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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준 Sep 09. 2020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9

무조건적인 비난보다는 그들에 대한 이해와 앞서겠다는 의지가 필요

2019.3.27 (수)


'지란 라이딩 날'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무가저택(武家屋敷)과 특공평화회관(特攻平和会館)이 있는 미나미규슈에 위치한 지란(知覧)이라는 곳을 라이딩으로 다녀오는 여정인데, 가는 길에 높이 300미터 정도 되는 산을 하나 넘었다가 다시 넘어 돌아오는 업힐이 포함된 총거리 왕복 80km 정도되는 코스이다.

이번 라이딩에는 저번 라이딩 때와는 달리 물과 에너지바 같은 보급품을 최소화해서 출발할 예정인데, 도로 중간중간에 편의점이 많고 자판기도 많이 설치되어 있어 초반부터 짐을 무겁게 해서 움직이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주변에서 구매하는 편이 더 나을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존에 사용하였던 비효율적이고 어깨를 아프게 했던 쌕 대신 어제 구매한 자전거 전용 가방을 이용할 예정이라, 장비나 노하우면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고 할 수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호텔을 나섰다. 오늘 목적지가 사무라이, 카미카제와 관련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왠지 전장에 나가 반드시 이기고 돌아와야 할 거 같은 마음에, 라이딩에 대한 의지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졌었다. 

아침 바람이 차긴 했지만, 날이 맑고 낮 기온도 올라간다고 하니 라이딩하기에는 좋을 거 같았다. 지란으로 가기 위해서는 텐몬칸에서 217번, 219번, 그리고 226번 도로를 연이어 쭉 타고 남쪽으로 가다가, 히라카와(平川) 역 부근에서 23번 도로를 탈 예정인데 23번 도로만 잘 타면 그 뒤부터는 그 길만 따라가면 돼, 우선은 23번 도로로 합류하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하였다.


가고시마 시내 지역은 도로에 차량이 많아 속도를 내기가 위험해 시내를 빠져나갈때까지는 주변을 여유 있게 둘러보면서 천천히 이동하기로 하였다. 

이동 중에 눈에 띄였던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 때문인지) 일본 중고등학생하면 '선생님 말씀 잘 안 듣는, 자기 멋대로 하는 문제아'라는 이미지가 인식 속에 강했었는데, 학생들이 길거리에서 단체로 이동할 때 마치 오와 열을 맞춰 움직이는 군인처럼 질서 정연하게 이동하는 것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에 놀랐고, 내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거부감이 들었다기 보단 오히려 학생다워 보여 보기 좋았는데, 물론 학생들의 개성과 자율성도 존중되야겠지만, 학생은 학생답게 어른은 어른답게라는 말이 있듯이 모두가 각자의 본분에 충실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국내에서 보지 못했던 (혹은 내가 몰랐던) 비즈니스도 눈에 띄었다. 2nd Street라는 중고품 거래(Reuse shop) 체인점은 100엔 샵처럼 가벼워진 일본인들의 지갑 사정을 대변하는 거 같았고, 실내 스포츠 어뮤즈먼트 파크에서는 우리보다 실내에서 스포츠를 복합적으로 즐기는 문화가 좀 더 일찍 정착되지 않았나라는생각이 들게끔 하였다. 둘 다 어떤 곳들인지 남은 여행 기간 안에 방문해봐야겠다.


길을 쭉 따라 내려가다 보니 어제 방문했었던 아마미노사토가 보였고, 얼마 안 가 저 멀리 오늘 내가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산 능선이 펼쳐져 있었다.  


타니야마를 벗어나 시 외곽쪽으로 나오니, 차량도 적고 길도 시원하게 뚫려 있어 속도를 올려보기로 하였다. 속도를 내니 몸도 달아올랐는지 페달링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23번 도로를 타면서부터는 산을 넘는 업힐 코스라 가는 길에 편의점이 없을 거 같아, 그 전에 필요 보급품 구매를 위해 편의점에 잠시 들르기로 하였다. 

