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CHAPTER.3): Art Inspiration 3
(2)에 계속.
1970년대 이래로, 예술가들은 더 어두운 심리적 상태와 다양하게 발명한 페르소나를 탐구하기 위해서, 갈수록 자화상을 더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술가들은 사회가 높이 사는 젊음과 명성, 자기 노출을 그들 자신의 영역에서 추구하며, 팝 문화로부터 그 전략을 취했으나 이를 종종 비틀기도 했다. Kalup Linzy가 미술계에 대한 상상적인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다면 Jean-Michel Basquiat은 그와 친구들을 할리우드 아프리칸 아메리칸 공연자들의 문제적 연속성에 놓았다. 다른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불안과 자기 의심을 뒤덮은 반영웅(antiheroes)으로 드리운 그들 자신의 심상과 함께 전통적 영웅주의를 뒤흔들기도 했다. Charles Ray는 그의 미술세계에서 축소된 재소자로 자신을 그려내고, Rodolf Stingel은 우울하고 타성에 젖은 자신의 모습을 엄청난 규모로 묘사했다. 패션 산업과 성형 수술, 그리고 각종 디지털 편집 가능성이 신체적/물질적 외양을 보다 유연하게 변형하게끔 하여, 예술가들은 이러한 공간에서 자아에서의 불확실성의 감각을 확산하게 됨을 증언하였다.
바스키아가 명성을 획득하게 되는 이유를 사회적 문맥으로 받아들여보자면, 흑인이나 앤디 워홀의 애인이라는 사실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고 혹자는 말했다.
Elizabeth Payton (1965-)
데이비드 보위, 갤러거 형제, 존 레논, 커트 코베인, 니콜 키드먼, 에미넴, 피터 도허티 등 주로 유명인사들인 친구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남녀 누구이든-모호하고 양성적인 분위기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및 사진작가로 유명해졌는데, 이 작품은 그의 자화상이다. 얼굴에 드리운 멋진 남성미도 섞인 그의 묘사를 보고 있으니 레즈비언 화가라는 정체성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뉴욕 SVA에서 순수미술을 수학하였고 롱아일랜드, 베를린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매튜 바니와 협업하기도. 사진작가 데니스 모리스가 섹스 피스톨즈의 시드 비셔스 등의 사진 세 작품을 저작권 문제로 페이톤과 캘리포니아 법정으로까지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2014). 작년에 둘 다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듯 보였으나 올해(2016) 다시 모리스가 1994년작 회화를 두고 법적 소송을 재기했다.
앨리스 닐(Alice Neel, 1900-198)
앨리스 닐은 이 초상화에서 앤디 워홀의 취약성을 포착하였다. 그의 가발과 메이크업부터 선글라스까지 다양하게 추종자들이 있는 가운데 워홀은 "벌거벗음은 나의 존재성을 위협한다."라고 말한 적 있다. 그러나 이에 닐은 그의 셔츠를 벗기고, 그의 눈을 감긴 후, 그가 1968년에 총에 맞아 수술한 상처를 끄집어내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차가운 객관성과 초연함으로 유명한 워홀은 닐의 예술가적 손에 의해 상처받고, 고립되고, 꺼려하는 인간적인 면모로 그려진다.
미국 현대미술사조(대략 나는 1940년대 이후부터)에 관해서 많이 모르는구나 라고 느꼈다. 물론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혼자 곰브리치의 Story of Art를 정독하였는데(이 책은 비전공자라면 원서 필독을 추천한다. 영국이나 독일로 미술치료를 공부하러 간다면 해당 국가 현대 예술가들을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석사 과정 중엔 컬러필드의 로스코를 중독 심리치료 관점에서 페이퍼를 쓴 것 이외에는 이후의 현대작가들은 귓동냥으로 지나치기만 했지 지금까지 프란시스 베이컨, 루시안 프로이드, 폴록, 호퍼, 바스키아, 칼더, 허스트, 솔 르윗, 등등 정도처럼 어마 무지하게 유명한 게 아니라면 현대미술사엔 문외한이었으므로. "자네도 화가(!)니까 이런 근사한 사람들을 알아야 하네."라고 하면서 빌이 신나게 재스퍼 존스 (Jasper Johns, 1930~), 벤 샨(Ben Shahn, 1898-1969) 등 새로운 이름들을 말할 때마다 기록하느라 바빠졌고, 집에 가서 찾아봐야지 라고 한 결과물이 오늘의 포스팅이라 조금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다음 기회에는 빌 아저씨와 Met Breuer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 케리 제임스 마샬(Kerry James Marshall)을 보러 가기로 했다.
