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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준 Sep 05. 2020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8

일상의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을 위해 고민하는 일본인

2019.3.26 (화)


간만에 푹 자서 그런지 몸도 개운하고, 창 밖 넘어 아침 날씨도 화창하였다. 날이 풀렸는지 어제까지만 해도 안보이시던 노인분들이 텐몬칸 공원에서 게이트볼을 즐기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가만 있어보자, 일본에도 게이트볼이 있네? 우리나라에만 있는 스포츠인줄 알았는데 설마 일본에서 들어온 건가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70년대에 일본에서 시작되어 80년대 초에 일본 관광객에 의해 국내에 소개되었고, 그것이 확산되어 지금의 게이트볼이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생활 구석구석에 일본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구나를 다시 한번 느끼며, 지금의 일본을 알아야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내 가설에 다시 한번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오전 10시 쯤해서 호텔 밖을 나섰는데, 오늘은 오전에 카페에 갔다가 텐몬칸 주변 쇼핑몰을 둘러보고, 아마미 섬(가고시마 현 최남단에 위치)의 자연과 문화를 느낄 수 있다는 아마미노사토(奄美の里)라는 곳을 다녀올 예정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탈리스 커피로 향하기로 하였는데, 가는 길에 어르신들이 게이트볼 하시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 텐몬칸 공원에 잠깐 들러보기로 하였다. 

공원 내 게이트볼 필드를 보니, 인프라나 플레이어 모두 (내 인식 속에 있는 우리나라 게이트볼 이미지 대비) 우리보다는 성숙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선, 고가 다리 밑 그늘진 흙바닥에서 주로 플레이하는 우리와 달리 마치 골프장 필드에 나와 있는 것처럼 잔디 위에서 주변을 즐기며 플레이하는 모습에 인프라가 앞서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주변 환경에 걸맞게 사람들도 옷을 대충 걸쳐 입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골프웨어처럼 격식을 갖춰 입고 게이트볼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보였다.

공원에서 동년배 친구들과 같이 운동도 하고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노후 생활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는데, 노인분들이 실내에만 있는 것이 아닌 밖으로 나와 같이 소셜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가 중요하고, 특히 그 중에서도 일상 주변에 있는 공원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탈리스 커피에 도착하였다. '오늘의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가고시마에 오기 전 두 달 간 공부했던 일본어 문법과 회화 내용을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음은 현지인인데, 막상 닥치면 배웠던 기초 내용뿐만 아니라 단어도 잘 생각이 안나 답답했기 때문이었는데, 당연히 하루 아침에 되진 않겠지만 유창해지는 그 날이 어서 오길 고대하며 이를 악 물어보았다. 

오늘도 자리에서 남에게 피해 주기 않기 위해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들, 혼자 쓱 들어와서 주변 의식하지 않고 식사를 하고 나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고 오히려 이게 원래 카페의 모습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카페에서 두어시간 정도 있다가 밖으로 나와, 쇼핑몰로 향하기 전, 텐몬칸 상가 거리를 오가다 봐놨던 Aube라는 헤어샵으로 먼저 향하기로 하였다. 사실 가고시마로 오기 전에 머리가 길어 자르고 올까하다가 현지에 있는 헤어샵에서 머리를 잘라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거 같아 자르기 않고 그냥 왔는데, 일주일이 더 지나니 이제는 머리 수습이 안되 자를 타이밍이 되었다 싶었고, 가고시마 대부분 헤어샵의 남자 헤어컷 가격은 4,000엔인 반면 이 곳은 2,200엔으로 머리를 이쁘게 자르는 것보다 잘라 보는 것에 더 의의를 두었던 터라 가격도 적당해보였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일본 헤어샵은 사전 예약이 필수라는 얘기를 들었던 거 같아, 가게에 갔을 때 예약 없이 바로 헤어컷을 할 수 있으면 하면 하고, 아니면 예약만 잡고 나오기로 하였다. 


가게에 들어가서 혹시 지금 헤어컷이 가능하냐고 여쭤보니, 예상했던대로 오늘은 예약이 꽉 차 있어서 어렵다고 하였다. 그럼 언제가 가능한지, 이번 주 목요일에 가능한지 여쭤보니 가능하다고 하시길래, 13시에 가능한지 여쭤보고 괜찮다고 하시길래 그 시간으로 예약을 잡아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샴푸는 할 건지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여기는 샴푸랑 헤어컷 비용을 따로 받나라는 의문을 속으로 갖으며, 같이 하겠다고 하니, 그럼 시간을 12시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가능하냐고 물으셨다. 샴푸를 얼마나 길게 어떻게 하려고 1시간씩이나 필요할까 속으로 궁금해하며 가능하다고 대답을 하였다. 

