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철 Dec 09. 2023

변론일기 #10 오랫동안 당신이 보고 싶었습니다

#10 사기 사건, 캄보디아 출장기

#10 사기 사건, 캄보디아 출장기 - 오랫동안 당신이 보고 싶었습니다


고개를 올려다봐야 할 만큼의 장신에 호리호리한 몸매, 잘 빗어넘긴 희끗희끗한 흰머리에 정갈한 옷차림까지, A의 첫인상은 노신사 그 자체였습니다. 업계의 전문가로 통했고 이력도 화려했습니다. A의 손을 거치니 수출 업적은 날로 성장일로였습니다. 그야말로 마이더스의 손. 회장님으로 불린 A를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거래는 A에 대한 믿음의 크기에 따라 점점 늘어갔습니다. 감당이 가능할 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거래 규모가 늘어난 그 어느 때가 될 때까지, 그 누구도 A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연찮은 기회에 시작된 작은 의구심은 거대한 댐에 균열을 일으켰고, 그 작은 균열이 댐을 무너뜨렸습니다.      


댐이 무너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오랜 시간 쌓여 온 거짓의 물이 한꺼번에 덮쳐 내렸습니다.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름도, 나이도, 고향도, 학력도 그 무엇 하나 맞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업계의 전문가로 통하며 회장님으로 불렸던 그 정갈한 노신사 A는 A가 아니었습니다.  

    

망연자실한 직원들이 정신을 부여잡고 가늠할 수도 없는 사기극의 전말을 쫓아가는 동안 회사의 손해는 점점 분명해졌고, 그 사이 A는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건을 수임하고 직원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의 이야기에 따라 서류를 뒤지며 사건을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아도 사기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범죄가 있을 수 있느냐며 상황을 부정하는 직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사건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서둘러 A에 대한 범죄사실을 정리하고 기초적인 증거자료를 모아 고소장을 작성하고 검찰에 접수하였습니다. A가 해외로 도피하기 전에 빠르게 A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출국금지 등 조치가 적절하게 내려지기만 하면, 시간이 걸려도 한국에서 수배하여 잡을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검찰에서는 A의 이름으로 아무리 검색해도 A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회사가 알고 있던 A의 이름과 나이, 고향 등의 정보를 이리저리 조합해 보아도 A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인적사항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 어떠한 정보도 사실인 것이 없었습니다. 그 사이 A는 외국으로 도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가명과 환상 속에 만들어진 허무인 A, 이 세계 어느 나라에 있는지 모르는 그 A를 쫓아야 했습니다.      


“Catch me if you can”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쫓는 톰 행크스의 심정이 그랬을까요.     


A에 대해서 단서가 될 만한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좋았습니다. A의 흔적을 쫓아 어느 지방의 허름한 공장을 찾아가고, A의 고향으로 알려진 마을로 내려가 이장님과 어르신들에게 묻기를 한 세월.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확보할 수 있었지만, A의 행적은 묘연할 뿐이었습니다.


허무인 A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단서와 단서를 이어붙이며 A의 흔적을 쫓았습니다. 그러다가 A의 카드 결제내역 중 면세점 결제내역을 발견했습니다. 면세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려면 당연히 여권 정보를 제시하고 본인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도디어 찾았습니다!


검찰에 해당 내용을 정리하여 제출하고 관련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얼마 걸리지 않아 드디어 A의 진짜 이름을 찾았습니다. 연이어 A가 도망쳐 간 곳도 찾았습니다. 캄보디아!     


그렇게 인적사항과 행적을 찾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A를 잡지 못하면 더 이상 수사는 진행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캄보디아에서 A가 다시 흔적을 지우고 숨거나 도망간다면, 사건은 ‘미제’상태로 표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으로, 회사의 한 직원분과 캄보디아 출장을 결정하였습니다.     


영화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 양조위가 모든 비밀을 묻고 돌아섰던 억겁의 시간이 담긴 앙코르와트의 나라, 크메르루즈의 참혹한 학살과 고통스러운 인권유린의 피해가 아직 가시지 않은 나라, 그 외에 아는 것이 없는 미지의 나라, 캄보디아로 떠났습니다


2022년 12월 캄보디아 시엠립, 앙코르와트


A에 대한 수배 전단을 만들고, 캄보디아 한인 사회의 주요 인사들을 만났습니다. 수도 프놈펜부터 카지노 도시 시아누크빌까지, 이미 50만 km를 넘게 달린 구형 렉서스 SUV를 타고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내내 A를 생각하며, A의 입장이 되어 갈만한 곳과 만날만한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캄보디아에 남긴 A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여러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수배망을 만들어 놓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온 신경은 캄보디아에 있었습니다. 여러 방법을 통해 모아낸 A에 대한 정보를 모아 검찰에 제출하고, 여권말소 등 조치를 요청했습니다. 검찰은 A의 여권을 말소조치하고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하였습니다. 이제 모든 그물이 던져졌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다시 5개월. 어린이 날 기적같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A가 잡혔고, 한국으로 송환 중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방방 뛰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A에 대해서는 곧바로 구속영장이 청구, 발부되었고,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A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빠져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 갸륵한 노력에도 A는 매우 중한 형의 선고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A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는 날, 드디어 마주하게 된 A를 바라보며 ‘정말 오랫동안 당신이 보고 싶었다’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참고 또 참았습니다. ‘오늘만을 기다렸다’라는 마음마저 드는데, 일렁이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펜을 꾹 잡았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또 어디에선가 A에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정말 오랫동안 당신이 보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변론일기 #9 왜 사과하지 않으십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