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調停
분쟁을 중간에서 화해하게 하거나 서로 타협점을 찾아 합의하도록 함. (표준국어대사전)
우리 둘의 '셀프 조정기간'이 시작됐다.
셀프 조정기간 규칙 - 잠은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격렬히 갖고 싶어 하던 남편이었으나 내가 철저히 투명인간처럼 지낼 테니 잠은 집에서 잘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결국 한 집에 있지만 서로 대화는 최소화, 생필대화만 하며, 나름의 각자의 시간을 취하기로. 사실 생활 패턴이 매우 달라 몇 번 마주치지도 못했다
처음엔 힘들다 - 숨멎주의
검정색 얼굴이 됐던 남편도 그랬으리라 생각하는데, 나의 셀프 조정기간의 시작은 말 그대로 '숨멎주의'였다. 나도 모르는 새에 숨을 참고 있다가 '아차, 숨 쉬어야지’하며 정신을 차리고 숨을 한 번에 후욱 뱉어내는 식.
그리고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베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쾌청한 하늘을 보며 '아 사람들이 이럴 때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는구나'하고 마음 깊이 이해했다. 숨 쉬는 것을 잊을 만큼 괴로움을 안고 사느니 저 쾌청한 하늘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 것이 한참 나을 것 같은. '이혼'이라는 근처에 서성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기분이려니.
(엄마 미안했어. 이런 생각을 했던 것 말이야. 또 내가 몸을 내던지지 않도록 베란다 문 앞에서 널브러져 자는 게 인생 최고 행복인 개 무치 고맙)
멍을 때리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주룩 거려서 도저히 회사에 앉아있을 수가 없는 나머지 갑작스러운 오후 반차를 내기도 했다.
감정이 너무 앞서있어서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살다 보면 반드시 이런 시기가 있을 테니 모두들 당황하지 않도록 합시다.
일상생활 가능 - 이게 진짜 소울리스
셀프 조정기간의 처음 며칠은 감정에 휩쓸려 죄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일상이 무엇인지 또 그놈의 회사가 무엇인지 고마운 것인지 얄미운 것인지 나에게 주어진 일을 주구장창 쳐내다 보면 하루가 지나가 있고 했다. 영혼은 없지만.
베란다 창문이 아닌, 일상에 몸을 내던지도록 합시다.
비로소 조정 가능 - 문제의 객관화
일상을 부여잡고 살아내다 보니, 비로소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조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회사에서 크기가 큰 사고일수록, 남 탓과 불평불만하며 감정적으로 시간을 써대기보다, 어서 빨리 문제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해결점을 찾는 것이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은가. 난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믿는다.
감정적이 되기 쉬운 부부 사이에서 셀프 조정기간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마치 회사 업무 다루듯 ‘문제의 객관화’라 하겠다.
특히 이런 기특한(?) 발상은 남편과 감정적으로나마 잠시 떨어져 있는 ‘셀프 조정기간’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다고 확신한다.
이혼 발언 이후 기간을 남편과 가까이서 부딪치며 보냈다면,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것 같이 나의 에너지가 또 과잉되어, 어떻게든 따져 묻고 문제를 해결 아니, 종결시키려고 했었을 테다. 평소 하던 다툼의 흐름대로 ‘나는 절대로 잘못한 게 없어’ 하며 남편 탓만 하고, ‘저 자식은 이게 진짜 문제야’라며 불평을 하다가 시간이 흘러가버려 정말 큰 사고(이혼)가 났을 것이다.
이는 ‘분쟁을 중간에서 화해하게 하거나 서로 타협점을 찾아 합의하도록’하는 ‘조정’이 아니라 ‘내가 잘했네, 네가 잘했네’하는 ‘전쟁’이 됐을 테니.
‘어디 보자, 그래서 걔가 뭐라 했더라’
전쟁 중이신가요. 조정 중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