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게 그렇게 덧없고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래서 내가 버겁다면, 이럴 거면 이혼하는 게 맞지 않아?”
18
알고 지낸 세월이 긴 만큼 나는 저런 종류의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관계에서 상대 마음에 대해 확신이 없고 조급한 쪽일수록 알량한 자존심에 저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되기 마련이지)
남편은 어리석은 나의 질문을 귀여워한 적도 있고, (내 바람대로) 두려워한 적도 있고, 한심해한 적도 있었는데 이번 나의 우문에 그는 “어쩌면 그게 맞을지 모르겠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곤 남편은 집을 잠시 나가 있겠다고 했다. 아, 나갔다.
‘뭐래’라고 생각하며 어이없던 것도 잠시. 내가 알고 있는 그의 가장 진지한 표정을 보니 ‘어? 이게 아닌데..?’
‘18’
마음속에서 상스러운 욕이 터져 나왔다.
내 인생이자, 내 젊음이자, 나 자체
나 또한 이번 ‘이별 질문’은 예전만큼 함부로 뱉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매달려도 단호히 정리하자고, 나도 혼자가 편하다고 말할 각오를 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나의 어리석은 이별 질문에 수긍해버린 남편의 응답에 평소 잘 울지도 않던 나였는데 펑- 하고 울음이 터졌다.
그때 나는 남편이 진실로 떠날까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와 함께한 지난 나의 세월을 겸허히 정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커서 울음이 났다.
나름대로 이별에 대한 각오를 단단히 했다. 이혼을 하게 된다면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얼마나 자유롭고 개운할지, 걸그덕거리는 지금의 남편이 아니라 나의 에너지를 더 사랑해줄 다른 존재(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부모님을 떠올렸다)와 여생을 함께하면 얼마나 신이 날지에 대한 막연한 긍정적 생각으로 각오를 했었다.
그런데 남편과 보낸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정리할 생각은 미처 못 했다. 내 인생이었고, 내 젊음이었고, 그저 나 자체인 남편.
문장으로 보니 내가 꽤나 수동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남편에 이끌려 만든 시간들이 아니라 오롯이 내 기쁨의 의지로 남편과의 시간을 선택하여 인생을 만들어 온 능동적 나의 과거이다. 그 시간들을 정리하지 않고 때때로 추억하며, '그래 좋았지'라며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쿨한 인간이 나는 못 된다는 것을 나도 알고, 엄마도 알고 있고, 아빠도 알고 있다. (셋 다 A형)
내가 가꾼 세월들을 마치 없었던 일처럼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서 울음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