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할 때 글쓰기
어렸을 때 꾸준히 일기를 썼는데
언젠가부터 일기 쓰는 것을 멈췄다.
왜 그랬을까? 일기장을 펼쳐봤다.
다낭에 갔던 8월, 여행일지를 제외하면 재작년 5월이 마지막이다.
대부분 한 달 정도 쓰고 일기를 멈췄다.
예전 썼던 공책을 꺼내 읽으니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공연을 올리려고 새벽까지 연습했던 때,
훈련병부터 자대에 배치받고 전역할 때까지,
어머님이 갑자기 아프셔 병원에서 간병했던 때,
20살, 설레는 맘으로 대학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글을 읽으니 그때의 순간이 하나씩 그려진다.
옛 생각을 하니 괜스레 웃음이 난다.
나름 좋은 습관이라고 자부했던 '일기'쓰기를 왜 멈췄던 걸까?
마지막으로 쓴 일기로 돌아봤다.
3월, 스튜디오에서 일을 시작했고 하루하루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상세히 기록했다.
4월, 마찬가지로 스튜디오 이야기다. 어느 정도 업무는 익혔지만 부모님들과 대화가 힘들다.
5월, 일상이 힘들고 질린다를 마무리로 일기는 더 이상 내 일상을 담지 않았다.
5월의 내용은 아기의 이름만 다를 뿐이지 힘들다는 내용밖에 없었다.
아기가 웃지 않아 힘들다, 낯을 가려 힘들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힘들다.
어머님들은 재우자고 해도, 먹이자고 해도 말씀을 들으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웃는 표정이 나오길 바라신다.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룬 것을 보아하니 아마도 '일기'를 쓰는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일상, 일어나 씻고, 출근하고, 일하고, 힘들어하고, 퇴근하고,
그렇게 지루한 나날들. 억지로 해야 하만 하는 밥벌이에 지쳤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에 있어 가장 평범하고 무탈한 일상일 수 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구보다 평범하고 무탈하게 지나가는 일상을 바랐던 것 같은데 막상 평화로운 일상이 닥치니 견디기 힘들다.
불안정한 상황이 싫어 그렇게 안정을 추구했겄만 안정적인 일상을 만나니 그 안정감이 질린단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가 아닌가? 아니,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간사한 거겠지만.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 덧없이 흘러가 기억에 사라지는 내 모습이 싫어 다시 일기나 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