예약도 무사히 마쳤겠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길에 인기 헤어 스타일을 추천해줄 수도 있냐고 여쭤보니, 헤어컷 당일에 스타일링 북에 있는 사진을 보고 고를 수 있다고 하셨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머리를 하는지, 머리한 후 내 모습은 어떨지 상상해보니, 목요일에 있을 헤어컷이 벌써부터 기대되기 시작하였다.  


헤어샵에서 나와 가방을 보러 몽벨 매장으로 향하엿다. 라이딩할 때 맸던 쌕이 물건 꺼내기도 불편하고 어깨 끈 부분이 어깨를 아프게 해 라이딩용으로 작은 등산 가방 하나를 구매하는 게 좋을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매장 내 아울렛 코너에 괜찮아 보이는 가방 2개가 있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하나를 결정해 계산대로 가려고 하는데, 매장 방송에서 '싸이꾸링구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몽벨에 자전거 용품도 있었나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Cycling' 코너가 있었고, 혹시 자전거 전용 가방이 있는지 가서 봤는데, 완전 마음에 드는 가방이 하나 있는 것이었다. 가격이 1만 3천엔으로 부담이 되긴 했지만, 투자해서 남은 라이딩을 좀 더 편하고 효율적으로 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아 시원하게 구매를 하였다. 내일은 지란(知覧)으로 라이딩을 할 예정인데 바로 투입해서 사용해봐야겠다. 


아마미노사토에 가기 전에 마루야 가든에 있는 로프트에 들러 문구류 코너를 좀 더 자세히 보기로 하였다. 개인적으로 펜에 관심이 많아 매장에서 어떤 펜들이 대세인지 유심히 보았는데, Pilot에서 나온 Frixon이라는 '쓰고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펜과 형광펜'이 인상적이었다. 펜도 연필처럼 수정이 필요하면 지울 수 있다는 컨셉이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발상의 전환으로 다가왔다. '책상 위 물품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툴박스'와 '용도에 따라 골라쓸 수 있는 모양이 다른 포스트잇', 그리고 '잘 때 목이 마르지 않게 하는 수면 마스크' 또한 인상적이었다. 여러 번 느끼는 거지만, 일본인들은 일상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고, 그것들을 생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상품이나 서비스로 만들어내는구나라는 생각에, 대단하다라는 말을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고, 우리도 반드시 배워야할 점으로 가슴 깊이 다가왔다. 

로프트에서 펜과 포스트잇 몇 개를 구매한 후, 아마미노사토로 가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마미노사토는 가고시마 시내에서 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타니야마(谷山)역 주변에 있어 텐몬칸에서 그 곳까지 트램을 타고 간 후 걸어서 이동하기로 하였다.  


타니야마역은 트램의 남쪽 방향 마지막 종점역인데, 트램을 타고 시내를 벗어나 타니야마에 점점 가까워질 수록,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동네 모습을 볼 수 있어 나도 왠지 집으로 향하는 거 같은 친근함이 느껴졌다. 텐몬칸을 떠난 지 30여분 정도 지난 후에 타니야마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마을을 가로 질러 아마미노사토로 걸어가는데, 여느 일본 마을처럼 거리는 깨끗하였고,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이 없어 좁은 도로지만 도로 반대편 끝까지 시야가 탁 트여있어, 스트레스 지수가 떨어지고 전체적으로는 마을의 격이 높아보였다. 차량이 여기저기 주차되어 있어 차량뿐만 아니라 사람이 지나다니기에도 불편한 우리나라 동네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는데, 이것이 가능한 것은 거주지 주변에 주차 공간을 확보해야 차량을 구매할 수 있는 일본의 '차고지 증명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이 활성화되려면 도로가 잘 닦이고 마을이 깔끔해야 사람이 유입된다고 보는데, 깔끔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상 주차부터 없어져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차고지 증명제와 같은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수도권 지역은 당장 도입이 어렵다하더라도, 시골 혹은 신도시 지역부터라도 제도를 하루 속히 도입되어 지역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10여분 정도 걸어 아마미노사토에 도착하였다. 우리말로 하면 '아마미 마을'인데, 가고시마 최남단에 있는 아마미섬의 자연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아마미는 오시마쓰무기(옷감), 게이한(닭고기 밥), 흑설탕 소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비록 아마미섬에 직접 가보진 못하지만 이곳에서 그것들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하니 기대를 한 가득 안고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초입부터 보이는 아마미 지역 열대 식물과 전통 가옥, 실을 짜는 여인의 모형을 보고 있으니 진짜 아마미에 와있는 거 같은 생동감이 느껴졌다. 안 쪽에 조성해놓은 정원도 일본 정원 양식에 아마미 지역 식물을 적절히 조화시켜 놓은 것 같아 보는 눈이 즐거웠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모형이 아닌 진짜 사람들이 실을 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들 최소 몇 십년 이상 일을 해온 숙련공인 거 같았는데,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기술의 명맥을 이어가려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시마쓰무기는 아마미 고유의 염색 방법으로 검은 광택을 내 오랫동안 아름답고 독특한 기모노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전시되어 있는 기모노를 둘러 보니 그 명성을 알 수 있을만큼 옷감의 퀄러티가 남달라 보였다.  