물과 에너지젤, 에너지 바를 구매한 후, 가방에 당장 먹을 것과 나중에 먹을 것을 구분해 넣었는데, 너무 편리한 나머지, 지출이 있긴 했지만 자전거 전용 가방은 투자하기 잘 한 거 같다며 혼자 미소를 지어보았다. 

편의점 내에서는 계산 할 때 어떤 아주머니께서 공과금을 납부하는 것을 보았는데, 행정기관의 영향이 덜 미치는 시 외곽 지역 일수록 편의점이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것 이상의 서비스들을 인근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도 행정기관 뿐만 아니라 편의점과 같은 접근성이 좋은 곳에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앞으로 좀 더 보편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전열을 다시 가다듬고 5km 정도 달린 끝에, 23번 도로로 접어드는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이정표에 '知覧武家屋敷 (Chiran Samurai Residences)'라고 쓰여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 제대로 오긴 왔구나, 여기서부터는 쭉 달리기만 하면 되겠구나하는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언덕길과 그 뒤로 펼쳐진 오늘 넘어야하는 산을 보고 있으니 긴장과 함께 다시 전의가 불타올랐다. 이 언덕에서 오늘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자!


평지나 내리막 없는 지속적인 업힐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헉헉대며 땀을 흘리며 오를 때의 쾌감에 오르기 전에 걱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래, 이 맛에 업힐하지라며 페달링에 계속 힘을 가하였다. 

산 중간 정도 쯤 올라오니, 도로 옆에 펼쳐진 숲이며 숲 사이로 멀리 보이는 바다에 시야가 탁 트였다. 먼 바다 쪽 하늘이 뿌얘 바다 건너 사쿠라지마나 오스미 반도 쪽을 선명히 보지 못해 아쉽긴 했으나, 펼쳐져 있는 멋진 뷰가 라이딩에 힘을 북돋아 주기에 충분하였다.

헉헉 거리며 좀 더 올라오니 知覧 IC 이정표가 보여 정상에 거의 다 왔음을 짐작 할 수 있었고, 마지막 언덕을 넘었을 때 넓게 펼쳐진 평지를 본 후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30여분 정도 소요된 6km 거리의 업힐, 오늘 라이딩 2차 관문도 무사히 통과하였다. 


잠시 쉬면서 무가저택까지 거리를 확인 후, 다시 라이딩을 재개하였다. 여기서부터 무가저택까지는 계속되는 내리막길이었는데, 주변 자연 경관을 감상하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빠르게 내리 달리는 맛이 최고였다.


가는 길에 잘 정돈된 차(茶) 밭과 방향원(芳香園)이라고 쓰여 있는 가게가 보였다. 지란이 일본 전국적으로 차(茶)로 유명하다고 책자에서 봤던 것이 갑자기 생각나, 차 한잔 마시고 가고 싶어 자전거를 가게 앞에 세워놓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런, 오늘은 휴무인지 문이 닫혀있었다. 먹으려고 했다 못 먹으면 그 아쉬움이 더 크다고, 차 밭만 쓱 둘러보고 난 후 오늘 지란을 떠나기 전에 차 한잔은 해야겠다고 다짐을 한 후, 다시 발길을 무가저택으로 향하였다.    


얼마 안 있어 무가저택이 위치한 지란 시가지로 진입하였다. 아담한 규모지만 사무라이가 모여 살았던 곳이라 그런지 절제된 느낌의 분위기가 인상적이었고, 강 주변으로 푸릇푸릇하게 늘어선 나무며 막 피기 시작하는 벚꽃을 보니 이 곳 지란에는 진정한 봄이 와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가저택 주변에 자전거 세워놓을 곳이 마땅치 않고 매표소도 보이지 않아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혼자냐고 여쭤보실래 맞다라고 하니 따라오라고 하셨다. 알고보니 매표소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매표소 옆에 자전거를 주차하겠다는 양해를 구한 후 무가저택 안으로 향하였다. 


