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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상 Jan 02. 2023

뜯고 씹어 맛을 보시더라.

40대 면접 수집가의 면접후기 모음⑤

입사 원서를 쓰기 전에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 것이 있는데, 블라인드와 잡플레닛이다.


재직자들의 회사 평가나, 면접 후기 같은 것들을 보다보면 종종 정신이 아득해질 때가 있다. '세상에나 2022년에 이게 뭔 일이람'이라는 생각과 '꽤나 널리 알려진 회사인데 이게 또 다니면 이런가'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그리고 계속 보게 된다. 입사 원서를 쓰는 시간 보다 저 둘을 쳐다보는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이다. 나랑 관계 없어도 남의 욕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재미있기 때문에. 다만, 분명 보고나면 씁쓸하다. '아니 이래가지고 다닐만한 회사가 있기는 한가'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그렇다고 저런 걸 안보고 입사 지원을 할 수도 없으니 필요악 같은 일들이 반복되곤 한다.


저 두 개의 플랫폼에서 재직자들의 평가가 매우 우수한, 3.5점 이상의 기업에 면접을 본 적이 있다. 모빌리티, 혁신, 상생 이런 단어들이 주를 이루는 회사였다. 평점 3.5 이상의 기업 입사를 성공적인 재취업의 기준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서류 통과 후에 면접을 아름답게 보고 합격했으면 했다. 물론, 3.5 미만의 기업들도 간절히 합격하고 싶었다. 저때는 기업 평가가 3.0이건 1.4이건 간에 우수수수 떨어지는 탈락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도 슬프다.


면접은 기대와 달리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정반대로 수집한 면접 중 최악의 불쾌한 경험이었다.(차악은 다음에, 차악은 코미디에 가까웠다.) 이유는 비아냥이 장착된 화법을 40분 내외로 마주했기 때문인데. 특히, 실무 팀장님은 나를 씹고 뜯고 즐기며 맛보았다. 면접 당사자로서 피해의식인가 하고 두어 발자국 쯤 떨어져 생각해봤는데 아니었다. 나는 씹고 뜯겼다. 그 분이 즐겼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그 홍보팀장이 내게 하고 싶은말은 '00님(나를 의미한다.)은 시니어에요'였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10년 내외의 경력, 마흔의 나이. 주니어라기에는 경력도, 나이도 늙었음을 알고 있다. 주니어와 시니어를 구분하는 기준이 실력인지, 연차인지, 나이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요는 '너는 시니어인데 왜 이것도 안해봤어?' 였다. '시니어인데 왜 뻗치기를 안해봤어?', '시니어인데 왜 데스크랑 술을 자주 안먹어봤어?' 이런 류들. 덧붙여 '홍보를 정작 많이 안해보신 것 아니에요?'라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질문들. 이렇게 생각했으면 애초에 나를 부르지 말았어야 했다. 압박을 활용해서 나의 논리, 화법, 순발력을 보고 싶었다면 저 따위 질문이 아니라 다른 형식을 활용했어야지. 압박면접이라는 이상한 것을 하고 싶었다면 말이다. 저런 질문들은 연말 인사평가 때 연봉인상 해주기 싫을 때나 하는 말들인데. 게다가 나는 경력기술서와 포트폴리오에 가감없이 해 본 것과 할 수 있는 것만 친절히 상술해줬는데. 문해력이 부족하거나 심심하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저 둘 중에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를 모니터 앞에 띄워놓고 저 따위 이야기들을 해대었다. 나는 뜯기면서, 뜯기는 와중에 억지 웃음을 카메라 앞에 띄우며 40분을 잘 버텨내었다. '그렇다기 보다는', '홍보라는 것은 범주가 넓기에' 뭐 이런 말로 운을 띄우면서 대답을 하긴 했다. 정말 수고가 많은 40분이었다. 특히나 입술이.


앞서 몇 번 언급했지만, 면접이란 것은 평가를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면접관은 평가자로서 평가를 위한 질문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압박면접이라는 이상한 방법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 귀한 시간 내어 만나게 된 면접자를 비난, 힐난하는 면접은 그 회사 또는 그 회사의 인사 시스템이 글러먹었음을 보여주고 싶을 때 하는 짓이다 라는 것을 저 뜯기는 면접을 통해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저 회사는 해당 포지션에 채용공고를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공고가 올라왔다.

저 회사는 얼마 후 부정여론으로 몇 번 두들겨 맞게 되었다.


사람이 중요하다니까요.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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