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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Aug 03. 2016

1. 맨해튼도 섬이긴 하지

2014.08.01

이번 달에 뉴욕으로 미술치료를 공부하러 가게 되었다. 꾸준히 생각해왔던 길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 지금도 놀랍고, 사실은 현재도 고민이 진행 중이다. 그야 고민은 언제나 끝나지 않을 것이다만.


내가 살아오면서 막연히 떠올랐던 것들이 구체화되어 가는 것을 보니 스무 살에 보았던 유명한 구절이 새삼 떠올랐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 Paul Bourget, 1917)”


Vancouver White Rock l Feb 2007 © JUNE


대학교 1학년 때 초급 영작문 시간에 영미권 학교에 ESL 수업 커리큘럼/프로그램 문의 편지(브로셔 요청 같은 것)를 보내는 시간이 있었다. 과친구들이 미국이나 호주에 많이 보냈는데 혼자 캐나다(UVic)에 보내보았다. 그때 답장이 온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엉터리 내 말을 알아듣는다고? 십여 년 후에 아무런 연고 없던 캐나다에서 (졸지에) 학사를 마치게 되었다. 그것도 200X 년 워킹홀리데이로 떠났다가. (그때도 과 동기들은 호주로 많이 갔다) 당시 어느 룸메이트가 너는 학교 들어가서 심리학 하면 어울리겠다 였나 그런 비슷한 말을 스쳐 지나가듯이 했다. 그 시기에 보통 내 처지의 –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워킹홀리데이로 캐나다에 왔던 여자 친구들은 이민을 구체적으로 희망해서 오거나, 그렇기 때문에 학교로 돌아가더라도 전문학교에서 취업이 잘되는 간호학과, 회계과, 요리학과, 유아교육 등을 선호했다.


미술치료라든가 심리학도 스무 살 때부터 생각해오긴 했었는데 그저 막연했다. 2천 년대 초반 그 당시에 국내에 미술치료는 손을 꼽을 정도이고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지금도 부산에는 그에 관한 정규 교육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더라. 열아홉 때 심리학과나 철학과를 원했지만 자기주장을 크게 드러내는 아이는 아니었다. 아버지와 고3 담임을 따라 전공을 택했고 그나마 복수전공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채웠다. 그때까지 꾸준히 그림을 좋아했고 고교 때 미술부장을 했었어도 미술을 전공으로 하거나 업으로 할 생각도 전연 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다 보면 싫어질 것 같기도 했고, 그다지 특출 난 정도의 재능도 아니었던 것 같았으며, 부모님이나 다른 친구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림을 그리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평생 취미 정도로만 여겼다. – 그런데 미술치료 진학을 위해 필요 학점을 따야 했는데, 캐나다에서 미대 수업을 들었을 때 엄청 놀랐던 것이,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나에게는 일이 아니라 놀이의 일종이었던 것이) 학점을 받을 수 있지? 하고 열심히 많이 ‘그릴수록’ 좋은 ‘학점을 받는’ 것에 기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곧 말 그대로 다른 학문보다 열심히 많이 시간을 투자할수록 좋은 학점을 받는 것은 더욱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지만.


그리고 제한적인 정보에 북미 미술치료가 뉴욕 쪽에 비교적 밀집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도시에 대한 호오라면 내게 뉴욕은 비싸고, 위험하고, 더럽기만 하다만, 어쨌든 초반에 알아보던 그 당시에도 그럼 미술치료를 배우려면 뉴욕을 가야 할지도 모르는 건가 라고 막연히 떠오르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부산에서도 일본 대마도가 보이는 영도라는 작은 섬 끝자락 출신이라, 샌프란시스코 상공에서 금문교를 보기만 해도 촌스럽게 막 내가 이런 곳엘 오다니 하고 감개무량해하는 충분히 어수룩한 어촌 시골처녀였(이)단 말이지. 그렇게 생이 흐르면서 조금씩 나만의 길을 좁혀가고 있었다.


Radium, BC l Apr 2011 ©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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