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시로카네다이
지난 사월, 시로카네다이를 걸으며 그녀를 생각하였다. 그녀의 운동화, 하얀 발목, 검은 긴 주름치마 그리고 나를 향한 하얗고도 밝은 웃음이 계단을 올라오는 내 눈에, 내 기억 속에 차례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기억은 마치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치 각각 정지화면처럼 남아있다.
미나미아자부를 지나고, 프랑스 대사관 앞의 큰길을 건너 시로카네타카나와 평지를 십여분 걷다 보면 나지막한 언덕과 오래된 골목들이 나온다. 금아 피천득 선생이 아사꼬와 산책을 나왔던 성심여학교는 그 후 백 년이 지나도 그곳을 지키고 있다. 학부는 히로오지역에 있으니, 현재의 아사꼬들은 그곳에 있으리라. 성심여학교 주변을 거늘며, 아사꼬를 세 번 만났던 그 인연을 생각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아니 만났으면 좋았다는 선생의 아련함을 생각한다.
세 번만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그녀를 욕심이었는지, 욕망이었는지, 단지 기억 저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으려 부단히 애를 썼었다. 쌓여있는 엽서들과 찰나의 만남들은 그녀에게 어떠한 의미였을까 애써 해석하며 위로하였다. 세 번만 만나기엔 그 그리움을 감당할 수 없었다.
성심여학교를 지나 언덕 위를 올라가면 시로카네다이에 다다른다. 지반이 단단한 이곳에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꾸욱 꾸욱 걸으니, 내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는 다시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크게 자란 가운데 길로 내려와 히로오까지 걷는다.
그리고 그 아련함을, 그 그리움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