1960년대 - 컬러필드 페인팅 (Color Field Painting)
컬러필드 페인팅 (Color Field painting)은 추상표현주의에 이어 1950년대 후반에 나타났다. 컬러필드 페인팅의 특징은 단순한 컬러로 많은 영역을 칠한 추상적인 캔버스이다. 컬러필드 페인팅은 추상표현주의 일부로 처음 시작되었는데, 특히 마크 로스코(Mark Rothko),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 바넷 뉴만(Barnett Newman), 로버드 마더웰(Robert Matherwell), 아돌프 고틀리브(Adolph Gottleb), 호안 미로(Joan Miro) 등이 유명하다.
1960년대 초중반 컬러필드 페인팅은 줄레서 올리츠키(Jules Olitski), 케네스 놀란드(Kenneth Noland), 헬렌 프랑켄텔러(Helen Frankenthaler)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이야기하는 용어가 되었다. 이들의 작품들은 추상표현주의 2세대와 연관되어 있으며, 새로운 방향의 예술을 추구하던 래리 푼스(Larry Poons), 래리 족스(Larry Zox),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와 같은 젊은 예술가들과도 관련이 있다. 1964년 예술 평론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Post-painterly abstraction"이라고 불리는 전시회를 열고 다녔는데, 이 전시회가 컬러필드 페인팅의 정의를 확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1960년대 말 리처드 디벤콘(Richard Diebenkorn)은 그의 유명한 "Ocean Park"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작품들은 컬러필드 페인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대표작들이 된다.
컬러필드 페인팅 작가들은 컬러를 선택하고 이용하는데 최고의 전문가 들이었으며, 컬러의 심리적인 영향력을 최대한 고려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잭슨 폴록이나 윌렘 드 쿠닝과 같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 정서적인 에너지와 강렬한 제스처를 활용하는데 비해, 컬러필드 페인팅은 비교적 차분하고 완고한 인상을 주며, 크고 넓은 컬러의 영역을 이용하여 최대한 단순한 추상화를 시도하였다. 여기에 캔버스의 실제 모양을 최대한 활용하였는데, 특히 프랭크 스텔라는 곡면과 직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모서리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1960년대 - 개념예술 (Conceptual Art)
개념예술(Conceptual art)은 개념(concept)이나 아이디어(idea)를 이용하여 전통적인 형태의 미술작품과 다른 철학적 가치를 보여주는 예술세계이다. 솔 르윗(Sol LeWitt)의 수많은 작품들의 경우 어느 누구라도 정해진 절차에 의해서 단순히 배치만 하더라도 재현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이런 방법이 가장 전형적인 개념예술의 형태이다. 개념예술가의 작품들은 보통 일반적인 예술작품을 만드는 행위가 매우 적거나 아예 포함되지 않으며, 전통적인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작가의 물리적 기술이나 미적 감각 등을 요구하지 않는다. 개념예술은 1960년대에 구체화가 되어 여러 작가들이 나왔지만, 1990년대에 들어 영국에서 크게 유행한 젊은 영국 예술가(Young British Artists)와 터너상(Turner Prize)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념예술의 시초는 프랑스 예술가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소변기를 이용하여 1917년 만든 "Fountain"이라는 작품(우측)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인 소변기에 작가의 필명인 "R. Mutt"라는 사인을 한 것이 전부인데, 이 작품은 뉴욕에서 열린 독립예술가 협회의 전시에 출품되었으나 거절당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소변기와 같은 일반적인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을 예술작품으로 볼 수는 없었다는 것이 당시의 판단이었다. 뒤샹의 작품의 영향은 미국의 유명한 개념주의 예술가인 조셉 코수쓰(Joseph Kosuth)가 쓴 1969년 에세이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Art after Philosophy"라는 제목의 글에서 "뒤샹 이후의 모든 예술은 기본적으로 개념적(conceptual)하다. 왜냐하면 예술이라는 것이 예술이 개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써서 뒤샹 작품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개념미술이 하나의 예술사조로 등장한 것은 1960년대이다. 1961년 헨리 플린트(Henry Flynt)가 "컨셉 아트"라는 표현을 사용한 경우가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이를 적용한 예술가는 조세프 코수쓰였다. 그는 전통적인 예술작품의 형식을 버리고 예술가들의 사회적, 철학적, 정신적인 상태에 대한 문서화된 비평적 질문을 던지고, 이를 체계화한 서적과 작품, 퍼포먼스 등을 통해 이를 알렸다. 1970년 최초의 개념예술에 대한 전시회인 Conceptual Art and Conceptual Aspects가 뉴욕문화센터에서 열렸다. (출처: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