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없이 확성기부터 드는 스타트업의 비극
이 글은 실제 코칭 세션을 조금 각색한 시리즈 중 두 번째입니다. 초기 스타트업이 반복하는 전형적 실수들과 그 해법을 공유해 보려 합니다.
몇 달 전 진행한 코칭 세션에서, 한 프레그런스 스타트업 창업가가 마케팅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인플루언서 협업도 계획 중이고요, 인스타그램 광고도 돌리려고요. 성수나 홍대 팝업스토어도 고민 중입니다."
예산이 꽤 들텐데, 라는 생각에 마케팅 예산을 물었습니다. 아직 매출이 나기 전, MVP 단계였지만 생각 외의 답변이 나왔습니다.
"마케팅 예산이요? 음, 천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많은 초기 스타트업이 이 함정에 빠집니다. '검증(Validation)'과 '성장(Growth)'을 혼동하는 것이죠.
인플루언서 협업, SNS 광고, 팝업스토어 등, 이 모든 활동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제품이 좋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게 아닙니다.
"어떻게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까?" (성장의 질문)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겁니다.
"사람들이 정말 우리 제품을 원할까?" (검증의 질문)
지도도 없이 정글에 들어가서 확성기로 "나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확성기가 아니라 나침반입니다.
그 창업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 제품은 천연 에센셜 오일로 만들어서 화학 성분이 전혀 없어요. 디자인도 미니멀하게 예쁘게 만들었고요."
"그게 고객에게 중요한가요?"
"당연하죠!"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디퓨저 매니아라 알아요. 이런 제품을 원했거든요."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검증 단계의 목표는 매출이 아니라 '학습'입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찾는 단계죠.
고객은 정말 천연 성분에 프리미엄을 지불할까?
35,000원이라는 가격이 적정할까?
사람들은 디퓨저를 어디서, 왜, 어떻게 구매할까?
우리의 '미니멀 디자인'이 실제로 매력적일까?
이 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천만 원을 쓰는 건,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모르면서 전 재산을 거는 것과 같습니다.
2010년대 초반, '컬러(Color)'라는 사진 공유 앱이 있었습니다.
출시 전 무려 4,100만 달러(약 500억 원)를 투자받았습니다. 실리콘밸리가 주목하는 스타 창업가, 혁신적인 기술, 화려한 마케팅.
결과는? 출시 2년 만에 서비스 종료.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이 아니었거든요. 500억을 쓰기 전에, 5천만 원으로 먼저 확인했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그들이 4,100만 달러가 아니라 4만 달러만 있었더라면, 먼저 고객이 원하는지부터 확인했을 것이고 실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라고 회고합니다.
반대 사례도 있습니다.
드롭박스(Dropbox) 창업자 드류 휴스턴은 제품을 만들기 전에 3분짜리 데모 영상 하나를 만들어 온라인에 올렸습니다.
비용? 거의 0원.
그 영상 하나로 7만 5천 명의 베타 신청자를 모았습니다.
시장이 원한다는 확신을 얻은 후에야 본격적으로 제품을 만들었죠.
토스(Toss)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창업자 이승건 대표는 개발팀을 꾸리기 전, 단 한 장의 웹페이지를 먼저 만들었습니다.
"복잡한 공인인증서 없이 10초 만에 송금하세요."
사람들이 그 문구에 끌려 '다운로드' 버튼을 눌렀을 때, 정작 나타난 건 앱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준비 중입니다. 출시되면 알림을 드릴까요?"
이 간단한 '가짜 페이지(Fake Landing Page)' 하나로 순식간에 수만 명의 대기자를 모았습니다.
수백억을 쓰기 전, 단돈 몇 만 원으로 사람들이 이 기능을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을 먼저 증명해 낸 겁니다.
저는 그 창업가에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천만 원 쓰기 전에, 10만 원으로 먼저 실험해 보세요."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제품 사진과 스토리를 매일 올려보세요 (비용: 0원)
주말에 성수동 플리마켓에서 하루 부스를 열어보세요 (비용: 5-10만 원)
지인 50명에게 샘플을 나눠주고 솔직한 피드백을 받아보세요 (비용: 원가 수준)
무신사 스토어나 텀블벅 같은 곳에 소량 테스트 판매를 해보세요
이 실험들의 목표는 매출이 아닙니다. 배움입니다.
어떤 향이 가장 반응이 좋을까?
사람들이 실제로 35,000원을 기꺼이 낼까?
어떤 메시지에 가장 많이 반응할까?
누가 우리의 진짜 고객일까?
이런 질문의 답을 찾은 후에, 그때 천만 원을 쓰세요. 그럼 그 돈이 10배의 효과를 냅니다.
"하지만 인플루언서 쓰면 빠르게 알릴 수 있잖아요?"
맞습니다. 주목은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뢰는 살 수 없습니다.
"지금은 돈 쓸 생각보다, 고객의 입장이 되어보는 게 중요합니다. 프레그런스 커뮤니티에 직접 참여하세요. 인테리어 소품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보세요. 그들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우세요."
오늘의집 커뮤니티에서 방향제 추천 글에 댓글을 달아보세요
라이프스타일 모임에 참여해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들어보세요
인스타그램에서 당신의 잠재 고객들을 팔로우하고,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세요
이 활동들은 돈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만 원짜리 광고보다 훨씬 가치 있는 통찰을 줍니다.
한 달 후, 그 창업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주말마다 플리마켓에서 직접 팔아봤어요. 처음에 생각했던 거랑 완전히 달랐어요."
무엇이 달랐을까요?
20대가 주 고객일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30-40대가 더 많이 샀다
'천연'보다 '은은한 향', '머리 아프지 않은'이라는 메시지에 더 반응했다
가격은 25,000원으로 설정했고 그 중에서도 2+1 세트 구성이 잘 팔렸다
디자인은 예뻤지만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존재감이 없었다. 예쁜 디자인보다 큰 사이즈의 디퓨저를 선호했다.
이 모든 걸 배우는 데 들어간 비용은 20만 원 정도라고 했습니다.
만약 검증 없이 천만 원을 태웠다면 어땠을까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제품을, 아무도 듣지 않는 확성기로 외치는 데 그 돈을 전부 날렸을 겁니다.
세스 고딘은 그의 책 『This is Marketing - 마케팅이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제품을 위한 고객을 찾지 말고, 당신의 고객을 위한 제품을 찾아라."
(Don't find customers for your product. Find products for your customers.)
마케팅은 제품을 포장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고객을 위한 제품을 찾았을 때,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확성기일 뿐입니다.
당신이 쥐고 있는 천만 원, 지금 확성기를 사는 데 쓰시겠습니까? 아니면 고객을 위한 제품을 찾는 나침반으로 쓰시겠습니까?
다음 이야기: "내가 불편하니까 다른 사람도 불편할 거야"라는 착각. 창업가 자신이 고객일 때 빠지는 위험한 함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