오시마쓰무기 전시관을 둘러보고, 바로 옆에 위치한 하낭카라는 식당에서 게이한이라는 아마미를 대표하는 가정식을 먹기로 하였다. 게이한은 쌀밥에 닭고기, 지단, 버섯 등을 고명으로 얹고 닭 육수을 부어 먹는 음식으로, 예전에 사쓰마에서 온 관리들을 대접하기 위해 아마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점심 식사 운영 시간 거의 끝물에 가서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어 대기 없이 바로 게이한을 주문할 수 있었다. 육수를 오랜 시간 고았는지 깊으면서도 뒷맛이 깔끔한 게 좋았고, 같이 얹어 먹은 닭고기와 새우, 지단과의 조화도 훌륭하였다. 말 그대로 부담없이 먹기 좋은 가정식이었다.  


식사 후 아마미의 또다른 명물, 흑설탕 소주를 구매하러 다시 전시관 내 기념품 샵으로 이동하였다. 흑설탕 소주는 아마미에서 재배되는 사탕수수로 만든다고 하는데, 다음 날에 숙취가 없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직원분에게 인기 제품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여러 종류의 흑설탕 소주를 시음할 수 있게 해주셨고, 그 중에서 '렌토'라는 제품이 특히 인기가 좋다고 하여 한 병을 구매하였다. 


1시간 반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아마미 대표 3종 세트를 한번에 만나볼 수 있어 유익하였고, 아마미가 휴양하기에 좋은 섬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가봐야겠다 싶었다.


아마미노사토에서 나와 텐몬칸으로 복귀하기 위해 다시 타니야마역으로 걸어갔다. 동네 전체에 넓게 드리운 햇볕을 보니 내 마음도 뭔가 평온해지는 거 같았다. 


복귀할 때는 처음으로 신식 트램을 탔는데, 실내 의자 및 공조 시설이 잘 되어 있는데다가 아까 시음했던 흑설탕 소주 때문인지 돌아오는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호텔로 돌아와 간단히 개인정비를 한 후, 저녁 식사 전에 고쓰키 강변 쪽으로 해서 가볍게 뛰고 싶어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다시 호텔을 나섰다. 생각했던 것보다 뛰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젊은층 뿐만 아니라 노년층도 뛰면서 자기 관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러닝 트랙 주변에 한강처럼 운동 시설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기구들이 있는지 보고 싶었는데, 설치된 운동 시설들이 거의 없어 살짝 놀랐었다. 처음에는 일본인데 왜 없지 생각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강변 운동 시설 같은 것은 일본이 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본보다 더 잘 되어 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에, 우리나라 강변 인프라의 존재감과 가치가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오늘은 어디 나가지 않고 방에서 편하게 맥주 한 잔하고 싶어, 편의점에서 맥주와 맥주에 어울릴만한 고등어, 문어, 소라 같은 수산물 안주류를 몇 개 사서 방으로 들어왔다. 국내에서는 아직 보지 못한 수산물류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걸 보고, 일본인들의 수산물에 대한 사랑과 수산물 가공/포장/유통 기술의 앞서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제품의 신선도와 맛 또한 기대했던 거 보다 뛰어나 우리나라 편의점에도 출시된다면 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오늘 일본과 볼리비아 간 축구 평가전이 있는 날이라, 축구 중계를 보며 먹으니 맥주와 수산물이 좀 더 맛있게 느껴졌다. 


내일은 왕복 80km 정도되는 지란 라이딩을 할 예정이다. 중간에 산을 하나 넘어야 하는 업힐이 있는 코스라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하나, 또 어떤 새로운 여정이 나를 맞이할 지 기대해보며, 설사 힘들더라도 불굴의 정신으로 극복해내겠다는 의지도 다져보면서 잠자리에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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