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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무개 Jun 21. 2021

내 글을 쓰레기다

심심할 때 글쓰기


내 글은 쓰레기다. 근래 들어 글을 쓸 때마다 느낀다. 옛날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요즘엔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다. 혹시나 싶어 옛날부터 썼던 글을 읽는데 언젠가부터 글이 이상해졌다. 왜 그랬을까, 왜 나는 내 손으로 쓰레기를 만들고 있었을까?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해 본다. 나는 분명 글쓰기를 좋아했다. 비록 맛깔나게 잘 쓰지는 못해도, 뜻깊은 글을 쓰지 못할지라도 글 쓰는 행위를 사랑했다. 글을 쓸 때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떠돌던 잡념들이 조금은 정리됐기에. 쓰고 난 글을 읽을 때면 글을 쓸 당시에 생각지 못했던 것이 생각날 때도 있고, 그 생각들이 한 번 더 정리된다. 잡념이 정리될 때면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래서 글을 썼고 때문에 글쓰기를 사랑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쓰지 못하는 걸까……?


가만 보자 그러고 보니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쓴 게 언제였더라? 아니, 본격적이란 말도 웃기다. 글이야 항상 쓰는 것 아닌가? 일기를 쓰거나, 과제를 하거나 하다못해 카톡을 한다거나. 나는 언제나 글을 쓰고 있지 않는가? 아, 이건 너무 말장난인 것 같고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민간인이 되기 직전 군대에 있을 때. 


18년도 말, 군대에서 '도서관'이 생겼고 독서 장려를 명목으로 '독후감 포상휴가'를 신기한 제도가 생겼다. 10장당 포상휴가 1일. 나를 비롯해 휴가에 미쳤던 부대원들은 악착같이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독후감에는 따로 정해진 양식과 분량이 없었지만, 간부가 읽었을 때 아니다 싶으면 빠꾸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고 정말 많이 탈락했다. 왜 저렇게들 떨어질까 궁금해 그들이 썼던 걸 봤다. 정말 대충 썼더라. 10줄이 안 넘는 것도 절반이고, 책을 읽긴 한 걸까? 의문이 드는 글도 태반에 맞춤법과 띄어쓰기까지……. 하다못해 줄거리라도 간략하게 나열했다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이게 정말 초, 중, 고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이 쓴 건지 초등학생이 쓴 건지 헷갈리는 글이 대다수더라. 부대원들의 시행착오를 보며 몇 가지 틀을 정했다. 최소한의 양을 채웠고, 상대가 읽기 쉽도록 단문으로 적었으며 대부분의 내용은 내 생각을 썼다. 결과는 쏘쏘하더라. 독후감을 낼 때마다 통과됐다. 그렇게 100편을 넘게 썼고, 독후감으로만 포상휴가를 10일 이상 받았다.


당시에는 '휴가'라는 목적으로 글을 썼지만 그때를 기점으로 글쓰기는 어려운 게 아니라 재밌는 행위라고 느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다 쓴 글을 보고 좀 더 깊은 사고를 한다. 그렇게 발전하는 나를 보면 꽤나 뿌듯하더랬다. 특히 내 글은 쉽게 읽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렇게나 기분이 좋더라. 


그랬던 내가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하게 됐고, 카페에 갔던 글이 우연히 뷰탭에 올랐다. 일일 방문자가 10명 채 안 되던 블로그에 200명이 넘게 찾아왔다. 아, 어쩌면 그날을 기점으로 변색된 것 같다. '타인'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내가 느낀 걸 그대로 적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내 글의 정체성은 사라졌다. 조금 더 잘 노출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확실하지 않지만 이것저것 정보를 찾았다. 


간혹 받는 협찬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글자 수 1,500 이상, 사진 15장 이상이라는 조건이 달렸다. 협찬 글쓰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협찬이 아닌 다른 글도 서서히 물들더라. 블로그에 올라가는 글은 괜스레 양이 많아야 될 것 같아 이것저것 살을 붙인다. 내용이 없는 글에 내용을 덧붙이려니 글이 이상해지더라. 쓸모없는 살이 붙은 글은 죽은 글이다. 길이는 늘었지만 내용이 없다. 내 글은 양만 많고 알맹이는 없는, 내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전형적인 네이버 블로그의 글이 됐다. 


분명 글쓰기의 첫 시작은 내 발자취를 남기는 거였는데……. '기록'보다 뷰탭 '노출'을 신경 쓰다 보니 서서히 내 정체성이 사라졌다. 그렇게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글을 볼 때마다 스스로를 역겨워했다. 그러면서도 노출에 대한 욕심을 놓지 못해 혐오하는 글쓰기 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알맹이가 없는 글을 쓰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 자신도 알맹이가 없어졌다. 알맹이가 없는 사람이 쓰는 글은 알맹이가 없다. 애정이 담기지 않은 글은 그저 글자 쪼가리일 뿐인데……. 나는 이 쓰레기 같은 글쓰기 형식을 벗어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 같은 시대에 태어난 걸 참 다행으로 여긴다. 21세기,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활성화된 때에 태어나서 참 다행이다.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똥 같은 글을 종이에 적고 버렸겠지. 동글을 적을 종이를 만들기 위해 오죽 많은 나무가 희생됐을까? 아,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전기를 사용하니까 환경오염에 이바지하는 건 엇비슷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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