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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무개 Jun 24. 2021

리뷰 : 기나긴 하루(박완서)

서평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자기 계발서보단 소설이 도움 될 것 같았고 필름 인화하러 가는 길, 서점에 들러 베스트셀러 칸에 있는 책 한 권을 골랐다. 장편 소설을 생각하고 샀는데 단편을 엮은 책이더라. 조곤조곤한 문체지만 독특한 점이 있다면 작품 안에 담긴 '내용'이다. 작가는 6·25를 겪은 사람이다. 전쟁을 겪은 당시는 어린 나이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이남의 땅이 될 때도 있었고, 이북의 땅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런 경험 때문일까? 자극적이지 않고 조용한 문체임에도 문장에 힘과 이념에 대한 한이 담겼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나약하다고, 좋은 시절에 살아서 배부른 소릴 한다 하겠지만 나는 사는 게 힘들다. 살고 있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버티는 기분이다. 부모님 세대처럼 '대학'만 나온다고 취업이 잘 되는 시대가 아니다. 80년대처럼 과도한 성장으로 월급 걱정 없이, 예금이나 적금만 넣어도 알아서 돈이 불어나는 시대가 아니고, 베이비붐 덕에 취업난은 극에 치달았다. 취업률은 극악이지만 출산율의 저조로 훗날에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세대.  좋은 학교를 졸업한 것도 모자라 토익, 토플 그 외에 경력까지 취업에 필요한 게 너무나도 많다. 할 게 없으면 공무원 한다는 옛말과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돈에 대한, 취업에 대한, 집에 대한,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걱정은 없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비참한 현재와 암담한 미래 덕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더라.


나는 꽤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흔히들 취업하는 과정을 '피 튀기는 취업난'이라지만 이건 어디까지 비유다. 작가는 정말 '피 튀기는' 전쟁 직후를 살았다. 타인의 불행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적어도 내가 사는 세상이 진짜로 피 튀기는 현실이 아니 함에 감사히 여겨야겠다.  


빨갱이 바이러스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이야기. 사랑채 안에 있는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사이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누구인지 모른 채 알코올에 취해 남들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나둘 꺼낸다. 처한 상황과 이야기는 다르지만 그 본질이 '불륜'이란 건 똑같다. 세 명의 이야기가 끝나고 그들은 작가를 쳐다보지만 작가는 끝끝내 답하지 않는다. 그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 책에 적었다.


작가가 남들에게, 가족에게조차 숨기고 싶었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다른 여자들처럼 불륜이었을까? 싶었는데 그것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종류였다. '이념'. 그녀가 끝까지 숨기고 싶었던 것은 사상이 다른 삼촌이었다. 6·25 직후 북에서 내려온 삼촌의 방문. 그리고 그를 쳐 죽이고 마당에 숨긴 아버지. 작가가 죽을 때까지 남편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것은 정치적 사상이 다른 자신의 피붙이가 자신의 아버지의 손에 죽어 마당에 묻힌 일이다. 


죽을 때까지 말하지 못하고 죽어서야 글로 남겼을 때 그 기분이 어땠을까?

이념이란 무엇일까? 그 망할 것이 무엇이길래 친구를, 가족을, 같은 민족을 서로 죽고 죽이게 하는가?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무거운 소재가 가득했던 중 유일한 쉬는 시간이 왔다. 물론 깊게 파고들면 이것도 무거운 내용이지만.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전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명시됐는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과 남이 된 며느리를 만났다. 어째서 헤어졌는지 아들에게 물어봐도 도통 시원찮은 대답만 나왔기에 진짜 답을 찾기 위해 만났다. 며느리의 입에선 예상치도 못한 뜻밖의 답이 나왔다. "성격차에요. 순전히." 연애 때나 신혼 때는 따로 약속하지 않아도 착착 잘 맞았더란다.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먹고 싶은 음식이 같을 때, 걷고 싶을 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처럼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잘 맞았다는데 어느 순간 그 느낌이 사라졌더란다. 오랜만에 남편을 위해 있는 힘껏 요리를 했는데 밖에서 외식하고 오질 않나, 피곤해서 쓰려져 있는데 굶고 왔다고 밥 차려달라고 하지 않나. 그냥 단순한 성격 차란다.  

