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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mma Han Sep 05. 2020

코로나 시대의 서비스 디자인 (3)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1. 더그 디츠의 MRI 기계와 아이들


서비스 디자인에 대해 다루는 거의 모든 텍스트에서 나오는 예시가 있다. 

바로 더그 디츠Doug Dietz의 MRI 기계.

GE에서 24년을 근무해 온 더그는 수백만 달러짜리 MRI 시스템을 개발에 관여했다.


성능도 좋고 디자인(?)도 뛰어난 제품이 병원에 설치되자 뛸 듯이 기뻤던 그.

하지만 이내 그곳에 MRI 촬영을 위해 들어오는 작은 소녀가 겁에 질려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윽고 MRI기사가 마취과 의사를 호출하는 것을 본 더그는 깜짝 놀라게 된다.


더그는 가장 약한 환자들이 자신의 기계 앞에서 보여준 불안과 공포를 이렇게 접했다. 이 일은 그의 관점을 영원히 바꿔놓을 어떤 개인적 위기감을 촉발시켰다. 그에게 그 기계는 칭찬과 경탄의 대상이 되는 우아하고 매끈한 첨단 기술 작품이었지만, 울고 있던 아이에겐 자신을 배속으로 집어삼킬 크고 무서운 괴물일 뿐이었다. 기계의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은 그게 기껏 자신이 도우려고 했던 환자들의 기를 꺾는 물건이 돼버렸다는 패배감으로 바뀌었다. 더그는 일을 그만두거나 그러려니 하고 그럭저럭 지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자신이 변화를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톰 켈리, 데이비드 켈리-유쾌한 크리에이티브


이후 더그의 서비스 디자인적 접근방식-인간 중심적 디자인 방법(Human-centered design methodology)에 따라 GE의 어드벤처 시리즈가 탄생하게 된다.


https://jhealthmedia.joins.com/_inc/pop_print.asp?pno=14682



MRI 실을 어린이를 위한 모험 공간으로,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스토리를 부여했다.

해적선이나 우주선으로 다시 포지셔닝한 것.

이런 재설정된 스토리에서는 무서운 MRI 기계의 소리도 모험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더그는 새롭게 디자인한 MRI 기계에서 촬영을 마친 여섯 살배기 소녀가 "엄마, 내일 또 여기 올 수 있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는... 그야말로 해피엔딩, 잘 된 서비스 디자인의 이야기이다.




2. 코로나19, 그리고 아이들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다.

여행도 어렵고, 외출마저 어렵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그중 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이 바로 마스크를 낀 아이들의 모습.


단순히 우한의 몇몇이 박쥐를 먹어서, 라기보다

어른들이 이제껏 환경과 지구를 마음대로 쓴 탓이라고 생각해 본다.


딸이 태어났던 2015년 5월은 메르스가 있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일주일 정도 있던 아이를 만나러 가는 나도 입구에서 열체크를 당한 기억이 있다.

아이가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던 두 살, 세 살 되던 때에는 미세 먼지가 최악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는 집에만 있다.


올해 3월에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옮긴 아이.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모습을 익힐 새도 없이 모두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실내 생활을 한다.

우린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적이 없다.

얼마나 답답할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리고 유아들은 어른들의 입모양을 보고 언어를 익힌다는데, 마스크를 쓴 선생님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할 리 없다.

그리고 이제 1년 반 후면, 학교에 입학을 한다.

우리가 어릴 때 다니던 그런 학교가 아닌 곳에 입학이라는 것을 한다. 


매해 (나에게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야 하는 아이를 보며 반성도 원망도 많이 든다.

하지만 미안해하기만 하고 끝. 이면 절대 안 되겠지.

결자해지.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이 그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약자를 도와야 하는, 어른은 어른의 역할이 있다.


아이와 레고로 놀 때였다.

둘이 놀이터를 만들고 사람 피규어를 옹기종기 벤치에 앉히려는데 아이가 조심스레 말했다.

"엄마, 레고니까 세 명은 괜찮아요?"


어린이집에서 세 명 이상 뭉쳐 놀지 못하게 하니, 그 머릿속에 각인이 된 숫자.

그럼, 괜찮지. 레고는 괜찮아.

그리고 사실은 너희들도 괜찮아. 미안해.

© timmossholder, 출처 Unsplash


3.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얼마 전 CNN 뉴스에서 아래와 같은 기사를 읽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책상에 침방울이 튀지 않게 하는 가림막을 설치하게 된 초등학교 교실.

미국 플로리다의 초등학교 선생님 두 분이 새로워진 교실 환경에 놀랄 아이들을 위해 재미있는 궁리를 했다고 한다.


모든 책상을 차처럼 꾸민 것.

심지어는 방학 때 모든 아이들에게 미리 차 키를 건네주었다고 한다. 

이제 개학을 하면 너의 차가 교실에 있을 것이라고.



이 책상 차에 타고 있을 때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한다. (내 차니까!!) 

그리고 차에서 내릴 때, 즉 의자에서 일어날 때는 마스크를 끼는 것이 룰이라고.


방학 때 차 키를 받아 든 순간의 아이들 표정이 눈에 선하다.

더그의 MRI 디자인처럼 어른들이 스토리를 부여해 주기만 해도 아이들은 같은 환경을 능히 이겨낼 힘이 생긴다.


https://edition.cnn.com/2020/08/23/us/florida-teachers-desk-jeep-students-coronavirus-trnd/index.html


4. 역지사지가 안되면 미래의 내 일처럼 생각해 보는 것


얼마 전, 엘리베이터나 선반 위에 놓인 손소독제가 아이들의 눈높이보다 높아서,

아이들에게 사용하게 할 경우 알코올 성분이 튀어 각막 화상의 위험이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실제로 부상을 당한 케이스가 있는 모양이다.


모든 시스템을 만들 때 약자 위주로 생각해 보는 것.

이를 가리켜 모두를 위한 디자인, Universal Design이라고도 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영어: universal design, 보편 설계, 보편적 설계)은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흔히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 '범용 디자인'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공공교통기관 등의 손잡이, 일회용품 등이나 서비스, 주택이나 도로의 설계 등 넓은 분야에서 쓰이는 개념이다.
출처: 위키 백과


우리도 언젠가는 늙고 혹은 불미스러운 일을 당해 보행이 자유롭지 않거나 휠체어 등에 의지하게 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내 눈높이에 손소독제가 설치된다면 분명히 항의할 것이다. 어른들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주어진 모든 설정이 세상의 기본값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다르다.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것이다.


정 약자를 위한 디자인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면 미래의 나를 위한 디자인을 한다고 다소 이기적(?)으로라도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른들은 슈퍼맨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능숙하게 신발끈만 묶어도 경탄의 눈빛을 보낸다.


코로나 19로 새롭게 시작하는 시대, 이토록 작은 인간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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