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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mma Jan 10. 2022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의사 결정의 비밀

저울이 필요하다


한 달 전쯤의 일이다.


남편이 나에게 지인의 사업 계획서를 검토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남편이 지인의 일을 부탁한 적은 그 전에도 몇 번 있었다.



"누구누구가 이번에 XX를 준비하는데, 기획서를 좀 써줄 수 있을까?"


"누구누구가 이번에 OO를 가지고 사업을 한다는데 조언 좀 해달래."



당시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는 사업을 하는 친구들이 왜 내게 조언을 구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월급 받고 일하는 것을 가장 잘했고, 그 외의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기에 모든 제안을 거절했었다.


하지만 한 달 전의 그 제안은 조금 달랐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제안받은 일이 아주 조금 중복된다는 점과 내가 몇 년 전과는 달리 꽤 뻔뻔해졌다는 이유로 생각을 해 보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사실 밀어내고 있었다)



나의 주저하는 목소리를 들은 남편은 거절을 하려거든 직접 하라며 (!) 지인의 번호를 보내주었고, 나는 전화를 걸어 일단 어떤 일인지를 검토해 본 후 결정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의 지인은 내 메일로 그 간의 자료를 모두 보내주었고 역시나,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업체를 통해 받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당 내용도 보내주었는데 내가 봐도 업체에 쓴 돈이 아까워 보였다.



하루 종일 마음이 좌로 우로 왔다 갔다 했다.


장점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을 해 보는 것이었고,


단점은 내가 회사 다닐 때 가장 힘들어했던 종류의 문서를 검토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하고는 싶은데 하고 싶지 않은 일.


꼬박 하루를 고민하고 내가 이용한 결정의 수단은 다름 아닌 '가격'이었다.



그쪽에서 거절을 해도 서로 미안하지 않은 수준의 견적을 부르자. 
만약 그 견적을 받아들인다면 힘써 일해볼 용의가 있다.


앞서 진행한 업체의 단가를 통화 때 물어보아서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업체도 아니고 개인으로 일하긴 하지만, 그 업체보다는 훨씬 뛰어나게 할 자신은 있었다.


그래서 감히 그 업체보다 더 비싼 금액을 불렀다.



이미 업체에 지불한 돈이 있기에, 고객 (지인) 입장에서는 물론 부담도 될 것이지만,


엄연히 이야기하면 그것은 일을 하게 될 내가 고려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일을 맡은 개인이 업체보다 많이 부른다는 것이 고객 입장에서 의아한 포인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용을 이유로 거절을 하면 그만이다.



© kerryraw, 출처 Unsplash


앞서 '가격이 말을 한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여기에서 내가 부른 업체보다 20% 높은 가격 역시 두 마디의 말을 하고 있었다.



1. 업체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나를 거절해도 네가 덜 미안할 것이다. (거절을 받아도 그만이었기에 공을 넘김)


2. 그런데 만약 이 가격을 OK 한다면 나는 기꺼이 열심히 해 줄 것이다. (이 가격을 받고 열심히 안 할 수 없다)



견적을 내서 메일을 보냄과 동시에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도 좋은 기회였는데,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해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도 거절을 확신했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mariusmatu, 출처 Unsplash


그리고 사흘간 나는 정말 그 일을 열심히 해 주었다.


모든 갑작스러운 수정에도, 심지어 2번이나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했음에도 군말 없이 작업했다.


불확실한 부분은 고객에게 확인을 부탁하지 않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가며 직접 문의하며 작업했을 정도였다.



입금 후에는 끝까지 고객만족인 것이 내 일의 철칙인 것도 있지만, 아무리 재작업을 해도 좋을 만큼의 비용을 받고 작업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업체보다 잘할 자신이 있음에도 개인 자격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가격을 낮추었다면 어땠을까?


클라이언트의 작은 요청에도 마음에 날이 섰을 것이다.


'아니, 그 돈을 주고 이렇게 수정이 많다고?'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가 요청한 비용에 흔쾌히 (아니, 사실 부가세까지 쳐서 더 주었다) OK를 한 고객에 대한 감사함은 생각보다 힘이 컸다.



내가 갖고 있는 책임감의 총량이 이렇게 늘어날 수 있구나 깨닫는 며칠이었다.


그렇다. 돈으로 책임감도 살 수 있다.




작년인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회사 근처에서 출퇴근을 하다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 A라는 사람이 집 근처의 직장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어떻게 퇴사 이야기를 꺼낼지 고민하던 A는 마침 연봉 협상 기간을 맞이하여 터무니없는 금액을 회사 측에 불러보기로 한다. 당연히 그만큼의 인상은 힘들 것이고, A는 연봉 인상 결렬을 이유로 퇴사를 하겠다는 시나리오였다.


회사 전체의 인상률이 5%에 그쳤음에도 약 30%의 연봉 인상을 요청한 A는 과연 퇴사를 했을까?


놀랍게도 회사에서는 이 인상률에 흔쾌히 OK 했고, A는 기쁘게 긴 통근 시간을 감수하며 아직 회사에 다니고 있다.



© miracleday, 출처 Unsplash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계륵 같은 일이 눈앞에 있을 때.


내가 이 일에 얼마나 책임을 다 할 수 있을지 또렷하게 알 수 없을 때.


이 일에 대한 내 애정이 몇 그램인지 알고 싶을 때.


그리고 대안이 나에게 있다면,



내 일을 가격이라는 저울에 달아보자.


아님 말고, 하는 마음에 마법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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