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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상 Jan 04. 2023

퀴즈쇼에서 외친 오답

40대 면접 수집가의 면접후기 모음⑥

퇴사 시기 즈음에 면접이 몰린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한 기업의 면접에서 퀴즈쇼에 참여한 적이 있다.


논술, 토의면접과 같은 예정된 테스트 형식의 면접이 아니라, 면접관이 퀴즈쇼 진행자이자 출제자를 자처한 경우라서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그 면접관의 얼굴과 질문이 아직 생생하다. 조금만 집중하면 그 면접관의 경상권 방언 역시 귀에서 들린다. 나 역시 시골 출신이라 저 악센트는 경상권 출신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출제자는 주로 내 이름을 부르며 외쳤다. "000씨 00에 대해서 아십니까?" 차라리 도를 아냐고 물어보지 그러면 그냥 창을 껐을텐데. 역시나 이미 지난 일이다.


이 면접도 비대면 면접이라 모니터 너머로 그들을 만났다. 해당 기업은 그룹사의 계열사의 계열사, S그룹의 이종사촌쯤 되는 IT컨설팅 회사의 마케팅 직무였다. 그렇다. 퀴즈 주제는 마케팅이었다. '당신은 마케팅과 관련된 이론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를 10여년 즈음 회사를 다닌 아저씨에게 정답을 묻고, 틀리면 정답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는 면접이었다.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주는, 면접에서 학습을 시켜주는 회사였다. 내가 가르쳐 달라고 한 적도 없거니와 질문 수준이 그렇게 높지도 않았고 심지어 정답이 없는 질문도 있었는데 말이다.


기억나는 질문은 이런 것 들이다. 


"4P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아시면 설명 해보세요"

[*4P=마케팅 구성요소. 제품(Product), 가격(Price), 유통(Place), 촉진(Promotion)]


"000씨, 마케팅과 브랜딩, 홍보의 차이에 대해서 아십니까? 아시면 설명해보세요."

(사견입니다만, 이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또 뭐 있더라. 아, 이런 것도 있었다."000씨, CTR과 CPM에 대해서 아십니까?"

(CTR=click through rate, 온라인 광고 노출대비 클릭수, CPM=cost per Mile, 온라인 광고 1,000회당 노출 비용 )


구술시험 수준의 대단한 질문도 아니었고, 검색창에서 확인하면 첫 페이지부터 답을 찾을 수 있는 업계 상식 용어 확인 정도였다. (저 4P라는 용어는 00년대에 대학교 1학년 첫 강의 시간에 듣고 처음 들어봤다.) 다행히 상식 정도는 있어서 어렵지 않게 퀴즈에 응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상식 문제가 하나 출제되었다.


"000씨, 웹 접근성에 대해서 아시는대로 이야기해보세요."


웹 접근성, 어디서 들어본 적은 있는데 정확히 몰랐다. '면접이니까 모른다고 하면 안되겠지'라는 생각에 "아, 웹에 접근하기 쉽도록, 용이하도록 하는 개념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후루쿠(fluke) 한 답을 했는데, 역시나 틀렸고 출제자님은 드디어 기회를 포착했다. 순간 혈색이 좋아지더니 모니터 너머로 신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는 그게 아니에요! 웹 접근성은 장애인 분들도 그 사이트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웹 접근성 입니다. 이거는 당연히 알아야 되는 거에요. 000씨도 아셔야 되는거에요!"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알아야 만 하는 것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네, 알아 두겠습니다." 하고 말았다. 퀴즈쇼가 끝나고 다른 면접관이 일반적인 질문 두어 가지를 건네고 면접은 끝이 났다.


노트북을 덮으며 20년 만에 4P(포피라고 읽자.)라는 단어를 들었더니 어쩐지 감격스럽기도 했지만 이게 무슨 면접인가 싶었다. 학부를 갓 졸업한 신입에게 '당신은 학교에서 공부를 성실히 했습니까'를 확인하는 것에는 용이한 퀴즈쇼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지금 대학생은 분명 더 높은 수준의 구술과 기술을 갖추었을 것이다. 이런 후진 퀴즈쇼는 안해도 될 것 같다.


마흔에 맞이한 '마케팅 장학 퀴즈'는 후르크 한 오답만 외치고 끝이 났고, 면접도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가학적인 출제자의 얼굴 실루엣만 내 기억에 남아있다. 저 퀴즈들과 함께.


다음에 퀴즈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상금이 있냐고 먼저 물어볼 생각이다. 경상권 방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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