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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상 Dec 24. 2022

12:1은 쫄려요

40대 면접 수집가의 면접후기 모음②

초여름비가 내릴 즈음인가.

저 멀리 5호선의 끝자락에 있는 공공기관에 최종 면접을 보러갔었다.


필기시험을 보러갔을 때 축축한 비가 내렸기 때문에, 그 풍경이 생각이 난다. 비 냄새가 유난히 많이 났었다.

그냥 보기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간 필기시험이 붙었고 당시에 재단 하나를 합격해둔 뒤였기 때문에 살랑살랑하는 마음으로 갔다. 붙으면 좋고 뭐 아니면 말고 하는 마음.


그럼에도 면접은, 특히나 면접 대기 장소는 긴장이 된다. 지금도 그렇다.


이 면접이 기억이 나는 이유는 최종 면접장에 면접관으로 참석한 인원이 내 취업 인생에서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2명 정도로 기억한다. 면접자는 홀로 들어가고.

12:1로 면접을 보는 것이다. 면접관 수가 압박인 면접이었다.


마치 예수의 12사도처럼 기관장을 가운데 두고 열댓명이 둥글게 둥글게 모여 앉아있었고 한 2미터 내외로 떨어진 정가운데 책상과 의자에 내가 앉았다. 누가 유다인지 베드로인지는 알 수가 없었고 그저 바싹 마른 웃음을 지으며 앉았다.


차라리 프리젠테이션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열 댓명과 돌아가며 대화가 이뤄질리는 없지 않은가. 자 봐봐라, 니네가 궁금한 걸 내가 들고왔다가 훨씬 낫지 않았을까.  


굉장히 면접에 정형화된 질문들을 사도들이 돌아가면서 내게 했다.

와서 뭘 할 수 있을까, 공공기관의 고객과 기업의 고객은 어떻게 다를까, 창업은 왜 했는가 정도의 질문들. 다섯 명쯤이 질문했고 당당한 척 대답했을 것이다. 진짜로 당당했는지는 모르겠다. 12:1은 쫄렸다.


사실, 최종면접이니까 임원은 당연히 오겠지 했지만 기관장까지 참석할 줄은 몰랐다. 다만, 기관장은 한 마디도 안했다. 안경 너머로 그냥 내가 답하는 것을 쳐다봤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분 현직 법무부 장관 닮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에 그 이야기나 하고 나올 걸. 이미 지난 일이다.


내가 인사전문가는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을 파악하는 데 다수의 면접관이 참석하는게 무슨 효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정할 것도 아니고. 나한테 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을리도 만무하고. 그 왜 1:1 미팅의 유효성에 대해 아마 #스타트업 #리쿠르팅 #에자일 #HR 같은 해시태그를 쓰는 친구들이 상세하게 적어둔 글을 본 것 같다. 저런 해시태그를 넣은 글이 너무 많고 다 비슷해서 출처를 찾기도 어렵다. 스타트업이라 불리는 회사들은 리쿠르팅 전문가만 육성하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애자일 매니아라던가.


12:1의 면접 끝에 나는 탈락했다.

나중에 호기심에 들어가서 조직도를 보니 방송국 아나운서 경력이 있는 인재 분께서 합격하셨더라.(직무는 홍보) 12명의 면접관은 적합한 인재를 잘 찾아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효용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 필기전형(논술) 참석비, 면접비 다 주는 좋은 회사였다.

준다는 시기에 입금이 안되어 1주일 남짓 기다리다가 메일로 물어봤었다. 입금이 언제 되냐고.

궁색했나 싶지만 4만원으로 한 주의 커피를 사마실 수 있었다. 고마웠습니다 12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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