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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상 Dec 26. 2022

탈락을 거절합니다.

40대 면접 수집가의 면접후기 모음③

면접 탈락 메일을 받았는데, 그 탈락을 거절해봤다.


왜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아쉬웠다.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 회사를 가지 못한 것이.


대기업도, 코스피 상장사도, 숨겨진 신의 기업도 아닌 그냥 스타트업이었다.

AI 기술을 기반으로 이제 막 부상해보려고 하는 50명 남짓한 작은 회사였다.


더군다나, 스타트업이라는 희망에 가득찬 이름 안에는 꽤 많은 열악함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저 네 글자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다만, 실무 면접이 너무 매력적인 시간이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이 정확하게 들리는 면접이었다. 연인 사이의 티키타카라기 보다는 외부 업체, 파트너사, 모기업 등 업무 미팅을 하다보면 드물게 '이 미팅 시원하다'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것과 유사한 기분을 아주 오랜만에 면접에서 느꼈다. 버퍼링 없는 대화란 이처럼 기분이 좋다.


내가 조금 모자라도, 회사가 조금 부족해도 이 정도로 매끄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조율이 가능해 보이는 회사였다. 정확히 말하면 면접에 참석한 젊은 경영 임원이 그랬다.


면접은 토의 주제를 미리 주고 그것에 대해 논의하는 형식이었는데 토의 주제라는 것이 별반 특별한 것은 없었다. 우리 회사 서비스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까요?를 3개 정도의 토픽으로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것이었고 나는 그 토픽에 대해 3장 내외의 페이퍼를 만들어 가서, 짜잔 여기에 제가 생각하는 답이 있습니다를 한 번 해봤다. 아마 그들이 생각한 답은 아니었겠지. 그랬다면 탈락 메일을 받진 않았을테니까. 그럼에도 되게 고마워하면서 그 페이퍼를 소중히 가져갔다. 내부에서 참조하고 싶다며. PT면접을 핑계로 아이디어를 쏙 빼먹는 기업들이 대, 중, 소를 막론하고 존재하지만 이곳은 또 그런 뉘앙스는 아니었다. 시간을 들여 이런걸 만들어 온 것 자체에 대해 존중과 감사를 표해줬으니까.  


이렇듯 시원한 대화, 예의로 충만한 태도에 감화받은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탈락 메일에 거절의 회신을 보내보았다. 아마 많은 인사담당자들이 하지 않아도 좋을 일로 꼽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행여나 저의 역량 때문에 아니라면 저를 다시 한 번 제안드린다고 써봤다.

물론 이 메일이 유효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더 두드려보고 싶었다.


1주일 쯤 시간이 지났나, 역시나 예의가 솔솔 뿌려진 담백한 거절 메일이 왔다. 님은 잘될 것이에요. 라는 응원 메시지와 함께. 회신이 없을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고 내가 회사를 보는 촉은 있구나 라는 자기애적인 위로와 함께 마무리했다.


면접은 곧 회사와의 소개팅과 가깝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 경험이 아름다우면 까여도 고백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또, 소개팅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구애는 구질하고 불쾌할 수도 있으니 이런 고백은 한 번 정도가 좋아 보인다.


아쉽습니다. 잘 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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