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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상 Jan 06. 2023

예의를 갖춘 무례한 문자

40대 면접 수집가의 면접후기 모음⑦

최대한 예의를 갖추었지만 행위 자체가 무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보낸 문자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따뜻한 회신이 돌아온 경험이 면접 수집 중에 있었다.


대학생 관련 커다란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의 PR 직무였다.

별도의 투자를 받지 않고 이익을 내며 성장하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 대학생들의 필수 플랫폼이 되었다는 점은 망할리 없어 보였고 할 수 있는일도 제법 많아 보여 급하게 원서를 내보았는데 한 달 뒤쯤인가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스타트업 면접을 보러갈 때만 은근히 신경쓰이는 것이 있는데 나이다.

채용 공고문에야 6~10년차 이상 또는 경력 무관으로 명기하지만 조직 특성 상 내 나이가 분명히 조직에서 상위권에 들 것이라는 것이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알빠임? 마음에 들면 뽑겄지'라고 다독여보지만 '알빠임'을 실천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알빠임'을 실천한다면 굉장한 수련을 거친 어떤 구루 수준의 인간이 아닐까하고 존경을 보내고 싶다. 나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실무 팀장, 면접관 분이 40대인 나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라고 불리는 혹은 불리기를 원하는 기업에서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면접은 좋았다. 최소한 나는 좋았다. 필요하고 확인해봐야 할 질문을 들었고(결혼, 아이 유무 빼고) 준비해 둔 답, 준비하지 않은 답도 차근차근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험 상 면접이 좋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라는 생각이 들면 합격 유무와 무관하게 좋은 인상으로 남게 된다. 좋은 경험으로 인해 합격에 조금 더 기대하고 집착하게 되는 부분도 생기기기도 하고. 좋은 면접은 로열티를 낳는다.


로열티가 생긴 나는 1주일 쯤에 뒤에도 피드백이 오지 않아 먼저 확인 메일을 보냈고 그 다음 주 초 쯤에 탈락 메일을 받았다. 로열티와 합격은 이렇게나 상관이 없다. 당시에도 면접에 줄줄이 탈락인 상태였는데 탈락 메일에 적힌 예의바른, 불쾌함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좋은 분이지만 다음 기회에'라는 이야기보다 좀 확실한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탈락 이유를 물어보는 일은 사실 되게 회사도, 면접자 스스로에게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블라인드나 리멤버 등에 '탈락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라는 글을 올리면 94% 정도는 만류할 일이다. 우선은 탈락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이유를 구체화 하는 것 자체가 회사에게 노동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1시간 남짓을 구직자와 면접관으로 만난 외부인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굉장한 부담인 일이다. 마지막으로 탈락에는 대단한 이유가 없다. 글자 그대로 '우리가 찾는 사람과 맞지 않아요.'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너무 갑갑한 마음에 장고 끝에 악수를 두었다.

면접 시 받은 실무 팀장님 명함으로 최대한 예의를 갖춘 무례한 문자를 보냈다. 


"혹시, 업계 선배님으로서 면접 당시에 제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말씀 주실 수 있을까요?"


회신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답문자가 왔다. 면접시 좋았던 점을 주로 언급하시며 다만 지금 채우고자 하는 '결'에 차이가 있었다고. 그리고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을 바란다고.


뭐랄까. 기왕 주시는 답 냉철하고 신랄한 내용이 들어있기를 바랬었는데, 그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진심이었고 따뜻했다. 게다가 부담스러운 문자에 회신을 준 일 자체가 감사했다.


그분의 개인적 특성일 수도 있지만 연륜과 경험, 그로 인한 관용이 찰나지만 따뜻함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연륜과 경험은 비단 꼰대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용과 지혜를 만들기도 한다.(아닌 사람이 더 많은 걸 나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렇듯 면접 경험은 로열티로 직결된다. 한 번보고 말 것이라 '알빠임?'하는 회사는 필히 잡플레닛 1.3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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