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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

- 가마쿠라/쇼난

by June


아버지는 엔카를 좋아하셨다. 시외 도로를 달리는 아버지 차에서는 이름 모를 가수의 나지막한 노래가 늘 들려왔다. 앞좌석에 앉아서, 60년대, 70년대의 엔카 노래를 듣고 나니, 몇몇 노래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노래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노래는 연인에게 작별인사를, 어떤 노래는 연인의 이름을 불렀으며, 또 어떤 노래는 북쪽에 있는 여관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그 노래들을 한쪽에서 흥얼거리며, 창 밖의 희미한 가로등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렇게 나의 지나가는 10대를 바라보았다.


도쿄 남쪽에서 요코하마를 연결해주는 게이큐선 전철을 타고 내려갈 때는, 나지막한 주택들의 지붕들을 위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급행 전철에서 120년 전 개통한 게이큐선의 주변 풍경을 바라 보는 것은 부족하기만 하다. 첫개항지 요코하마로 가는 전철 안에서 나는 25살의 서울에서 인천으로 나가는 경인선을 생각하였다. 그때는 가끔 1호선을 타고 동인천으로, 인천으로 가곤 하였다. 그리고 그 가는 길에 때로는 사랑을, 때로는 삶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경인선은 답을 주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어떤 것도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도착한 요코하마역은 웅장하지 않았다. 넓고 끝없는 가게들이 지하도로 이어져 있었다. 모든 가게들이 모여있기에 손쉬웠지만, 둘러보지 않아도 아쉽지는 않은 곳이 요코하마역이다. JR노선을 재빨리 갈아타 자리에 앉으니 창밖의 햇살이 앉아있는 나의 얼굴이 따뜻이 들어온다. 연인들은 세상의 모든 상식들을 비밀인 듯 서로 귓속말을 나눈다. 외투 포켓에 들어갈 정도의 조그마한 책을 움켜쥔 소녀는 고개를 한 번일까 떨구고, 소프트볼 유니폼을 입은 붉게 탄 얼굴을 한 학생들은 전철을 내렸다 올랐다 반복한다. 그렇게 전철은 다시 계속 남쪽으로 향한다.


어느새 바랜 왕도에 다다른다. 북카마쿠라역에서 내려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절에 들어가니, 단청하지 않은 삼나무로 만들어진 색 바랜 목조 건물들이 나를 맞아준다. 이곳 절들은 가깝다. 도시에서 가깝고, 역에서 가깝다. 내어주지 않을 듯 숨어있지 않고, 마치 나에게 모든 것을 드러낸다. 이전처럼 찾아서, 올라서, 깊숙하게 숨어있는 절을 가지 않아서 나는 이것을 편안하게 느낀다.


드러난 절들을 몇몇 들리며, 남쪽으로 걸어오니 손쉽게 바다가 열린다. 앞이 까마득한 태평양 바다를 보며, 20살의 경포대가 희미해졌다. 경포대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7시간의 무궁화호의 시간만큼, 그 기억이 잡히지 않는다. 다만, 그 시절에는 사랑이 그리고 삶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 목 놓아 울어야 할 장소를 왜 그리 찾아야 했을까. 그곳은 다시 돌아오기도 멀고, 험했다. 또 한 번 찾아도 다시 찾아도 그곳에서 나는 답을 찾았을 수 없었다.


쇼난 해안선을 따라 길을 천천히 걸으면, 그 시절 힘든 사랑과 삶이 아득해진다. 그럴 때이면 나는 뜻 모를 노래를 다시 들었다. 80년대 음악은 내가 10대 때 들은 살짝은 서글픈 엔카와는 다른 그런 시대였다. 신디사이저와 세션의 낮게 깔린 배경, 어색함을 메워주는 톤이 바뀐 피아노 소리 그리고 아이러니한 밝은 드럼 소리와 함께 하이톤의 가벼운 보컬의 노래는 한껏 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한 발자국씩 걸어가며, 잡을 수 없었던 10대 시간과 답을 찾고자 몸부림쳤던 20대의 세상을 놓아준다.


나는 그렇게 또 지나온 시간들에게서 멀어진다. 다행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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