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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상 Dec 23. 2022

준비 없는 면접은 앵무새가 되어

40대 면접 수집가의 면접후기 모음ⓛ

나는 옛날 사람이다. 아저씨라는 이야기다.


2022년의 면접 중 가장 크게 바뀐 것을 체감한다면 화상면접이라는 것이 흔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줌으로 대변되는 화상미팅을 종종해봤다. 다만, 면접에 한정한다면 다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고 대기실을 거쳐 "안녕하십니까!"하고 상냥한 목소리와 미소를 장착 후에 면접실로 입장하는 면접만 겪어본 아저씨다.


그런데 이 줌(또는 비슷한 어떤 그런 것, MS팀즈 뭐 그런 것)을 통해 모니터를 마주하고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것은 제법 생소했다. 그래서 좀 얼어버려 앵무새가 된 면접이 하나 있었다.


회사는 S그룹 계열사의 자회사인 보안회사였다. 적고보니 먼 친척을 소개하는 느낌이다. 잘 모른다는 것도 똑같다. 주로 이 정도 규모의 회사, 계열사의 계열사라던가 계열사의 자회사 정도의 규모를 가진 회사에서 서류 전형의 통과 비율이 높았다. 이유는 글쎄, 짐작컨데 이 정도 규모의 회사들이 '이것저것', 범위가 넓은 업무를 다 해본 인력을 선호하는 느낌이다. 강력한 주종목은 없어도 이것도 해봤고 저것도 해본 그런 사람. 거칠게 표현하면 여기저기 다 부려먹기 좋은 사람을 뽑고자해서 나를 보자고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해본다.(컬쳐 핏 뭐 그런 이야기는 다음에 이야기 할 면접이 또 있다.) 직무는 마케팅. 참 멋드러지고 큰 단어다. 마케팅이라니.(직무 이야기도 할 면접이 또 있다. 많기도 하다.)


비대면 면접을 처음 경험해보는 나는 약간 두근거리며 우선 마이크가 달려있는 이어폰을 부랴부랴 샀다. 사실 이건 필요 없었다. 내 노트북은 마이크가 달려있었다. 그냥 말하면 되는 것이었다. 또, 서울시 취업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회의룸도 예약했다. 이것도 사실 필요 없었다. 그냥 집에서 해도 되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 또 아파트 방송이나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 같은 것이 우려되어 서울 시내 어드매에 있는 센터 건물의 방 한켠을 빌려(무료인지 확인까지 하고) 필요없는 이어폰을 끼고 살짝 긴장한 상태로 면접 시간 20분 전부터 앉아있었다. 그러고보니 지난 몇 번의 비대면 면접 동안 단 한번도 초인종이 울리거나 아파트 방송은 없었다. 하여간 다 쓸모없는 짓이었다.


이 때만 해도 이 회사는 딱히 가고 싶지는 않은데 면접이나 한 번 봐보자 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임할 때였기 때문에 내가 낸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한 번 훑어보는 것 외에는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다. 나의 화술에 대한 스스로의 신뢰도 있었다. 내가 말 잘한다 소리를 들은게 몇 번이던가 하면서 긴장은 되지만 준비는 하지 않는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참여 링크를 클릭했다.


모니터 너머에는 세 명이 앉아있었다. 화상회의용 시스템을 활용해서 모니터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 역시 미소를 장착한채 시작만을 기다리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 관련 담당자께서 진행으로 면접은 시작되었고 흔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질문인 자기소개부터 시작되었고, 퇴사 이유 같은 흔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이어졌다. 무난하게 답변을 하면서 아이컨택을 좀 하려고 하는데 이런 식의 테이블에 앉은 화면에서는 아이컨택을 할 수가 없었다. 도무지 면접 분위기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분위기. 긍정의 흐름인가 부정의 흐름인가, 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가 아닌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 화상면접은 이럴 수도 있다.


이제, 실무 관련 질문이 나오는 시점이다. 본인이 지난 직장에서의 업적. 무려 마케팅 직무이기 때문에 뉴스레터라는 새로운 마케팅 툴로 7천명의 이해관계자에게 발송한 이야기를 했다. 이 다음부터 꼬이는데, 우리회사와 경쟁사를 비교했을 때 어떤 마케팅 전략을 써야하는가였다. 나는 이 회사도 잘 모르고, 경쟁사도 잘 모른다. 다시 한 번 뉴스레터 이야기를 했다. 뉴스레터를 써보자는 이야기였다. 면접 자리에 침묵의 시간을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차라리 침묵할 것을. 침묵은 금인데. 이어진 꼬리 질문으로 와서 뭘 할 수 있는가였다.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또 한 번 뉴스레터 이야기를 했다. 가서 뉴스레터를 잘 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봐도 부끄럽다. 해야 할 준비는 안하고 이어폰과 면접 장소만 준비했다 나는. 그래서 모든 실무 질문에 뉴스레터 이야기만 약간씩 바꿔서 해댄 것이다. 광각으로 잡혀서 그들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실소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웃어 마땅하다. 뉴스레터에 미친 사람처럼 굴었으니까.


그 뒤에 아는 기자 유무 정도의 질문에 위축된 답변을 하고 고생하셨다는 인사를 나누며 창을 껐다. 사실 진작에 끄고 싶었다. 세 번째 뉴스레터 이야기를 꺼낼 때쯤 끄는게 맞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의는 바른 사람이라 끄지는 않았다. 서로 귀한 시간을 내여 모였지 않은가. 그 귀한 시간에 뉴스레터 이야기만 해댄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물론, 잘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어른의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면접은 좀 다르다. 저 사람의 생각을 듣고 우리랑 일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는 자리이다. 모든 질문에 모른다고 답하는 것은 이야기 하기 싫다는 것이니까. 면접에는 적절치 않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해도 문제이긴 하지만.


마흔의 면접도 이렇게 어렵다. 면접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알 준비는 했어야 했다. 회사 기사 정도는 찾아봤어야 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정도는 고민해보고 원서를 쓰고 면접을 봐야했다. 대단치 않은 화술과 미소는 10년차 경력직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붉은 앵무새처럼 얼굴이 달아올라 같은 말만 반복하지 않으려면, 뭘 준비해야 승산이 있지 부터 고민해야한다. 다행히도 저 먼 친척 같은 회사의 면접 이후 최소한 앵무새는 아니게 되었다. 목적에 맞는 준비는 새가 될 확률을 줄여준다.


아, 저 면접 때 쓴 이어폰은 구겨져서 창고 방 어드매에 놓여져있다. 버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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