사랑이 뭘까, 그 단순한 '성격 차이'가 뭘까? 서로 다른 생활양식을 이해하지 못해 헤어진 걸까?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부모의 개입을 떠나 서로 다른 생활양식이 부딪히는 일이다. 치약을 밑에서 짜는지 위에서 짜는지, 밥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는지 몰아서 하는지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이 쌓였고 결국 갈라서게 만들었다. 같이 살지 않았다면 결혼하지 않고 연애로 만족했다면 더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굉장히 독특한 작품. 작가가 긴 호흡을 가지고 쓴 글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오롯이 필자만 말을 하는데……. 1인 극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분명 별일 없는 일상 이야기 같은데 왜 이리 눈시울이 달아오르는지 모르겠다. 슬픈 일을 덤덤하고 잔잔하게 말하니 그 슬픔이 배가 되더라.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큰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닮은 방들


'닮은 방들',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대들은 '불륜'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개인적으로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을 보면 굉장히 경이롭고 대단하다는 감정을 느낀다. 세상엔 멋진 사람이 정말 많다. 이쁜 사람, 잘생긴 사람 그 외의 매력을 가진 사람들. 티비속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주위만 보더라도 넘친다. 그런 매력쟁이를 두고 어떻게 한 사람한테 정착할 수 있는 걸까? 

나 역시 오랜 시간 만난 사람이 있지만 종종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이쁘거나 귀엽거나 혹은 어떤 모습이 매력적이라거나……. 가끔 '혼자'였다면 이라는 망상을 하곤 한다. 나 같은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나만 쓰레기인 걸까? 모르겠다. 이 감정은 이상형을 만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죽을 때까지 갖고 가는 감정이지 않을까?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화목을 유지한 가정을 보면 부럽고, 부럽고 너무나도 부럽다. 추한 모습까지 다 봤을 터인데 서로를 믿고 지탱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게 대단하다.

끝으로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특별한 날은 고사하고 어제 뭐 했는지, 오늘 점심은 뭘 먹었는지조차 잘 까먹는다. 그런 내가 몇 개의 문장들을 기억한다. 신기한 일이다. 대부분의 책이나 영화를 봤을 때 스토리는 기억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그런데 단편집 '기나긴 하루'를 읽었을 때는 각 파트마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있었고 완독 후에도 가슴에 남아있다. 


올해가 가기 전 꼭 역사를 공부해야지. 하다못해 근현대사만이라도…….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그놈의 '이념'이 뭔지 좀 알아봐야겠다. 



인간은 언어로 사고한다. 아는 단어가 많을수록 사고의 폭이 깊을 확률이 높다. 부끄럽게도 나는 단어를 많이 모른다. 늦깎이 배움에 뜻을 두었지만 모르는 단어들이 많아 장벽에 부딪히곤 한다. 사전으로 뜻을 찾아도 며칠이 지나면 까먹고, 다시 책을 읽을 때 똑같이 모르는 단어로 체크한다. 


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주제는 요즘 아이들의 어휘력이 굉장히 저하됐다는 내용인데, 국사 선생님께선 "내 수업이 얼마나 지루할까?",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란 대답이 기억난다. 붕당, 등등의 뜻을 몰라 이해를 못 한다. 진도는 나가야 하니 단어 하나하나에 시간을 쓸 수 없다. 아이들은 단어의 뜻조차 모른 채 수업을 듣는다. 이게 무슨 일이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하는데 내가 아는 것이 적어 느낄 수 있는 게 작다는 것이 한이다. 더, 더, 더 아득바득 공부해야겠다.  



나는 항상 '꿈'과 '현실'의 중간에 살았다. 자아실현의 욕구, 꿈. 꿈을 좇는가 싶으면서도 현실을 살고 있고, 현실을 살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꿈을 좇고 있다. 최근에는 꿈보단 현실이었다. 돈, 돈, 돈 그 빌어먹을 돈 때문에 무언갈 포기해야 하는 삶이 싫어 돈을 벌자고 다짐했고, 불필요한 낭만 덩어리는 구석으로 치웠다. 그런데 그 꿈이 슬며시 다가왔다. 박완서 작가님, 참 대단한 사람. 일상 글에 깊은 뜻과 이념을 넣고, 악착같이 잊었던 꿈을 떠올리게 해준 사람. 


진짜 재밌게 읽었다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내가 쓰고 싶은 '문체'를 찾았다.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하되 힘 있는 문체. 박완서 작가님의 글이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서점에 들를 일이 생기면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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