지란 무가저택은 일본 국가 명승지로 거리나 건물의 모습이 에도시대 교토와 비슷하다고 하여 '사쓰마의 작은 교토'로 알려져 있으며, 거리에 있는 돌담과 저택 내 정원이 매력 포인트라고 한다. 

입구에서 가까운 사이고 케이이치로 정원(1번)부터 길을 따라 모리 시게미츠 정원(7번)까지 쭉 둘러봤는데, 사무라이가 살았던 곳이라 그런지 내가 평소 알고 있던 일본식 정원의 이쁘고 아기자기함보다는 약간은 거칠고 건조한 분위기였고, 사무라이라는 신분 상 주변으로부터 언제 있을지 모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울타리나 저택 내 겹겹이 배치된 돌담을 보니 당시의 긴장감 넘쳤었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는 거 같았다.  


무가저택을 둘러보고 특공 평화회관으로 가기 전에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출국 전 특공 평화회관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조선인 카미카제 특공대원의 사연을 담은 '호타루(ホタル)'라는 영화가 있는데, 영화 속에 나오는 '도미야(富屋) 식당' (출격 전 대원들이 방문해서 '특공대원의 엄마'로 불린 도리하마가 운영)이 실존하며, 지금은 당시 식당 주인의 손자가 '호타루관'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왕 식사하는 거 좀 더 의미 있는 곳에서 하고 싶어 출발 전에 '호타루관'을 검색했으나 위치 파악이 쉽지 않아, 지란에 도착하면 ホタル(호타루)라고 쓰여 있는 건물을 찾아보기로 했었는데 무가저택 주변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정확한 위치 정보 없이 마냥 찾기도 애매해, 여기 없으면 특공 평화회관 주변에 있지 않을까하고 일단은 그 쪽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3km 정도 달린 후 지란 특공평화회관 입구 주변에 도착하였다. 이 곳에서도 주변을 둘러봐도 ホタル(호타루)라고 쓰여 있는 식당 건물이 보이지 않아, 입구 쪽에 몰려 있는 아무 식당이나 갈까하다가 사람도 많고 자전거 댈 곳도 마땅치 않아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히로스시라는 스시집으로 가기로 하였다. '지란과 스시' 뭔가 매치되진 않았지만, 배고픔에 일단 허기부터 채우는 게 낫겠다 싶었다.


바 테이블 석에 앉아 스시정식을 주문하였다. 주방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아버지(할아버지)와 아들(아저씨), 주문을 받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이 곳도 가족이 대를 이어 스시집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가업을 물려주고 이어 받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그로 인해 일에 대한 열정 또한 남다르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지란에 있는 식당답게 차(茶)가 나왔는데, 이래서 차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구나, 일본인들이 차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래서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 특유의 깊은 향과 맛이 매력적이었다. 장인정신이 깃든 스시 맛은 어떨지 기대가 컷었는데, 엄청난 정도는 아니었지만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정성이 담긴 맛이 괜찮았다.

