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4
H대 앞의 학원으로 통학하기 위해 서울 근교로 방을 구해서, 6월 중순 부산으로 귀국하고, 개강한다 하여 바로 서울로 옮겨왔다. 학원에서 하루 종일 그림 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캐나다에서부터 굉장히 기대하고 갔었는데, 수강료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아서 스트레스가 되길래 곧 그만두었다. 6월 말 즈음이었나 원룸 오피스텔에서 도보 5분 거리에 화방 건물이 있고, 그 주위에 센터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미술치료사 자격증 수업을 한다고 했다. 일단 이력서를 들고 가서 무급 인턴이나 자원봉사라도 구하는지 물어보았다. 실장님이 좋게 봐주셔서 센터장 교수님하고 면담할 기회를 얻었다. 다음에 상주하시는 시간에 찾아갔는데 지금은 딱히 구하지 않고 인턴으로 돕더라도 센터의 행정적 운영에 대해서 알게 되지 미술치료학에 대해 배우고 싶다면 수업을 듣는 쪽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미술치료학 학부 전공이 아니며 자격증을 소지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복지관이나 다른 기관에서도 비슷한 사정일 것 같고 민간자격증이더라도 이 수업을 지금 들어놓으면 국내에서 경험을 쌓거나 이론적 배경이라든지 미술 실습 이라든지 겉핥기 식으로라도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사단법인/민간협회별로 하고많은 상담 관련 자격증 중 하나에다 공신력 없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들어보기로 했다.
이때 여러 가지 정보를 접해보니까 다양한 길이 많이 있구나 하고 알게 되기도 했는데,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고민거리도 더 무거워졌다. 팀 로스 주연의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원제는 천구백이의 전설..)’에서 평생을 배에서 내리지 않고 살아온 주인공인 나인틴 헌드레드가 피아노의 88개의 건반은 온전히 다룰 수 있다고 한 유한함에 안도하며 결국 새로운 세상을 거부하고 배로 돌아가는 때에 느꼈던 그러한 감정. 순간 눈앞에 너무 많은 골목길이 펼쳐져 있고 저 생선가게의 모퉁이를 돌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는 이전에는 몰랐던 불안감을 안게 되었다. 나는 모험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친구의 지인도 심리학과 출신인데 뉴욕에서 미술치료 한 학기 하다 그만두었다는 이야기, 또한 미술치료 전공을 한 또래의 세 분을 만나보게 되었는데 프랑스에서 수학하신 한 분만 치료사로서 일하고 있고 셋다 딱히 만족해하시지 않아서(공부를 끝낸 지 아직 얼마 안 되고 젊어서 그런지도..), 이번에 알게 된 센터의 교수님은 국내에서 일하려면 국내대학원을 추천, 하지만 자격증 반을 들어보니 수업지도는 좋지만 교재 내용으로 인해 국내에서 듣고 싶은 생각은 솔직히 줄어들어버림(예의 그 HTP진단.. 그림 분석.. 타로카드를 쓰고 MBTI 얘기를 하고..), – 진학 필수요건 및 졸업요건을 비교해 볼 때, 국내에서 높은 전문성을 가지고 코어로 연구할 만한 기반은 아직 안되어 있어서 배워와서 펼치고 싶은 마음이 컸다 – 그런데 갔다 와서도 국내 네트워크 및 국내 내담자 대상으로 경험이 적다면, 차라리 국내에서 심리학으로 계속 공부를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보건 임상심리사를 알아보기도 하고 (이경우 보건복지부에 따라 2009년 심리학과 생이라면 한두 개 필수과목 취득해야 하고 이후 수련생 기간.. 학회에 문의해보니 이역시 임상심리로 대학원 진학을 추천), 신문/방송계로 경력을 이어서 국내 취업, 혹은 캐나다로 돌아가서 심리학 쪽 분야로 취업 등등 이런저런 방향을 따져보았다. 아오 복잡해.
어쨌든 자격증 수업은 집단치료를 받는 효과를 제공해주었고, 진학과정에서도 도움이 조금이나마 되었다고 본다. 국내(한국) 자격증은 미국에서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추천서도 부탁드리고 이력서와 면접에도 언급하자 입학사정관들은 관심을 보이고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글쎄 크게 쓸모있는 지도 잘 모르겠다. 혹자는 미술치료학개론 3학점을 듣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도 했는데 실제로 몸소 찾아보아도 희소하고 개강시기도 맞추기 어려웠다. 학점은행제는 한과목만 들을 수도 없었고, 6개월 국내 Certi 과정으로도 위와 같은 이유로 나의 경우는 해가 되진 않았던 듯.. 아, 콩코디아와 SVA의 경우 재학시 미술치료를 학생 본인이 필수로 들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12월이 되고 자격증 반이 종강하고 시험을 보자마자 더 이상 부천에 있을 이유가 없어져서 부산으로 실습 자리를 구한 김에 본가로 오게 되었다. 다소 아쉽지만 다녔던 센터에서도 인턴 하기에는 (예정대로 붙어서 유학을 떠나면 여름) 환자의 입장을 생각할 때 1년 미만으로 시간이 짧을 것 같아 불투명했고, 대표님도 가타부타 향후 관련 말씀이 없으셔서 떠날 결정을 해야 했다.
규모가 크지 않고 갓 출범한 인지과학 연구소 내 실습생 구인은 점심과 관련 실습 교육을 제공받고 무급에 프로그램 개발과 검사 운영을 시행하는 등 실제로 환자들을 대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하여 기대되었다. 해외대학원을 포기하고 임상심리사가 되는 경우 수련시간을 쌓아야 하는데,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와 보건복지부의 정신보건 임상심리 자격요건에 차이(인증수련기관을 포함하여)가 있다. 이 연구소는 전자 쪽이었고 그래서 시간을 채우려는 목적이 아니라 일단 이 분야가 나에게 맞는지 실습교육의 기회와 경험을 얻으려고 했다. 11월이었나 온라인으로 지원하고 부랴부랴 월세를 빼고 당장 내려와서 인터뷰를 보았다. 12월 말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보통 1월 15일 – 2월 1일이 지원 접수 마감이라 SOP/Personal Statement/Career Goal Statement를 쓰고 가장 중요한 마무리 기간 동안 같이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 실습을 나갔지만, 실제 교육이나 실습이라기보다 본 소 워크샵 준비로 번역이나 웹사이트 운영/관리 등 캐나다에서는 정당히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고 했던 업무들을 연구원이나 직원이 아닌 무급 실습생에게 맡겨서 다소 아쉬웠고 (사람들은 좋아서 더..) 3월 워크샵 진행까지 도와준 후 그만두었다. 이때에도 참 국내의 무급인턴/자원봉사/재능기부 등에 대한 의식이 아직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고, 이 외에도 기타 등등 자괴감에 휩싸였다. 어쨌든 학회 참석, 실습생 스터디, 내원 환자와 프로그램 보조 운영 등의 경험을 최대한 SOP와 인터뷰에서 어필하였다.
- 그런데 이렇게 진학 준비했던 시간들 동안 돌보지 못했던 내밀한 나의 감정과 마음들이 나중에 석사과정 졸업 막바지에 터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