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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상 Dec 29. 2022

사장님 어려요.

40대 면접 수집가의 면접후기 모음④

마흔의 면접에서는 젊은 대표님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스타트업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회사들이 그랬다. 창업과 경영은 나이와 무관하니까.


차장이라는 직급을 끝으로 구직 중인 나로서는 또래의 대표님들이 부럽기도 했고 또 무척 어려워보이기도 했다. 그저 첫 인상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풍요로운 분위기를 가진 분은 단 한 분도 보지 못했다. 차분하고 스마트(이 단어만이 그들의 뉘앙스를 살릴 수 있다.)해보였지만 어쩐지 다들 수척했다. 몇 백억을 투자받은 회사나 시드 단계의 투자를 받은회사 모두 마찬가지였다. 얄팍한 창업 경험을 해본 나로서는 내 회사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또 한 번 느껴볼 수 있었다.


젊은 대표님들은 보통 내 또래거나, 나보다 세 네 살 어려보이거나 하는 정도 였는데 20대 후반의 대표님을 만난 적이 있다. 신촌의 대학생 시절에 창업을 했고, 당시 만든 로봇으로 200억원대의 투자를 받아 60명 남짓의 회사를 꾸려가는 대표님이었다.


1차 면접에서 아저씨들과 유쾌한 면접 후에 대표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기사로 본 얼굴보다 더 엣되보이는, 누가 봐도 학생 같은 대표님이 수줍게 다른 임원 분들이랑 면접 예정시간 5분 뒤에 들어왔다. 5분 동안은 창 밖의 성수동을 멍하니 바라봤다. 여기가 한국의 브루클린인가, 평일에는 직장인 뿐이구나 라는 면접과 상관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막상 면접에서 대표님은 질문이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표님과 함께온 인사 팀장님이 질문을 속사포로 쏟아내었다. 뭐랄까. 나이가 제법 있어보이시는 여성분이셨는데. 보모 같은 느낌이었다.


실무에서 어지간한 업무 내용은 공유해서 흔히 말하는 인성 면접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테스트 형식의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 대표님을 신문에 낸다면 뭐라고 제목을 쓰시겠어요?', '홍보 예산은 얼마나 쓰셨어요?' '우리 회사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요?' 같은 것들이었는데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기억이 정확히 나는 건 그분이 이 질문을 공부하며 암기하셨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속적으로 질문이 이어졌다.


면접이라는게 특수한 상황이라 평가를 위한 질문이 포함되어 마땅하나 그럼에도 대화의 형식을 띄어야 하는데 어린 대표님의 보모 같은 인사 팀장님과 구술시험을 봤다. 구술 시험이 끝나고 대표님에게 질문하라는 보모님의 권유가 있었고, 나 역시 준비한 질문, '지금 가장 주안점으로 생각하시는 건 뭐에요?' 같은 회사에 관심있어 보이는 질문을 했고 어린 대표님의 수줍고 진심어린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아마 면접을 보기 전에 역할을 나누었을 수도 있고, 어느 회사건 대표는 판단을 하면 되는 것이니까 보모님 주도의 구술시험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다만, 이 똑똑하고 어린 대표님이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강력한 보모님의 존재감을 느낀 면접이라 묘한 기분으로 면접장을 나왔다.


보모님도 대표님도 내가 마뜩치 않았나 보다. 탈락 메일을 보내기도 전에 채용 사이트에서 불합격으로 처리해둔 것을 확인했다.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출근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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