만)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참고로 이 주기율표는 위에서부터 한 층씩 쌓아 내려가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핵폭발로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이 책의 속편이 있다는데, 빨리 리디 셀렉트에 올라왔으면 좋겠다... 라고 쓰면서 글을 끝내려고 했는데, 벌써 올려줬다! 리디 셀렉트는 정말 돈을 내는 게 아니라 내가 돈을 버는 구독 서비스라는 생각이 든다. 리디 셀렉트와 함께한 것이 벌써 만 4년이 되어 간다. 리디 셀렉트, 고맙다! ^^



***


메모 모음


- 후버 댐은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자동 제어로 몇 년 동안 계속 가동될 수 있다고 한다.


- 8000미터 이상의 높이는 <죽음의 지대>라고 불리는데, 공기 중 산소가 너무 적어서 공기에서 산소를 얻는 것이 아니라 공기에 산소를 빼앗기게 된다.


- 번개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니, 난 번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정보 검색을 해봤는데, 번개에 대해서는 아직 인류가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프랭클린이 새삼 더욱 대단해 보인다.


- 물이 들어 있는 컵에서, 물 아래 쪽에 진공을 만든다면, 진공이 물과 컵을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컵 바닥이 이 깨지게 된다. 이 '물 망치 효과'는 파티에서 물병 위를 내리쳐 바닥을 날리는 묘기에서 활용된다.


- 외계 문명이 지구 문명을 관측하려고 한다면, 전파보다는 가시광선이 더 유망하다. 태양광이 지구에 의해 반사되는 <지구광>이 그 주인공이다.


- 면역 증강제들은 신체가 대량의 대장균에 감염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백혈구 생산을 자극한다.


- 금성 상층 대기는 놀랄 만큼 지구와 비슷하다. 55km 상공이라면, 산소 마스크와 보호용 고무 수트만 입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기온도 실온 정도이고 기압도 지구의 산악과 비슷하다.


- 오로지 비행의 관점에서만 보면, ,타이탄은 지구보다도 우호적인 환경이다. 대기 밀도는 높지만 중력이 약해서 표면 기압은 지구의 1.5배밖에 안 되면서 공기 밀도는 4배나 높다. 대형 오리발만 있다면 공기 중에서 수영하듯 날 수 있을 것이다.


- 로켓의 에너지 중 대기권 밖으로 들어올리기 위해 쓰이는 에너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에너지는 옆으로 궤도 속도를 확보하는 데 사용된다.


- 인간의 눈은 밝기를 로그 스케일로 판단한다. 태양의 밝기가 1/3로 줄어도 약간 흐려졌다고밖에 느끼지 못할 것이다. (다른 감각기관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 (거의 혼자서 현대 정보 이론을 만든) 클로드 섀넌(Cluade Shannon)에 따르면, 전형적인 영어 문장의 정보량은 글자당 1 내지 1.2비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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