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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mma Han Jan 07. 2021

올해 나의 승률은 정해져 있다

이래서 야구를 좋아해요


30살 때 처음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잠실구장에서 삼성과 두산의 경기를 본 것이 첫 직관이었다.

거대한 운동장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외야수들을 보는 것이 왠지 활기찬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해, 롯데 팬인 회사 친구와 참 자주 야구장에 다녔고 나도 롯데 팬이 되었다.

© chris_chow, 출처 Unsplash


책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는 KT 위즈 스포츠심리 닥터인 한덕현 교수가 쓴 책이다.

많은 선수들과 또 일반 환자들과의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을 이 책은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프로야구 감독의 능력을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은 승률 5할이다.

144경기를 치르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리그에서는 72경기의 승리가 감독의 실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실제로 2020년 우승팀의 승률은 8~9할이 아니라 6할이었다)


144경기 중 모든 경기를 이기기는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모든 경기를 지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승부는 절반에 있다.

절반의 성공은 받아들이고 실패의 시간은 인내해야 한다.


훌륭한 감독은 72승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기보다 72패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감독일 것이다.

패배의 계획을 제대로 세우는 사람은 공의 계획 역시 굳건히 세울 수 있다.


© mkbpix, 출처 Unsplash



야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장기 레이스로 치러지기에 인생을 야구에 빗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야구팀 닥터이자 정신의학 전문가가 쓴 실패와 불안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조급해하지 않고 길게 볼 것.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되 반드시 이유를 분석해 보는 것.

그리고 어차피 찾아올 실패를 애초에 마음먹는 것.



연초부터 올해 맞이할 실패를 미리 예상해 보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5할의 실패가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어째서인지 담담해진다.



그래도 역시 어렵다.

야구를 보다가 남편이 이렇게 읊조리는 순간이 있다.

‘오늘은 됐고 내일 경기 준비를 해야겠네’

그러고 나면 정말 감독이 신인 야수들을 내보내기 시작한다.

이번 경기는 버린다, 는 판단은 과연 언제 드는 건가.


실패 관리도 결국 경험에서 나오는 것인가.

승리도 패배도 결국은 짬바인 것인가.

(불안해진다)




왜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누가 물은 적이 있다.

“기회가 많은 게 마음에 들어.”


삼진을 잡기 전까지, 아웃을 이끌어내기 전까지 투수는 타자에게 계속 공을 던져야 한다.

실력이 (혹은 심리전이) 팽팽할 경우 투수는 십 수 번의 공을 한 명의 타자에게 던져야 할 때도 있다.

나는 그런 야구의 문법이 마음에 들었다.

던져지는 많은 공이 투타 모두에게 기회의 순간이라는 사실이.


올해 나는 몇 할의 승리를 거머쥘 것인가.

아니 그것보다 몇 경기나 뛰게 될 것인가. �

실패 관리보다 짬바를 늘려야 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은 1년 차 프리랜서는 일단 경기 경험치를 높여보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조금 다른 말이지만 야구 경기 중 내가 좋아하는 순간이 있다.

타자가 아슬아슬하게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 판정을 받았을 때 잠깐 타석에서 나와서 배트를 연습 삼아 휘둘러 보는 순간.

그리고 투수가 다음 공에 대한 전의를 가다듬으며 심호흡을 한 후 모자를 고쳐 쓰는 그 시간.


경기 중이지만 투수와 타자, 각자의 리추얼을 잠깐 보장해 주는 1분도 안 되는 그 시간이 난 왠지 안심스럽다.

(그 시간에는 보는 우리도 잠깐 맥주를 가지러 갈 수 있다)


출루할지 돌아갈지, 어차피 둘 중에 하나다.

그리고 그 기회는 다음 타석에, 다음 경기에, 운이 좋다면 다음 시즌에도 돌아올 수 있다.


실패 확률만큼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회는 퍽 자주 올 것이다.

이 아침에 왠지 힘이 되는 은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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