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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초 Dec 07. 2021

캐나다 4년, 5개의 직장

 현 직장 UBC의 Rose Garden (출처: Pixabay)


2017년 5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 땅을 밟은 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은 4년 동안 총 다섯 개의 직장에서 일을 했고 (파트타임까지 포함하면 총 10군데) 현재는 밴쿠버에 있는 UBC라는 대학교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한국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한국에서 꽤 규모가 있는 기업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니 어디서든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자만이었다. 채용담당자들은 나의 한국의 경력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고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물론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 가능한 기술이 있거나 세계적인 기업에서 일한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나는 그런 케이스는 아니었기에...


첫 번째 직장 - 1년

캐나다에서 영주권을 취득하려면 일을 해야 한다. 적어도 당시에 나에게는 그랬다. 일을 당장 시작해야 하는 나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결국 경력이 없이도 취업이 가능한 식당에 취업을 하였다. 아웃렛에 위치한 푸드코트 안에 있는 작은 식당이었다. 베트남계 사장이 운영하던 가게였는데 특이하게도 한국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스무 살 때 아르바이트로 하던 일을 서른 살에 다시 하려니 자괴감이 밀려왔지만 캐나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사장은 밤낮 안 가리고 열심히 일하는 나를 인정해 주었고 3개월 만에 슈퍼바이저로 승진(?)을 하였다. 

영주권을 딸 때까지 머무르려고 했지만 가게 안의 여러 복잡한 사정들 때문에 1년 만에 나오게 되었다. 식당 내의 베트남계 직원들은 사장을 등에 엎고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배제한 체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문제를 해결하곤 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곳에서 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번째 직장 - 2개월

첫 번째 직장을 반면교사 삼아 이번에는 캐네디언이 주류인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첫 번째 직장을 급하게 나오느라 새로운 직장을 알아볼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고 결국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의 디쉬 워셔로 취업하게 되었다. 진짜 캐네디언의 영어를 익힌 곳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아예 못 알아들어서 계속 다시 물어봐야 했다. 2개월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가장 영어공부를 열심히 한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주로 저녁 타임에 일을 했는데 밤 6시에 출근하면 새벽 2-3시에 끝나는 쉬프트였다. 첫 번째 직장이 정신적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면 두 번째 직장은 육체적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새벽 2-3시에 끝나 집에 와서 씻고 누우면 4시, 서른의 몸뚱이는 버텨주질 못했다.  


세 번째 직장 - 1년

세 번째 직장은 지역에서 꽤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나름 요식업에서 경력을 쌓은 나는 두 번째 직장에 있는 동안 여러 군데에 이력서를 돌렸고 이곳에 운 좋게 채용되었다. 주방에는 대부분 이탈리아 출신의 요리사들이었는데 한국 출신에 이탈리아 레스토랑 경력도 없는 나를 왜 뽑은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곳에서는 나름 즐겁게 일을 했던 것 같다. 이탈리아 로마 출신 셰프에게 이탈리아어로 욕을 먹으며 여러 이탈리아 요리를 배웠고 아직까지도 집에서 써먹고 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영주권이 나왔고 더 이상 영주권을 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됐었기 때문에 그곳에서도 나오게 되었다.


네 번째 직장 -1년

세 번째 직장을 그만둔 뒤에는 다시 사무직 취업에 도전했다. 이제 영주권도 있고 캐나다에서의 경력도 충분히 쌓였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나의 장밋빛 전망과는 다르게 면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거의 100군데 정도 떨어지고 난 뒤 좌절해 있을 무렵 현재 일하는 학교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일주일간 열심히 준비했고 면접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내가 일하던 회사의 규모와 내가 한 일이 무엇인지 물어본 곳은 그곳이 처음이었다. 한국에서의 경력을 처음 알아준 곳인 것이다.

면접을 보고 일주일 뒤 합격통보를 받았다. 조건은 계약직이었지만 부서이동이 가끔 있다는 것 빼고는 정규직이랑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좋은 조건이었다. 그렇게 거의 3년 만에 사무직으로 복귀할 수 있었고 첫 출근 때 가슴 벅참을 아직 잊지 못한다. 업무 강도나 수준은 한국에서 하던 일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1시간 만에 할 수 있는 일을 7시간 늘려서 일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한국의 사무직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이 이야기는 길어질 수 있으니 따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섯 번째 직장 - 1년 그리고 현재 진행 중

네 번째 직장에서 1년 정도 일한 뒤 정규직의 필요성을 느껴 학교 내의 여러 포지션에 지원했다. 신기하게도 지원서를 내는 곳마다 연락을 받았다. 경력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비교적 수월했던 면접 프로세스를 거쳐 현재는 모 학부에서 Senior Program Assistant로 교수들과 학생들을 보조하고 있다. 


여섯 번째 직장?

사실 지금 여섯 번째 직장을 찾고 있는 중이다.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데이터 공부를 해오고 있는데 그쪽으로 경력을 쌓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이다(물론 돈도 조금 더 받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사실 캐나다에서 이직을 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넣어놨던 이력서를 다시 들춰보고 그동안 어떤 노력을 추가로 했는지 기록해야 한다. 추가된 내용이 별로 없다면 자기 계발에 게으른 사람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캐나다에서는 Reference가 매우 중요하기에 전 직장상사 혹은 동료들에게 꾸준히 연락도 해야 한다. 난감한 상황에 대한 즉흥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이곳의 면접 특성상 면접 준비도 보통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꾸준히 이직을 하는 이유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이다. 이민 초반 2만 불 언저리의 연봉을 받던 나는 현재는 5만 불 정도를 받고 있다. 다음 이직을 통해서는 6만 불이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무엇보다 이직을 통해 워라밸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현재 나의 근무일은 주 4.5일 (2주에 한번 월요일 휴무) 그리고 하루에 7시간만 일하기 때문에 퇴근 후에도 전혀 지치거나 하는 것이 없다. 학기당 2-3개의 파트타임 수업을 듣고 있는데도 전혀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이직을 통해 취업시장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받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앞으로도 꽤 많은 이직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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