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3(CHAPTER.3): Art Inspiration 7
이번 전시는 막스 베크만과 뉴욕시의 특별한 연관성을 조망하고 있는데, 그가 1949년부터 1950년 뉴욕에 사는 동안 그린 14점의 작품과 뉴욕에 소장된 그림들 중 25점의 초기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자화상을 포함해서 상징적이고 신화적이고 인상주의적인 작품들, 그리고 여성들과 공연자들의 화려한 색채의 초상화들, 또 풍경화와 삼면화(세 폭짜리 제단화) 등을 모았다. 베크만은 스스로 그렇게 불리길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고 있다. 세잔과 반 고흐뿐만 아니라 블레이크, 램브란트, 루벤스 등에 영향받았으며 그의 화풍 중에서 구성은 특히 중세 스테인드글라스 형상과 닮아있다.
1920년대 후기의 베크만(1884-1950)은 독일에서 아티스트로서의 절정에 있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Städel Art School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명망 있는 미술 중개인들이 그의 작품들을 사들였으며 곧 영향력 있는 작가, 비평가, 출판사들, 수집가들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국수 사회주의자가 그의 작품들을 타락적이라고 명하며 1937년에 독일 미술관에서 몰수시키자 베크만은 네덜란드로 이민하여 10년 동안 지냈다. 1947년에 미주리 세인트 루이스에서 임시직으로 강의를 하다가 1949년에 뉴욕시로 이주했다. 뉴욕을 일컬어 "A prewar Berlin multiplied a hundredfold"라고 말한 베크만은 맨해튼의 삶으로 활기를 되찾아 저 강력한 작품인 Falling Man (1950)과 The Town (City Night) (1950)을 창작했다. 그 해 늦은 12월 크리스마스 이후, 베크만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현대 미국 회화전에 걸린 그의 자화상 Blue Jacket (1950)을 보러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곳에서 멀지 않은 센트럴 파크 서쪽 69번가 길목에서 협심증에 이은 치명적인 심장마비로 66세의 나이에 사망하고 만다. 그의 죽음을 통감하여 이 전시가 이곳에서 다시 개최되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들. 이 그림은 대단히 안타깝게도 2001년 9월 11일에 실화가 되었다.
사실 뉴욕시에 처음 공부하러 와서 간 곳은 센트럴 파크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아닌, 911 테러가 일어났던 장소(WTC)인 언더그라운드 제로였다. 실제 참극이 벌어졌던 곳에서 나는 희생자 그 누구도 개인적으로 몰랐지만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미어졌다. 그리고 대학원 과정에서 첫 번째 수업 과제로 이것을 냈다.
[그림]
그리고 3년 전 4월.
나는 2년 후 아주 화창했던 졸업식 날 다시 한번 그곳을 찾게 되었다. 석사모와 가운을 입고, 타임스퀘어나 센트럴 파크가 아닌 처음에 심리치료 공부를 하면서 마음을 다졌던 곳으로 한국에서 보러 온 가족들과 애인을 데리고 갔다.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그곳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베크만은 1938년 말 파리에 있을 때 이 끔찍한 장면의 <새의 지옥>을 완성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고삐 풀린 인간의 폭력성을 은유하고 지옥을 풍자하고자 했으며, 특히 독일의 국수적 사회주의에 대해 숨김없이 공격하고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1931년 여름 베크만의 전시회 리셉션에는 반갑지 않은 초대손님들이 모여들었다. 독일 대사이자 주최자는 그의 손에 얼굴을 파묻고 오른쪽 전경에 앉아있다. 베크만은 1947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이 그림을 또다시 수정했는데 그 주최자의 포즈를 변경하고 얼굴을 왜곡하였다.
많은 그의 작품들이 매우 아름다웠는데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 호텔 라운지나 레스토랑 등 내부 환경의 그림도 있었고,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는 풍경 등 뉴욕시의 외부환경의 그림도 있었다.
왼쪽에 있는 삼면화는 베크만 자신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정리하며 그렸다. 중앙에 흰 말을 타고 있는 소년이 막스이며 오른쪽 하단에 앉아있는 여성은 그의 아내이다. 그가 그린 여성 공연자의 초상화는 나체가 많았는데, 그림에서 옷을 입은 여성이 보이면 그의 아내를 모델로 한 것이 틀림없다. 가장 오른쪽 패널은 베크만이 어렸던 학창 시절 수업시간의 한 장면을 그렸는데 그는 왼쪽 아래에서 짓궂은 낙서를 즐기고 있는 소년이다. 오른쪽의 삼면화는 고문으로 고통받고 있는 인간의 그림으로 보다 종교적이며 신화적이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역한 후부터 베크만의 화풍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야전병원 시체 처리반에서 근무하다 불명예제대한 이후 PTSD에 시달린 그는 아티스트로서 그림에 사회 고발적인 내용을 담았다. 상처받은 개인 심리를 사회 정의적인 단계로 승화시킨 셈이다. 미국 재향군인 대상의 미술치료 효과는 보다 능동적으로 검증되고 있는 실정이다. 병역 의무화인 대한민국에서 군 복무 대상자들의 사회복귀 후속조치가 엉망진창인 것은 군문화(전쟁훈련 및 전시 포함) 집단생활로 인한 정신 건강 불균형의 심각성을 간과하는 것이기에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시간은 독일 인상주의 화풍을 좀 더 공부하고 싶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미술을 보러 노이에 갤러리 박물관(Neue Galerie New York Museum)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