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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Dec 15. 2016

[TAI] #2. Morgan Museum

2016.12.09 (CHAPTER.3) Art Inspiration 2

졸업생을 위한 모델 드로잉 수업에서 만난 지나의 추천으로 메디슨 애브뉴 37가에 있는 Morgan Library & Museum에 갔다. (코리아타운 근처, 무료입장 금요일 저녁 7-9시) 전시는 물론 콘서트와 공연, 강의와 토론도 이루어지는 생각보다 큰 규모의 박물관이어서 건물 전체를 돌아보기에 두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나가 가장 좋아한다는 미술관이라는 말 그대로 재방문하고 싶은 곳. 코트를 맡기러 가자 금요일 저녁 로비에서는 재즈 듀오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네 개의 주요 전시 일정은 대부분 1월 초까지인데 그중 Hans Memling을 볼 시간이 없어 건너뛰고 나머지에 집중하였다. 본 박물관은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은 개인 소장 사진 촬영을 독려하여 좀 찍어두었다.


#2. The Morgan Library & Museum


Word and Image: Martin Luther's Reformation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16세기 서양 사회를 이후 완전히 뒤바꾸어놓은 역사적인 사건이자 가장 성공적인 매체 캠페인(변혁운동)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95개 조의 반박문 (1517)>을 Wittenberg의 교회 문에 걸린 이래 5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이 전시회는 어떻게 예술 작품, 음악 그리고 인쇄술의 전략적인 사용을 통해 종교개혁이 발전되었는지 살펴본다. 기존에 북미에서 볼 수 없었던 대략 100여 개의 미술품과 전시물들이 독일의 여러 박물관에서 빌려왔다.


인간에 대한 루터의 비관적 견해는 종종 심리학적 정신분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과도하리만큼 엄격한 성욕(性慾)에 대한 결벽증, 지나칠 정도로 철저한 이성(理性)에 대한 불신, 그리고 안타까우리만큼 처절한 자기(自己)에 대한 실망* 이 모든 주제들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의 ‘지배욕’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종교적 헌신의 필요성을 도출하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아울러 당시 가톨릭 전통의 ‘자기부정(自己否定)’적 신앙을 넘어 ‘믿음’(fide)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우위로 귀결된 루터의 종교관이 어떻게 세속적 정치권력과 시의적절한 협력으로 수렴되었는지도 큰 흥미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루터 [Martin Luther] - 인간은 신을 선택할 수 있는가? (정치철학 다시 보기, 2016. 7. 15.)
*Erick H. Erikson, Young Man Luther: A Study in Psychoanalysis and History (New York: W.W.Norton & Company, 1993 [1958]), 223-250.
**Augustine, The City of God against the Pagans Vol. 4, translated by William C. Green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60), 14.3-5 & 28, 15.2.
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 Christ and Mary, ca. 1516-20 Oil on parchment on panel


모호하면서도 눈에 띄는 이 예수와 마리아 회화작품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특히 그림 속 푸른 눈의 예수가 관통하는 듯이 관람자를 직접적으로 응시하는 것은 관음 하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 정도이다. 당대에서 볼 수 없는 구성과 연출, 그리고 배경의 생략은 내러티브보다 두 인물의 애수를 띈 얼굴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든다. 오른쪽의 마리아 조차 성모 마리아인지 막달라 마리아인지 알 수 없고 이러한 불확실성은 미스터리한 감정적 연결 및 무한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비텐버그 법원의 누군가가 의뢰하여 제작한 기념화라고 한다.



Dubuffet Drawings 1935-1962 

Jean Dubuffet(1901-1985)은 그래피티, 아동미술과 정신의학 환자들의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1940년대에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은 화가이다. 드로잉은 그가 종이에 새로운 주제들과 기법들을 실험적으로 연구해보며 발전했다. 가장 혁신적인 작품들 백여 점을 만들어냈던 1935년부터 1962년 사이의 작품들을 포함해서 프랑스와 미국의 개인 및 공영 수집품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1940년대 후반 따뜻한 곳에 있고 싶어 아프리카로 떠나 2년 동안 그곳에서 2천여 점의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과슈와 펜, 인디아 잉크를 쓰다가 후에 imprint(다른 종이에 찍거나 새겨) 오려서 찢어 붙이는 꼴라쥬 혹은 아상블라주 기법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초상화에서는 개별적인 특성들이 아닌 전반적인 하나의 큰 이미지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는 Dubuffet은 '웃긴 코들, 커다란 입들, 뒤틀린 이빨.. 나는 이런 것들이 좋다'라며, 1945-47년 초상화가로 활동 시 Henri Michaux의 커다란 귀, 염세가 Paul Leautaud의 함몰된 입, Joe Bousquet의 기다란 손을 강조했다. 그런 캐리커쳐 이상으로 Dubuffet은 현대 초상의 인습을 급진적으로 재고해보았다. 같은 시기 Giacometti의 수척한 인물화들처럼 그의 그로테스크한 머리들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인 프랑스 지식인층에 의해 표현된 인간의 조건의 절망고통을 담고 있다.




