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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mma Han Nov 06. 2020

욕망 안에 숨은 진짜 욕구

큰강아지와 작은강아지의 사랑 이야기


여섯 살 난 아이가 ‘강아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른지는 오래되었다.


스스로 움직이며 야옹거리는 고양이 장난감을 몇 년 전에 선물 받은 적이 있어서 나는 ‘강아지까지 굳이 필요한 걸까’라는 생각에 아이의 부탁을 다른 말로 돌리거나 적당히 둘러대곤 했다.


https://unsplash.com/photos/oO5MBxRCadY


하지만 얼마 전 깨닫게 된 사실은,

사실 아이가 원한 강아지 인형은 ≫ 강아지를 기르고 싶은 마음에 대체품을 찾은 것이었다는 점이었다.


강아지 인형이라는 욕망 안에 숨은 욕구는 털이 북슬북슬한 귀여운 강아지를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개털 알레르기가 있다.

대학 때 발견되어, 10년 가까이 함께 해오던 강아지를 울며 불며 지인의 집에 떠나보낸 전력이 있다. (세브란스에서는 내가 천식이 되기 직전이었다 했다)


“엄마는 강아지랑 있으면 숨을 못 쉬어.”


실제로 기르던 반려견을 보내고 나서 증상이 더 심해진 나는 작은 몰티즈와 15분만 한 공간에 있어도 눈알의 흰자위가 부어오르거나 기도가 붓기 시작하는 등 굉장히 위험해진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보다 강아지를 기를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슬퍼했다. 이해한다.

그리고 만약 내게 알레르기가 없었어도, 반려견을 들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라 몹시 신중할 일이긴 하다.


그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강아지 인형 사주세요.




강아지 인형 뒤에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는 아이의 진짜 욕구를 발견한 김에,

그럼 왜 강아지를 기르고 싶은가, 를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강아지가 좋으니까, 일수도 있다.

그들은 너무나 귀여우니까.


하지만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까.



남편은 지방으로의 출장이 잦다.

아니 반대로 가끔 서울에 오는 수준이다.

아이가 네 살 때부터 지방으로 일을 다녔으니 이제 2년이 넘어간다.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였나 싶기도 하다.


아이는 갓난쟁이 때부터 아빠를 좋아했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해서 아이 이름을 장난스럽게 부르기만 해도 아이는 시야에 아빠의 재미있는 표정이 들어오길 기다리며 아기침대에 누워서 까르르까르르 웃어댔다.


그런 아빠가 몇 주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서 아주 몹시 허전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

(머리숱이 많은 남편이 아이의 큰 강아지 기능을 했을 확률을 배제하고 있지 않기에)

아빠는 나의 큰강아지


독립해서 일하면서 아이와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추억도 많아지고 부딪히는 일도 많아진다.


오늘 아침에도 옷으로 까탈을 부리는 (이건 엄마인 내 입장이고 더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어 한) 아이에게

‘음, 엄마 너랑 안 놀아.’라고 했고,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고작 그 말로 우나 싶기도 하지만 그때의 내 도끼눈을 스스로 잘 알기에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 눈빛이면 큰 강아지 아니, 남편도 울었을 거다)


이런 날은 아이를 등원시키고, 글을 쓰고 책을 읽어도 마음이 편치 않다.

이번에는 나에게 이 ‘진짜 욕구는?’ 공식을 대입해 본다.

아침에 아이에게 짜증을 부리는 나의 속 마음은, 진짜 욕구는 무엇일까.


1. 아이가 내가 하자는 대로 따르면 좋겠다.

≫흠 이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자립하는 아이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아침 시간에는 원래 마음이 바쁘다.

≫ 아니다. 나는 출근시간을 지켜야 하는 회사가 없다. 등원 시간도 이른 편은 아니지만 짜증을 낼 정도로 아이가 늦장을 부리지는 않는다.


그럼 아침 시간에 나의 마음에 여유가 없는 이유가 뭘까.


© JessBaileyDesign, 출처 Pixabay


바로,

아침에 내 시간을 갖지 못했다. 는 사실.


7시 전에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저널을 펴고 확언을 끄적이고 오늘 할 일을 세 가지 적고 가만히 앉아있는 일.

40분이면 될 일.



이걸 해낸 아침과, 오늘 아침처럼 배터리 방전으로(이북을 켜놓고 잤다) 알람이 울리지 않은 아침은 마음의 질이 다른 것이다.


아침 내내 초조해하며 스스로와 아이를 다그친 나의 마음속에 있던 것은, 일찍 내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을 얼른 아이를 등원시키고 만회해 보려는 욕구였다.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때로는 광광대는 상대를 바라볼 때 저 안의 욕구는 무얼까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를 닦달할 때, 혹은 자꾸 엽떡이 땡길 때는 그래서 정말 네가 원하는 게 뭐야,라고 잠깐 서서 물어보기로 한다.



감정과 싸우는 것은 모래 늪에서 허우적거릴수록 점점 더 깊이 발이 잠기는 것과 같다. 알아차리고, 이름 붙이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이자 최선의 공격이자 최선의 방어이다.

팀 페리스, 타라 브랙(마라에게 차를 대접하라), 타이탄의 도구들



오늘 아이가 하원 하면 일단 많이 안아주고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들어줘야지.


내일부터 며칠간 집에 방문(!) 하는 남편과 아이가 진한 시간을 같이 보내게 하고, 그럼에도 강아지 인형을 원하면 같이 손 잡고 가서 사주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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