식사 중에, '호타루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여러 키워드로 계속 검색을 해보다가 마지막에 혹시 몰라 'ホタル'라고 가타카나로 검색해보니 검색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왠만한 것은 영어로 해도 다 검색이 되서 (물론 일본어가 부족했던 것도 있었지만) 일본어로 찾아볼 생각을 안했었던 것이다. 심지어 확인된 위치도 아까 무가저택 바로 옆에 있었던터라 먹고 왔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아쉽지만 돌아가는 길에 구경이라도 해야겠다며 호타루관 정보를 좀 더 찾아보고 있는데, 명칭은 '호타루관 부옥식당'이지만, 식당이 아니라 특공대원 유품을 모아놓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었다. 어짜피 위치를 알고 찾아갔더라도 식사는 못했었네라는 생각에 허탈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호타루관에 대한 집착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식사를 마친 후 특공 평화회관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특공평화회관 정문 입구에서 길을 따라 주차장 쪽으로 들어가니 주중임에도 꽤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자전거를 어디다 주차해야되나 두리번대고 있는데, 저 앞에 투어링 바이크 라이더가 한 명 보이고 어디론가 이동하길래 나도 그를 쓱 따라가 보았다. 그가 입구 쪽에 다다렀을 때 나를 봤는지 일본어로 뭐라고 하길래, 여기에 주차해도 괜찮은지 물어보니, 내가 일본인이 아닌 걸 단번에 알았는지, 갑자기 영어로 직원이 여기다 대도 괜찮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20대 후반 정도에 영어를 꽤 자신있게 괜찮은 발음으로 하는 친구였는데, 저번에 탈리스 카페 여직원도 그렇고, 일본인은 영어와는 거리가 멀다라는 막연한 내 생각이 특히 젊은 친구들 대상으로는 크게 잘못된 거구나, 이들이 어떤 마인드로 동시대를 살아가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구나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나도 뒤질세라 평소보다 혀를 좀 꽈서 잠깐 얘기를 나눴는데, 교토에 사는 친구로 3주 동안 교토에서 가고시마로 자전거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지금이 여행의 막바지라고 하길래, 마지막까지 안전한 여행을 하라고 말을 건넨 후, 특공 평화회관 안으로 입장하였다. 


특공평화회관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 군함을 상대로 카미카제 자살 공격에 나선 일본 육군 특공대원 비행기지가 있던 곳을, 전후 1975년에 특공대원의 유품을 보존한 '지란 특공유품관'으로 건립하였고, 1987년에 지금의 '지란 특공평화회관'으로 변모하였다고 한다. 

박물관 내 전시물이 어떤 내용인지 보다는 방문객들의 관람 태도를 중점적으로 보려고 했는데, 나라를 위해 희생한 당시의 젊은이들을 애도하고, 그들이 조국을 위해 희생했던 거처럼 우리도 조국에 헌신하는 자세를 갖아야겠다는 의지가 남녀노소 모두의 표정에 가득해보였다. 물론 카미카제에 조선인도 포함되어 있어 우리에게는 아픈 역사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특공평화화관 같은 곳을 일본의 군국주의의 상징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비난만 할 게 아니라, 그에 앞서 우리가 왜 일본에 당했는지 우리가 그들보다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실행이 있어야 그 비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우리가 일본에게 침략과 지배를 받지 않게 강해져야 한다는 의지를 가슴에 품은 채, 특공평화회관을 빠져나와 왔던 길을 다시 따라 호타루관 부옥식당이 있는 무가저택쪽으로 향하였다. 호타루관도 특공대원들의 유품을 전시해놓은 곳이라 내부는 특공평화회관과 유사할 거 같아 안에 들어가지는 않고 건물 주변만 둘러보았다. 길가에 호타루 영화 홍보 간판이 크게 서있었는데 아까는 왜 지나가다가 못봤는지 모르겠었다. 조선인 카미카제의 애환과 우리의 지난 역사,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갈 길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본 후, 지란에서의 일정 마치고 다시 가고시마로 복귀하기로 하였다.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시내에 있는 편의점에서 물과 에너지젤 같은 보급품을 산 후, 23번 도로를 따라 힘찬 페달링을 하였다. 아까 고개를 넘어 이 쪽으로 올때는 내리막길이었으나, 이제는 반대로 고개를 넘을때까지 오르막길이었다. 특공평화회관을 둘러볼 때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하기 했지만 업힐은 언제나 쉽지 않은 거 같았다.  