미술치료사들이 수천만장의 그림을 보다 보면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직관적으로 평균 이하의 위협적이거나 경고성 느낌의 그림들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자신감 있게 통제되지 못하여 의도를 벗어난 삐뚤삐뚤한 선이며 형체들은 비지배적인 손을 사용했거나 이와 같은 신체적/정신적/정서적 불편함을 가지고 임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흙, 돌, 뿌리, 마른 나뭇가지, 마른 꽃 등 자연재료를 사용해 볼 것


1950년대 말 Dubuffet는 새로운 주제와 질감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가장 추상적인 드로잉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추상성과 형상 사이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그는 수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콜라주를 만들어냈다. 



관절 인형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 같기도 한 만화적인 인물이 등장하는데 인간과 자연의 친밀감이 기법적인 연구와 연결되면서 동시대에 재료로서도 식물의 요소를 쓰기 시작하게 된다.







A man walking with a tree (뭐 하여간 이런 비슷한 제목)


나비날개를 이용한 초상화
Botanical Elements

잎, 줄기, 꽃잎 등 각종 식물의 요소를 사용하여 가상의 풍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텍스쳐에 대한 연구를 더욱 깊게 하였다.






Charlotte Bronte: An Independent Will

<제인 에어 Jane Eyre (1847)>를 쓴 샬롯 브론테(1816-1855)는 스스로를 '독립적인 의지를 가진 자유로운 인간'이고자 하였다. 브론테의 200주년 생일을 기념하는 이 전시회는 상상력 풍부한 십 대에서부터 마지못해 일했던 가정교사를 거쳐 거장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창조적인 길을 밟아본다. 모건 컬렉션인 브론테 희귀 판본 서적과 자필 편지 및 원고뿐만 아니라, 영국 하워스의 브론테 박물관에 진열되었던 샬롯의 드로잉 작품, 런던 내셔널 초상 갤러리에서 브론테 자매의 초상화, 그리고 브리티시 도서관에서 그의 정갈한 필체로 쓴 제인 에어 원고도 만나볼 수 있었다.


영국 북부 요크셔주의 손턴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가 다른 형제자매와 마찬가지로 (마리아, 엘리자베스, 샬롯, 브란웰, 에밀리, 앤) 불혹을 넘기지 못하고 임신 중 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돋보기로 볼 정도로 작은 책들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는데, 자매가 아버지가 주신 장난감 병정을 가지고 놀다 필요했던 장난감용으로 만든 것들이다. 아이들은 그 병정들이 사는 마을을 창조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세 자매가 문호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서, 유년의 삶에서 서로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들의 세계를 자유롭게 고수할 수 있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Branwell Bronte (1817-1848) Portrait of anne, Emily, and Charlotte, ca. 1834 Oil on canvas

Branwell's Family Portrait

저 미완성의 가족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브란웰은 당시 17세였다. 1950년대에 적외선 카메라로 감지해보니 중앙의 네 번째 인물은 브란웰로 밝혀졌는데, 세월에 따라 유화물감이 사라지면서 유령 그림처럼 남아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하게 되었다. 작품의 상태는 그 역사를 반영하기도 한다. 샬롯의 남편 작가 Bell Nicholls는 장인 패트릭 브론테의 죽음 이후 하워스에서 그의 새집인 아일랜드로 가지고 왔고, 두 번째 아내 메리앤은 그들의 농장에서 헌 옷을 덮어둔 이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50여 년 동안 고이 접힌 채 보관된 이 작품은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 걸리게 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백 년 후 북미 여기에 처음으로 보이게 되었다.  


2층 갤러리에는 샬롯의 초상화 및 당시대의 의복과 구두가 전시되어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연필과 수채로 그려본 습작.

사실 제인 에어는 고전 영화로 접했고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고등학교 때 읽고 뭐 이런 엄청난 작품이 있나 후들후들했지만..


곧 문이 닫히기 전인 저녁 8시 40분, 2층 갤러리에서 브론테에 관해 우연히 말을 걸어온 한 낯선 신사가 자신을 미술에 관해 글을 쓰는 작가라고 소개하였다. <빌레트(Villette, 1853)>(샬롯의 마지막 작품이자 자전적인 소설로 제인 에어가 한 남자의 아내로 남았다면 영국에서 프랑스로 일하러 간 이 소설의 주인공 독신여성 루시를 통해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을 강화했다)를 나에게 추천해 준 빌이라는 이름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 분과 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흥미로운 소담을 나눈 후에, 기회가 되면 다음에 휘트니미술관에서 아쉴 고르키(Arshile Gorky)의 작품을 함께 보기로 하고는 자리를 나섰다.




 


* BBC 다큐멘터리 Being the Brontes (2016) https://youtu.be/91a8rEHjo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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