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며칠 전 여자친구가 공포영화 '그것'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라……. 분명 본 기억이 있는데 인상적인 장면이나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 단 한 개도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찐'으로 재미가 없었고 자의적으로 그 기억을 날린 것 같다. '그것'의 예고편은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필자는 한때 공포영화에 빠져 살 때가 있었다. 그 때문에 웬만한 영화는 섭렵했다. 특히 여름만 되면 꼭 한두 편씩 나오는 한국의 공포영화는 무조건 영화관에 가서 봤다. 그렇게 쌓인 데이터를 토대로 봤을 때 '그것'은 진짜라는 판단이 들었고 개봉날에 맞춰 영화관에 달려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줄거리와 내용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더라. 대체 영화관에서 뭘 했던 걸까? 졸았던 걸까? 하여튼 다시 보게 된 '그것', 이번엔 제대로 보고 기억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읽는다. 그리고 나는 패배했다. 두 번 졸다가 잠들었고, 결국 이틀을 걸쳐 봤다.
줄거리 : 실종사건이 이상할 정도로 많은 마을 '데리', 빌의 동생 조지는 비가 오는 날 종이배를 가지고 나가고 그렇게 실종된다. 빌은 몇 년 동안 조지의 흔적을 찾는다. 때마침 '벤'이라는 친구가 전학을 왔고, 뚱뚱한 외모? 혹은 성격차이로 왕따를 당한다. 친구가 없는 벤은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는데 데리 마을의 역사를 보며 일정한 주기로 실종사건이 발생한다는 걸 찾는다. 조지와 빌 그리고 '찐따 클럽'의 친구들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흔적을 쫓아가는데…….
음……. 개인적으로 21세기에 제대로 된 '공포'영화 만들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생각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공포 영화가 나왔고 기본적인 '클리셰'가 만들어졌다. 층층이 스토리를 쌓아올려 긴장감을 고조시키거나 단순하게 깜짝 놀라게 하거나. 대부분의 공포영화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그것 역시도 마찬가지다. 아니, 차라리 놀래기라도 했으면 다행일 것을 그것조차 못했다. 내가 나이를 먹은 건지 혹은 그런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무뎌진 건지,,,
위 같은 이유로 공포영화 중에선 쏘우 초반 시리즈와 겟 아웃 그리고 곡성을 좋아한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난 아직도 귀신이 무섭다. 귀신이 있다고 믿고 충분히 무서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귀신보다 더 두려운 존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돈. 돈 없어서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하고 싶은 거 못 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나는 귀신보다 돈이 무섭다.
영화에서 '그것'이라 불리는 페니 와이즈. 이것은 공포와 두려움이다.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무서워할수록 그의 힘은 거대해진다. 페니 와이즈를 보며 어릴 적 봤던 '학교 괴담'이 떠오르더라. 두려움을 먹고 사는 '다크시니'와 겁 많은 어린이들만 찾아다니는 '가라 귀신' 둘을 섞어 놓은 기분이랄까? 이미 초등학생 때 봤던 귀신이라 썩 무섭지 않더라.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평은 다 큰 성인이 보기엔 굉장히 루즈하다? 한 편의 영화에 너무 많은 걸 담으려 했던 게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들의 사적인 이야기와 트라우마, 학교폭력과 가정폭력, 두려움에 대한 것들을 한곳에 넣으려다 보니 삐걱거렸다. 이렇다 할 큰 복선도 없고 깜짝 놀래는 묘미나 스토리가 쌓여서 주는 공포감이 없다. 너무 루즈해서 중간중간 졸거나 런타임이 얼마나 남아는지 확인했다. 집중이 안 되고 흡입력이 없다는 반증이 아닐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다 큰 성인, 나의 관점이고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때 봤다면 무서워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 것 같다. 괴상하고 공포스러운 삐에로와 기괴하다 못해 그로테스크한 그림 속 여자를 본다면 어린이들한테는 꽤나 오래 각인될 법하다. 다만 연령 제한이 15세란 걸 생각하면 어린 아이들은 못 보지 않나...?
왼쪽에서 두 번째 리치라는 인물이 그나마 영화를 살렸다. 지루한 분위기를 내가 생각하는 B급 개그로 환기시켜 준다. 이 친구의 억양이나 톤 때문에 덜 졸았다.(보다가 두어 번 잠들어서 이틀 동안 봤다.)
