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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에이드 Mar 15. 2022

[소설]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25)

키친 (by 이소은)

작년 10월 기억나죠? 선거땜에 공휴일 계속 이어져서 5일동안 연휴였던 날요. 어느 날, 바보랑 그냥 별 생각없이 전화통화하면서 이얘기 저얘기 하다가 연휴 얘기 나왔어요. 그러다 바보가 말했어요. 그럼 걔랑 니랑 한번 올라오면 어때? 내 핑계대고 L랜드 가자고 하면 어떤데? 전에부터 허구한날 L랜드 가고 싶다고 얘기했잖아.


잠깐 바보 얘기 좀 하자면, 얘가 공무원 되겠다고 몇년 시험 준비하다가 제작년에 결국 서울시 공무원에 합격했어요. 그래서 서울로 이사했고 시보떼자마자 여자친구랑 결혼해서 같이 살게 되었죠. 덕분에 서울에 일 있어서 올라가게 되면 한번씩 그 집에서 신세졌죠. 덤으로 제가 옛날부터 L랜드 꼭 가보고 싶어서, 얘들 부부보고 언제 날되면 꼭 같이 L랜드 가자고 얘기했었거든요.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바보말로는 자기 여친... 아니 자기 마누라랑 걔랑 잘 아는 사이고 동아리 활동 때문에 파자마 파티나 MT같은것도 자주 가서 걔가 자기네 집에서 자는데 크게 문제가 없을거라 얘기하더라구요. 왜 그 파자마 파티나 MT에 동아리원도 아닌 바보가 꼈는지는 좀 의문이 들었다마는... 여하튼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죠. 문제는 걔가 과연 가줄까가 문제였죠. 평소에 만나자고 해도 잘 만나주지도 않는데, 과연 서울까지 가 줄 것인가?


그래요. 그때는 괜찮을 거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또 거절당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흔쾌히 받아주더라구요. 걔도 연휴에 할일도 없는데 L랜드 한번쯤 가보고 싶어했었고, 바보네도 오랜만에 보고 싶었나봐요. 뭐, 전 걔랑 같이 L랜드 같이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죠. 간만에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출발은 연휴 둘째날 새벽. 연휴 첫째날은 걔가 고향 올라가야 되서 둘째날 기차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제가 대구에서 먼저 기차타고 한시간 뒤에 김천에서 걔가 그 기차를 타는걸로 표를 예약했어요. 며칠동안 혼자서 L랜드 가는 방법, 놀이기구 종류랑 위치 확인, 이벤트 뭐가 있는지 찾기도 하고, 백화점 가서 그날 입을 옷 새로 사기도 하고 정말 즐겁게 디데이를 기다렸어요.


그리고 출발 당일, 새벽 2시쯤 일어났어요. 왜그렇게 일찍 일어났냐 하면 도시락 쌀려구요. 그때 한참 백선생님 요리 프로그램 즐겨 봤는데, 그중에서 무스비라고 스팸으로 만든 김밥같은 주먹밥 만드는  가르쳐 주더라구요. 마침 명절에 받은 스팸도 제법 있어서, 저거 만들면 좋겠다 생각하고 전날 재료를 샀죠. 그리고 눈뜨자 마자 스팸하고 계란 굽고, 틀에 김이랑 전날 저녁에 지어둔 , 그리고 스팸이랑 계란, 야채 넣고 열심히 무스비를 만들었죠. 생각보다  많이 가더라구요. 모양 내는것도 은근 신경쓰이고, 옆구리 안터지게 칼질도 조심조심 자르고... 그래도 즐거웠어요. 피곤하지도 않더라구요. 무스비가 생각 이상으로 맛있게 되었더라구요. 솔직히 밥이랑 스팸 조합이 맛없을 수가 없지만요. 이정도면 걔가 먹고 충분히 놀라겠더라구요.  표정 생각하며 도시락이랑 가방 싸고 출발했죠.


새벽기차를 타고 한시간 지난 후, 김천역에 도착했고 걔가 제 옆자리에 앉았어요. 서로 인사를 하고, 전 아침 먹었냐고 묻고 도시락을 꺼내려고 했는데, 걔가 그림그린다고 새벽까지 잠을 못자서 한시간밖에 못잤다고, 바로 눈 좀 붙인다고 하더라구요. 왠지 눈 밑에 퀭해 보이긴 하더라구요. 뭐 도시락은 내려서 먹어도 되니까. 일단은 되게 피곤해 보이니 일단 자라고 얘기하고 전 느긋하게 조용하게 달리는 열차를 즐겼죠. 딱히 잠도 안오고, 크게 할 일도 없었지만, 그냥 옆에 걔가 조용히 자고 있는 모습만 봐도... 뭐랄까? 그냥 좋았어요.


어느  해가 뜨고, 어느  서울에 도착했죠. 먼저 도착해 있기로  바보가 보이지 않길래 전화했더니, 차가 막혀서  10분정도 늦을 거라 하더라구요. 오히려 잘됐죠. 아까 기차에서  먹은 도시락도 먹으면서 둘이 얘기나 나누면 되겠다 생각했으니까요.  걔한테 바보가  늦을거라 얘기하고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어요. 아침 안먹었지? 안그래도 도시락 싸왔는데 이거 먹자.


그런데 걔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얘기하더라구요. 미안해요.  요새 다이어트 하고 있어서... 선배 드세요. 그렇게 얘기하면서 아예 입에도 안되더라구요. 한개만 먹어봐라고 했는데,  먹더라구요. 계속 강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먹는다고 나도 안먹는다  수도 없고... 결국 혼자 먹었죠.


진짜  무스비 내가 만들었지만 진짜 맜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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