헉헉대며 가고 있는데, 아까 오는 길에 봤던 방향원이 보여 혹시 몰라 가까이 가서 보니, 지금은 영업 중이었다. 가게 창문에 차(茶) 100엔이라고 쓰여 있길래, 아까 스시집에서 맛있게 마셨던 차 맛이 다시 생각나 지란을 벗어나기 전에 한 잔 더 하고 싶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차 한잔 달라고 하니, 테이크아웃이냐고 묻길래, 여기서 마시겠다고 하면서 100엔을 주니, 테이크 아웃일 때만 100엔이고 가게 내에서 마시면 무료라고 하였다. 차 맛에 자신이 있는지 차 홍보용으로 무료로 제공하는 거 같았는데, 그 전략이 적중이라도 한 듯, 마셔본 차 맛이 맘에 들어 어떤 차인지 물어보고, 집에 차 우려내는 팟(pot) 하나 없는데 먼저 그 차부터 구매를 하였다.


차 한잔 마시고 가게에서 나와 25분 정도를 다시 헉헉 거리며 업힐을 한 후에 知覧 IC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아까는 힘들게 올라왔지만 반대로 이제는 스릴감 있게 속도를 즐기며 내려갈 차례였다. 30분에 걸쳐 올라왔던 곳을 내려올 때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히라카와(平川) 역 주변에 다다렀을 때 시간은 오후 4시 반으로 예상했던 거보다 이 곳에 일찍 도착하기도 했고 마침 긴코완 공원(錦江湾公園)을 안내하는 이정표에도 보이고 해서, 복귀하는 길에 잠깐 들렀다 가기로 하였다 


긴코완 공원에 도착하였다. 주중 오후 시간임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 나온 주부들이 꽤 많았는데, 노을이 이쁘게 내려 앉은 공원에서 여유롭게 아이들과 같이 자연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공원을 가볍게 둘러보고 호텔로 바로 복귀하기로 하였다. 복귀할 때는 아까 탔던 219번 도로가 아닌 좀 더 안쪽에 있는 226번 도로를 타고 올라가기로 하였다. 퇴근 시간이 다 되서 그런지 차량도 많고 갓길도 좁은 편이라 라이딩하기가 편치는 않았는데, 달릴 때 도로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이부스키-마쿠라자키 기차 선로 주변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름다워, 힘든 줄 모르고 계속 앞으로 달릴 수 있었다. 


긴코완 공원에서 15km 정도를 달린 끝에 마침내 호텔이 위치한 텐몬칸에 도착하였다. 지란이라는 곳을 경험할 수 있었던거 뿐만 아니라 업힐이 포함된 왕복 79km 코스의 라이딩도 잘 마무리 하게 되어 추후에 장거리나 업힐 라이딩을 할 때도 어려움 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을 갖게 돼 보람찬 하루였던 거 같았다. 


방에서 씻고 정리 후, 오늘의 노고를 자축하고자 저번에 방문했었던 호텔 앞에 위치한 해적선이라는 술집에 가서 시원하게 생맥주를 한잔 들이키기로 하였다.  

가게 안에 들어가니, 설마했는데 사장님께서 어라, 또 왔네?라는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셨고,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에게도 한국에서 자전거 타러 온 사람이라고 소개도 해주셔서, 마치 나만의 단골 술집에 온 거 같은 편한 느낌이 들었다. 내 옆에 앉으신 직업이 무용수라고 하신 분은 내가 신기해보이셨는지 계속 말을 걸어주셨는데, 긴 대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술집에서는 말이 많지 않아도 술만 마셔도 통한다고 서로 술잔을 비워가며 같이 회포를 풀어보았다. 

맥주를 몇 잔 마셔니, 그래도 오늘 몸을 좀 굴렸다고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게 느껴질 정도로 몸이 갑자기 피곤해졌다. 마음은 계속 달리고 싶었으나 내일 일정에 영향을 미칠까봐 자제를 하고 방으로 다시 복귀를 하였다.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장거리 라이딩 없이 시내지역을 둘러볼 예정이라, 마음의 부담 없이 푹 자고 활기찬 하루를 맞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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