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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무개 Jul 05. 2021

병국이

심심할 때 글쓰기

"준용아, 네가 봤을 때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어려운 질문이다. 굉장히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질문에 나는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새벽 한 시, 우리는 바다 내음 맡으며 어둑어둑한 경포대를 걷고 있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좋게 말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아니, 뭣보다 병국이는 그냥 병국이인데 '어떤' 사람이냐니 질문이 너무 어려운 거 아니냐고. 이런 복잡한 내 마음과 달리 바닷가는 술 취한 사람들 덕에 신나 보였다. 누군가는 스피커를 켜놓고 노래를 부르며 고성방가를 하고 있고, 어떤 무리들은 여자와 함께 술 한 번 마시겠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라. 젊은이들의 활기가 넘치는 공간에서 나는 사람에 대한 본질을 생각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터라 "별생각 없는데?"라고 말하고 싶다만 그렇다면 이 친구는 상처를 받겠지. 그렇다면 조금 진지해져 보자. 정말로 친한 친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해보자. 생각을 깊게 시작하니 자연스레 발걸음이 느려진다. 사브작, 사브작하며 모래를 밟은 발이 푹 꺼진다. 사르르 모래가 슬리퍼 속으로 들어온다. 

"직진……." 

이런 씨발, 멋대가리 없는 말이 나왔다. 머릿속으로 충분히 정리해서 한 문장으로 대답하려 했는데 한 단어만 나왔다. 

"나를 포함해서 친구들, 동기들, 선후배들 봐봐. 자의든 타의든 간에 다른 일을 하고 있잖아? 다들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이것저것 하면서 계속 방황한 고 있어. 이게 맞는 걸까?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일까? 끊임없이 물어보고 답을 찾지 못해 다른 일을 손대. 그런데 넌 달라. 20살 때부터 아니 그때보다 더 '연기'에 대한 확신이 있잖아? 물론 그 마음이 사실인지 아닌지 나는 몰라. 다만 남들이 물었을 때 떳떳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못 본 것 같아."

"음……. 또 어떤 말해주고 싶어?"

끝난 줄 알았는데 질문이 또 들어왔다. 근래 들어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니 질문에 답하는 데 오래 걸리더라. 평소에 머리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냥 사는 대로 생각하다 보니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었다. 아, 어려운 질문들. 이런 질문은 평소에 내가 남들한테 물어봤는데, 이거 은근히 답하기 힘들 문제였구나. 어떻게 말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네가 상처 받을 것 같고 그렇다고 포장해서 말한다면 다른 사람처럼 똑같은 대답만 나올 것 같은데……. 억겁 같은 시간이 지나고 조용히 침묵을 깼다. 

 "조금 전에 직진이라고 말했잖아? 병국이 넌 좁은 길을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 같아. 나는 이리저리 방황하며 넓은 길을 앞으로 갔다가 옆으로 갔다가 뒤로도 가는 사람이고.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멋지게 말은 못 하겠는데 너무 앞만 보고 달리지 말라고. 가끔씩 뒤를 돌아봐. 네가 걸었던 길이 어땠는지, 너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길 주위에 뭐가 있었는지 한 번쯤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 나는 지금 인간 김병국을 만났다기보단 '연기'만 아는 김병국을 만난 기분이야. 뭐, 아무튼 그렇다고."

마찬가지로 멋진 말이 안 나왔다. 그래도 진솔하게 말했으니 알아서 잘 생각하겠지. 너는 생각이 깊은 놈이니까. 병국아, 가끔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말도 좀 들으라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줏대를 가지고 꿋꿋하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 부딪히고 깨져서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어. 출근하고, 일하고, 집에 돌아와 집안일하고 그렇게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쳇바퀴를 돌고 있어.  그래서 그런가? 너한테 더 큰 기대를 하게 돼. 너라면, 병국이라면 정말 현실을 넘어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너란 사람은 정말로 할 수 있을 것만 같거든. 그러니까 남들 이야기는 듣되, 적당히 걸러 들어. 그리고 지금처럼 달려 나가 줘. 나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도달하지 못했던 걸 잡아줘. 네 꿈을 이뤘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그 과정이 어땠는지 술 한잔하며 말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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