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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철 Dec 09. 2023

변론일기 #9 왜 사과하지 않으십니까

#9 강남역 낙하 사고 사건

#9 강남역 낙하 사고 사건 - 왜 사과하지 않으십니까


하늘에서 땅으로, 묵직한 것이 떨어졌습니다. 무엇인지 볼 겨를도, 피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낡은 건물 3층에서 외벽에 붙어있던 철문이 건물 앞을 지나던 행인의 위로 떨어진 것입니다. 철문에 맞은 행인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고 쓰러졌습니다.



피해자는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주변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벌어진 큰 사고였음에도 출동한 경찰관은 사건 처리에 미온적이었습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그저 불운한 사고로 여기는 듯 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병원으로 달려갔고, 피해자는 으스러진 어깨뼈를 붙이기 위한 긴급수술에 들어갔습니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상황을 확인하고 제게 전화를 걸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통화하며 상황을 그려보니,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만 있어도 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이 사고가 그저 우연하고 불운한 사고가 아니고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인재였다면, 처음부터 철저하게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칫 미흡한 초동조치로 인해 사건의 내막이 가려지고 사고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면, 영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급히 현장으로 출발했습니다. 도착해보니, 예상대로 가장 중요한 증거인 철문은 건물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성인 남자가 혼자 들기도 어려울 만큼 무거운 철문은 모서리가 찌그러진 채 건물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현장 사진을 촬영하고 주변 탐문을 시작했습니다. 주변 업장의 업주들과 대화하며 사건의 경위를 확인했습니다.      


협조를 구해 문이 떨어진 3층 업소에도 들어갔습니다. 문이 떨어진 자리에는 얇은 경첩 4개가 힘없이 찢겨 있었습니다. 경첩이 30kg 가까이나 되는 무거운 철문을 지탱하지 못하고 찢겨 나간 것이었습니다. 이 끔찍한 사고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져야 할 인재가 분명했습니다.     


곧바로 고소장을 작성하고 경찰에 제출하였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을 알리고 신속한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고맙게도 담당 경찰관 역시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하였습니다.      


그렇게 일 년이 더 넘는 시간 동안 수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다행히도 피해자의 상처는 잘 아물었지만 정신적인 트라우마는 극복하기 어려웠습니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해당 점포를 사용하던 임차인은 미안하다고는 하면서도 자신만의 책임이 아니라면서 사고의 책임을 건물주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건물주와 그 가족들은 그 어떤 사과나 유감의 표시도 없이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며 법대로 하라고 말한 뿐이었습니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은 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은 울분에 찬 마음으로 수사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수사 도중 건물주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고, 형사사건에서 결국 임차인만 처벌받게 되었습니다. 책임을 가릴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더 문제가 생겼습니다. 건물주의 사망으로 건물을 상속받은 건물주의 가족들이 건물을 상속받자마자 철거해버린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무책임하고 비겁하게 만든 것일까요? 건물주의 상속인들의 행동은 피해자와 가족들을 더욱 힘들게만 할 뿐이었습니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고민 끝에 임차인 뿐만 아니라 건물주의 상속인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손해배상의 의미도 있지만, 끝까지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건물주의 상속인들에 대하여 항의함과 동시에 사과를 요구하기 위한 마지막 조치였습니다.     


다시 시작된 민사 소송은 형사사건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건물 외벽에 붙은 창의 관리책임이 누구에게 있냐는 쟁점을 두고 피해자와 임차인, 건물주의 상속인들이 공방을 시작했습니다. 법리적으로 쉽지 않은 싸움이었고, 무엇보다 건물이 철거되어 증거를 새롭게 찾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는 건물주의 상속인들을 향해 무엇이라도 해야했습니다. 사고가 난 건물의 과거 이력부터 뒤져내어 해당 건물의 건축법 위반의 가능성을 포함한 문제점들을 찾아내어 제시하였습니다. 철문의 역할과 건물주의 책임에 대해 강변했습니다. 이들이 사과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이들을 향해 법원을 통해 '이 끔찍한 사고의 책임은 바로 당신들에게 있다'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이 끔찍한 사고의 책임은 바로 당신들에게 있다!"


그렇게 다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론하였습니다. 그리고 승소하였습니다. 법원은 피해자가 청구한 피해금액의 대부분을 손해로 인정하였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이 사건 사고에 대해 임차인뿐만 아니라 건물주의 상속인들까지 책임을 함께져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건물주의 상속인들은 소송이 끝나는 날까지도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하며 그 어떤 사과의 말도 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이 불운하고 끔찍한 사고의 책임이 건물주와 그 상속인들에게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확인한 것입니다.     


건물주의 상속인들은 항소를 포기하였습니다. 판결에 따른 이자가 발생하는 것이 아까웠는지, 손해배상금도 즉시 지급했습니다. 비로소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한 것일까요. 그것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든 아니면 무용하게 돈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경제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든, 명확한 사실은 건물주의 상속인들은 이 끔찍한 사고의 책임을 모두 지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피해자와 가족분들께 승소 소식을 알리는 날, 법원을 통해 그 날의 사고의 책임이 저들에게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확인받았다고 말씀드리며, 이제 평안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자연스러운 행동이 가져다주는 일상의 평화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임하기를 소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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