내가 지루하게 봤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찾으라면 찾을 수는 있다.
첫째로 '그것'이라 부르는 두려움은 두려워할수록 커진다. 페니 와이즈는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로 변신하며 나타난다. 병약한 아이게는 좀비로, 가족에게 성폭행당한 아이게는 아빠로, 누군가에게는 광대로……. 사람은 두려워하는 것이 찾아올수록 더 두려움에 떨고 몸을 움츠린다. 하지만 대게 두려움이란 추상적인 것이고 본래의 크기보다는 부풀어 보이기 마련이다. 두려움을 맞설 용기를 조금만 가지면 극복할 수 있다. 두려움은 곧 허상일 뿐. (물론 그 용기를 내는 게 정말 어려운 거지만)
둘째로 '데리'라는 마을은 자세히 보면 아이들에게 무관심하다. 자신의 피붙이들이 학교에서 무슨 짓을 당하는지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옆집 아이가 실종돼도 실종 전단지의 얼굴만 바뀔 뿐 어른들은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당하는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의 문제다.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충분히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부분들이었지만 행동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실종되거나 죽거나 살인자가 됐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충분하고도 적당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과도한 과보호는 부작용을 일으키니 적당히. (그런데 그 적당히가 어렵다.)
셋째로 소문을 판단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생활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런 소문, 저런 소문이 들려온다. 좋은 이야기보단 나쁜 이야기들. 사람들은 진위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타인의 가십거리들을 씹어댄다. 소문이 진실일 수도 있고, 과장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거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잠깐의 유흥일 뿐이니. 다만 소문을 판단하는 건 자신이다. 만약 주인공 일행이 '베벌리'의 안 좋은 소문을 듣고 멀리했더라면 페니 와이즈를 상대할 수 있었을까?
이 밖에도 내가 캐치하지 못한 메시지들이 많겠지만 크게 느낀 건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정도.
-
'학교 폭력'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폭력은 수십 명이 있는 한 반에서 가해자 무리들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걸 말한다. 이때 직접적인 가해를 하지 않고 주위에서 방관만 한 친구들은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방관자일까? 나는 모든 일에는 '중립'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찬성과 반대 두 가지로 나눠져있다. 다만 표현에 있어서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의 차이일 뿐. 방관자는 가해자의 학교폭력을 묵인한 셈이다. 암묵적으로 동의를 한 것이고. 그렇다면 방관자도 간접 가해자가 아닐까? 이런 의문이 든다.
물론 우리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힘'이 절대적이었던 시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이 중 누가 감히, 함부로 권력자에게 반기를 들까? 피해자를 도와준 학생의 말로는 뻔하다. 힘이 있다면 막겠지만 대부분같이 따돌림을 당한다.
내가 그랬다. 초등학생 때 같은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를 말렸고 어쩌다 보니 싸우게 됐다. 상대는 유도를 배운 아이였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리고 처참하게 발렸다. 몇 번이나 땅바닥에 쳐박혔고 다행히 종소리가 울린 뒤 나는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상에 엎드려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나는 친구도, 나도 지키지 못했다.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비겁한 사람이 됐다. 다행히 며칠 뒤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가게 됐고,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 못 본 척했다. 그렇게 모나지 않은 '평범한' 어른이 됐다.
나는 짧게 해외여행을 간 적은 있어도 몇 달 이상 살아본 적은 없다. 영화를 보며 새삼 느끼지만 '인종차별'은 정말 무섭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받고 멸시받는 걸 보면 진저리가 난다. 차라리 말로 욕먹으면 다행이다 싶더라. 찾아가서 때리고, 칼로 긋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대체 인종이 뭐길래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의문이 들더라. 그리고 여기서 나온 양아치들은 대체 뭣 때문에 마음속에 화가 가득한지 궁금하더라.
-
그것이란 영화는 뭐랄까 공포영화도 코믹 영화도 아닌 정말 그 어떤 것이다. 뭘 보여주고 싶은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삐에로'가 들어간 '공포영화', 최고의 재료를 가지고 조리를 잘못한 느낌...? 그냥 예고편의 설렘만 갖고 살아갈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