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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05. 2023

같은 주제, 완전히 다른 레벨

톰 필립스, <인간의 흑역사> 대 장 마르미옹, <바보의 세계>

톰 필립스의 <인간의 흑역사>, 그리고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의 <바보의 세계>.
이 둘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돌아보자는, 아주 똑같은 기획의 책이다. 


그런데 평점이 4.7 대 3.1이다. 

집단지성의 정확함을 무시하고 일단 읽어나 보자고 두 책에게 같은 기회를 준 (심지어 평점 낮은 책을 먼저 읽기 시작한) 내가 어리석었다. 


영국인의 책은 아주 재미있고 웃긴 반면, 프랑스인의 책은 썰렁하고 재미없고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재미없는 정도가 불쾌할 정도라서, 실제로 불쾌하다는 리뷰가 여럿 보인다.


신기한 것은, 저 불쾌할 정도로 썰렁한 프랑스인이 스티븐 핑커, 롤프 도벨리 등 유명인들을 인터뷰했다는 점이다. 핑커나 도벨리의 이력서에 흑역사로 남지 않을까?


실제로 리뷰가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


<인간의 흑역사>

-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감사의말까지 너무 재미있었던 책.

- 이런 책은 그냥 필독서. 재미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 제 인생 최고의 역사서입니다. 너무 재미있네요.


<바보의 세계>

- 모두까기와 조롱을 즐기지만 아마도 가장 바보는 작가 자신인 듯.

- 괜히 어려운 용어를 나열하면서 지식을 뽐내는 것으로 진정한 바보는 본인임을 드러냄.

- 유머 하나 없는 신경질뿐이네요.


깜냥이라는 단어가 바로 이럴 때 쓸 만한 것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래 요약은 톰 필립스의 책에서 나온 것들이다. 한승태가 세계사 책을 썼다면 이런 식이지 않았을까? ㅋㅋㅋㅋㅋ (다만, 이스터 섬의 멸망에 대해서는 요즘 이견이 나오는 중이고, 케슬러 증후군에 대해서도 반론이 만만치 않다는 점은 감안하자.)


- 하라파 문명은 전쟁을 하지 않은 듯한데, 어쩌면 고고학자들을 골탕 먹이려고 전쟁 관련 기록을 모두 삭제했는지도 모른다.


- 카디스 전투(술판)를 생각해보면, 전쟁 대신 정기적으로 이웃 나라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는 것을 제도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EU가 바로 그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식민지화를 피해간 태국에도 전기가 들어오는 걸 보면, 식민화를 통한 근대화 이론은 맞지 않는 것 같다.


- 존 레드야드만큼 어깨가 떡 벌어지지 않은 사람은 그냥 가만히 있자.


- 1987년작 007 리빙 데일라이트에 보면, 미국과 동맹을 맺은 무자헤딘 리더가 나오는데 영국 상류층 악센트를 구사하는 훈남 빈라덴 정도의 모습으로 나온다.


-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은 중합수라는 특수한 물의 합성 기술을 선점하려고 맹렬하게 경쟁했다. 중합수는 일반적인 물에 비해 점성이 크고 액체로 존재하는 온도 범위가 넓어 훨씬 더 안정한 성질을 보였으며, 일반적인 물과 섞일 경우 이런 특징을 전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니까 이 물을 무기로 사용하면 상대측 영토에 존재하는 물을 끈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그 정체는 결국... 구정물이었다. (중합수는 Kurt Vonnegut의 Cat's Cradle에 나오는 물과 대단히 유사하다. 그런데 Cat's Cradle은 1963년에 나온 소설이고, 중합수 발견은 1966년이다! 커트 보네것이 천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거 장난이 아니군... 설마 이 소련 과학자들이 Cat's Cradle이라는 미국 소설을 어떻게 구해서 읽고 맛이 갔던 건가?)


- 토머스 미즐리는 리터당 3센트 더 벌자고 (위험성을 매우 잘 알면서) 휘발유에 납을 첨가하는 것도 모자라, CFC를 발명해서 (물론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오존층을 파괴하고, DDT 제작에도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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